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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띵 May 30. 2024

전세사기 당한 이야기 좀 그만 쓰고 싶었는데

 

 나의 첫 번째 브런치 북 '서른 살에 겪은 전세사기 극복일지'를 끝으로 전세사기 이야기는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1년 동안 당황, 우울, 분노 단계를 거쳐 이제는 무덤덤해졌다고 해야 하나. 감정적으로 호소할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하루빨리 벌어진 사태를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갈망이 컸다. 그리하여 잃은 1억 1천만 원을 경매로 벌어보겠다는 당찬 야망도 꿈꿨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데 최근 또 한 번 감정적 고비 상태를 맞이했다. 경매 넘어간 집이 낙찰됐다. 변호사 말에 따르면 감정가 대비 92%에 낙찰됐으니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된 거라 한다. 그래서 운 좋게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냐고? 애초에 그런 희망이라도 있었으면 전세사기 브런치북은 쓰지 않았다. 쉽게 말해 ‘땡전 한 푼 받지 못하고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 앞으로 길어 봐야 3개월 후면 새로운 임대인에게 집을 비워주고 나와야 한다.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어렴풋이 예상만 했을 때와 실제 마주할 때 감정 차이는 많이 컸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계속해서 가슴 뛰고 긴장된 상태를 유지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허탈하게 느껴졌다. 그냥 다 싫었다. 이 상황은 임대인이 제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게 문제고 잘못이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내 탓을 하고 있었다. 참 쓸데없는 행위라는 걸 잘 알지만 복잡한 심경이 날 괴롭혔다.




 최근 임대인과 통화를 했다. 이 사태를 두고 어떻게 해결할 건지, 계획은 있는지 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긍정적인 대답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녀는 최악을 넘어선 최최악을 보여줄 수 있는 걸까? 예나 지금이나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님은 틀림없다. 그녀의 대답을 그대로 적어보겠다.


지금 당장은 돌려줄 돈도 없고 어떻게 할 방법 없어요.
내가 살아있는 한 꼭 갚을 테니까
다 갚는 그날, 세입자들끼리 만나서 밥 한 끼 하자고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줌마, 정신 차려요. 1만 천 원 아니고 자그마치 1억 1천만 원이야.


 지난 과거를 후회하면 우울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면 불안하다고 한다. 며칠 동안 우울과 불안이 공존했던 나날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친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날 위로해 준다. 뉴스에서나 보던 전세사기 피해자가 가까운 지인이라는 사실이 괜스레 미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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