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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 Jun 02. 2021

[보통의 일상 03]

애증의 영어공부

취준생에게 스펙은 가혹하면서도 희망을 준다. 자격증을 따기까지의 번뇌와 함께 이것만 하면 취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속의 희망. 나는 이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는 순간을 겪는다. 


절망은 희망에서 온다. 이것만 하면, 이것만 버티면, 이것만 잘되면 모든 것이 순탄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희망은 한번 삐딱선을 타기 시작하면 천천히 무너져 매몰차게 외면한다. 한순간의 그 많은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그때 절망이 찾아온다. 


최근 나는 그 절망을 맛본 기분이다. 영어 시험에 낙방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 하루라는 시간을 몽땅 버렸다. 왜 이렇게 나약해지는 날인지 모르겠다. '이 길이 맞는 것일까', '처음부터 이것이 나의 길이 아니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무한한 굴레 속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미쳐버린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굴을 파고 들어간 셈인 격이니 말이다. 나약한 나 자신이 꼴 보기 싫어질 정도다. 나약해지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영어 자격증 시험에 낙방한 충격이 이리도 클까, 겨우 이거 하나 떨어졌다고 이렇게까지 무너져 내릴 일인가.

뒤죽박죽 섞여버린 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 사람의 생각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갈 수 있는 무한한 굴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벗어나고 싶으나 벗어날 수 없는 생각 속에서 헤매다 결국 처음 자리했던 그곳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더 이상 자신을 비관하며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또다시 나의 고질병이 찾아온 것이었다. 희망을 부정하고 세상을 정죄하며 남을 탓하는 어두운 내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이 더욱 힘들어한다는 위급한 사이렌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들이 아우성치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네가 믿고 있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잠시 휴식이 필요한 것뿐이라고 모든 것이 너의 탓이 아닐 수 있다고 말이다.


말을 건네 오는 마음들에 나는 어두운 내면을 지워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생각에 내가 잡아먹히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했던 부정적인 생각들 중에 사실이 아닌 것들이 있고, 그 부정적인 생각에 반박하며 하나씩 지워가고, 다른 것에 집중을 해보기도 하고, 긍정적인 말들을 상기시키고 말하며 올라온 부정의 감정들을 내리려 했다. 다행히도 효과는 있었는지 부정적 감정이 사그라들고 조금의 희망이 다시 떠오른다. '한번 더 해보자, 할 수 있다.' 이 말들이 내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직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고,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이렇듯 매번 내 자아 속에서 몇 번이고 싸운다. 애석하게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 이기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매일 매 순간 매번 나는 시비를 걸어오고 나는 싸운다. 희망과 절망의 경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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