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트립 넷째 날 - 여긴 어디?)
가이드님은 말씀하셨다. 그날그날 사진을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그랬다. 나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으므로 몇 장의 단체 사진과 오직 기억에 의지하고 짧게 적어놓은 정보에 기대어 이 날의 여행을 기록해야 한다. 물론 기억은 뒤죽박죽 섞여 여기가 거기인지, 거기가 여기인지 흐릿흐릿 하지만 말이다. 가이드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Too much information too much pain이라고. 안 그래도 고통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나의 두뇌는 아주 적은 양의 정보만 흡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파묵칼레에서도 벌룬을 탔다. 120불이면 탈 수 있는 데다 갑바도기아에서 지불한 200불을 더해도 한 주전 갑바도기아에서만 390불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래도 저렴하다는 기적의 논리로 말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본 파묵칼레의 전경은 충분히 설레게 했으므로 내심 기대했는데, 조심스럽게 타지 않는 것을 추천드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치 강원도에서 벌룬을 타는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히에라볼리의 히에라는 ‘거룩’이라는 뜻이고 볼리는 폴리스로 ‘도시’라는 뜻이다. 그 거룩한 도시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대부분의 유적지가 지진으로 인한 자연재해로 무너졌지만 건물로서의 교회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가파른 길을 조금 걸어야 하나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은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카트를 타면 된다. (원형극장과 빌립사도교회)
점심으로는 케밥 종류를 먹었는데 뭐였는지 아리까리하다. 인상 깊지 않았던 걸로…
다음으로 라오디게아(고대도시)에 갔는데 11월 초임에도 찌르는 듯한 태양이 선글라스를 뚫고 들어왔다. 여름에는 여행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기둥과 돌무더기, 곳곳에서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려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생각해 보았다. 무너지고 부서진 후에 후회하고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 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지키고 돌보는 것, 알아도 절대 쉽지 않은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라오디게아는 두 강 사이에 위치하여 교통과 상업이 활발했던 도시였는데 지금의 모습을 보며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방문한 대부분의 교회는 번영과 풍요 속에서 타락하고 망해갔으니 당장의 영광과 부요함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라오디게아는 고질적인 물문제가 있었는데 오전에 다녀온 히에라볼리(파묵칼레)에서 오는 온천수와 멀리 보이는 골로새(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의 산중턱에서 흘러오는 냉수가 이곳 라오디게아에서 만나 뜨겁지도 차갑지고 않은 미지근한 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그들의 믿음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던 말로 유명한데, 그래서 뜨겁든지 차갑든지 하라고 하나님의 꾸짖음이 있었다. 미지근한 물은 가치가 없는 물로 여겨졌으며 그래서 노예들이 먹는 물이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빌라델비아 교회였는데 ‘형제 사랑’을 뜻한다고 한다. 현재 지명은 알라쉐히르라고 하며 그다지 크지 않은 공간에 지금은 기둥만 남아있다. 우리가 갔을 당시 장날이었는지 교회 주변으로 시장이 열렸다. 가이드님의 배려로 시장을 둘러볼 시간을 가졌는데 귤이 1킬로에 50리라로 반질반질 싱싱해 보이더니 역시 새콤달콤 맛있었다. 몇몇 분들은 감과 곶감, 밤 이런 것들을 사셨는데 케냐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고 가끔 발견해도 남아공에서 수입해 오는 것이라 비싸다. 튀르키예의 저렴한 물가를 여기서만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사데에 있는 호텔에 투숙했다. 내일은 사데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