나는 자잘 자잘한 병을 자주 앓는 스타일이다.
나열하자면, 약간의 소화불량, 조금 번거로운 두통, 신경 쓰이는 정도의 근육통, 만성적인 비염 같은 것들.
다만 큰 병을 앓은 적은 거의 없다. 며칠씩 앓는 감기도 잘 안 걸린다. 아마 원체 비염이 심해 호흡기 증상이 온다 싶으면 허버허버 약을 미리 먹어버리는 습관 때문인지도.
아, 물론 나도 전지구적 역병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작년 3월쯤 코로나로 일주일 출근을 못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첫 병가가 사용되었다. 이건 자발적 병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 선에서는. 의무로 쉬라는데 쉬어야지!
그리고 올해 4월 말. 나는 인생 최초 자발적 병가를 사용하게 된다. 사유는 유산가능성.
몇 번 반복된 미약한 하혈은 있었지만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어느 저녁, 샤워 중 후드득 피가 보였다.
놀래서 샤워를 끝내자마자 세 가족 모두 야간 진료가 되는 동네 큰 여성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천만다행이라면, 거짓말 안 보태고 차로 5분 거리에 소아과부터 조리원까지 전부 운영 중인 여성병원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걸 절박유산이라고 합니다. 절대안정하세요. 유산방지주사도 오늘 맞고 가시고요.’
유산방지주사.
절박유산.
절대안정.
첫째를 품고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말들이었다.
첫째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무던하고 꿋꿋하게 내 속에서 버텨 주었다.
첫째를 임신했던 2019년은 5학년 아이들을 지도하며 몸을 쓸 일도 많고 무엇보다 열정이 넘쳤던 저경력 교사였기에 매일 새로운 시도를 하던 때였다.
내가 어느 정도로 활발한 산부였냐면, 교감선생님이 운동장에서 애들 찾으러 도도도 뛰어다니는 만삭 직전의 나를 보시고는 바로 교실로 인터폰을 때려 잔소리를 하실 만큼이었다.
그뿐이냐. 운전을 안 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덕분에 많이도 걸었으며, 심지어 남편을 따라 헬스장에 가서 규칙적으로 운동도 했다! 스쿼트 포함이다.
그런 내게 둘째는 ‘유산’이라는 거대한 단어를 투척해 주었다.
그 아이는 첫째도 별 일 없이 잘 낳았으니 둘째도 무슨 일 있겠어?라고 생각했던 나의 느슨한 마음에 경계심 한 방울 툭 떨어뜨려 주었다.
임신 6주. 나는 침대요정이 되고 말았다.
‘너무도 조심스럽지만 임신 초기입니다. 6주예요. 그런데 어제 하혈을 해서 병원에 갔더니 유산끼가 있다고 합니다. 병가를 낼 수 있을까요? 2주요.’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면서도 왜 송구스러웠는지 모른다.
학부모님들께 병가로 2주 자리를 비운다고 게시글을 올리면서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주변에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결국 남는 것은 내 아이며 학교는 선생님 하나 없어도 잘 돌아간다고 그렇게 위로를 해주시는데도 나는 계속 무거웠다.
말 그대로다.
정말 무거웠다.
몸이 무거운지, 마음이 무거운지, 머리가 무거운지 몰랐고, 모른다.
첫날에는 거실에 이불을 덮고 누워서 계속 티비만 봤던 것 같다. 기분 탓인지 조금만 움직여도 아랫배가 유난히 당기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왔다. 몸조심해라, 무거운 것 들지 마라, 누워만 있어라.
그런데요, 누워만 있는데 저는 왜 쉬는 것 같지 않죠.
계속 슬퍼요.
슬펐어요.
무엇이 그리 슬픈지, 속상한지, 실망스러운지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나와요. 우울하고 마음이 아파요.
가장 속이 쓰렸던 것은 ‘무거운 것’에 나의 소중한 첫째도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하지 마! 이리 와, 아빠가 안아줄게.’
아빠의 말을 듣자마자 성질을 내며 엄마가 안아달라고 짜증을 부리는 첫째를 볼 때마다 가슴의 벽이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병가의 절반이 지나갔다.
다행히도 지난주 뱃속의 둘째는 조금 더 강해져 있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피 비침도 없고 내 몸도 건강해졌다.
입덧약을 먹은 덕에 컨디션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다.
비가 오긴 했고, 미세먼지가 오늘 다시 높아지기도 하지만 날씨가 따뜻하며 햇살이 고루 내리쬔다.
부러 나와 조금씩 걸었다.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크게 틀어 놓고 설거지를 하고, 조심스럽게 잠깐잠깐 몸을 움직여 청소를 했다.
주변사람들은 그것조차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돈된 집안이 내게 주는 효과는 몹시 컸다.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깨끗해진 집에서는 잠만 자도 기분이 좋았다.
좋아하는 가수들의 유튜브와 예능을 찾아봤다.
웃음이 났다.
환한 것들이 퐁퐁 솟아올랐다.
누워만 있던 내가 일어나 씻고 외출 준비를 했다.
좋은 기분은 몸을 움직이게 해.
몸을 움직여 오늘 정한 목적지로 뚜벅뚜벅 걸어가.
이왕이면 허리에 힘을 주고 어깨를 펴서 바른 자세로.
‘그래도 2주 더 쉬지 그래. 괜찮은 것 같아도 지금 괜찮은 거지 앞으로도 괜찮다는 보장이 없잖아.’
맞다, 없다, 그 보장.
그래도 난 다음 주부터 다시 출근을 하려고 한다.
이제는 내 몸도 챙기고 주변도 챙길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앉아서만 수업해도 된다는 교감선생님의 말을 위로 삼아 말이다.
이렇게 이번주면 내 인생 최초 자발적 병가가 마무리된다.
그 마무리까지 제발 별 탈 없길 바란다.
더하여 나의 정신건강이 출산까지, 이왕이면 출산 후까지 안녕한다면 더욱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