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밑밥을 깔 때 흔히 듣는 얘기였다. 연애에 먹구름이 낄 때면 난 주위 사람들에게 나의 불행을 미리 흘리곤 했다. 그렇게 농도가 짙은 멘트도 아니었다. "요즘 오빠랑 좀 그래"라는 한문장과 어색한 웃음소리는 적어도 노란불인 내 연애 상태를 시사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이런 삽질을 하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지인들에게 아무런 낌새 없이 내 이별 소식을 들이밀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 이별 소식을 들은 그들은 왕방울만 한 눈이 되다가 주머니에서 뭘 꺼내듯 주섬주섬 준비되지 않은 위로를 꺼냈다. 어색한 공기 또한 수반된다.
여러 번의 임상실험을 통해 나는 갑자기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는 일은 매우 서글픈 일임을 알고 있었다. 차라리 예고편을 틀어놓고 그들에게 '그럴 줄 알았어. 그럴 거 같더라'는 얘기를 듣는 게 나았다. 서로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불행은 줄어들곤 하니 말이다.
현대인들은 똑똑하고 현명하다. '헤어짐'이 완결된 순간이 아닌데도 그들은 헤어짐을 경험할 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심하지 않은 선에서 은은한 위로를 전하곤 했다. 그때 꼭 나오는 것이 '더 좋은 사람 이론'이었다.
누가 지성인들 아닐까 봐 그들은 원인과 대안을 꼭꼭 짚어줬다. 나라는 사람에게 맞지 않는 만남이 원인이요, 더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문제 분석 - 원인 - 대안이라는 짜임새가 다 갖춰져 있는 패키지 이론은 거의 만능급이었다.
'맞는 사람'이라는 논리는 새 연애를 빠르게 당기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곤 했다. 나와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시간 낭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다음 근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맞는 사람' 이론으로 마음을 무장하며 마음을 달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