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신기한 컵을 샀다. 속이 다 들여다 보인다. 엄마가 그러는데 여기 물을 담으면 물이 다 보이고 우유를 담으면 우유가 다 보인다고 했다. 새로 산 컵으로 물을 마시는데 엄마가,
"하이야, 하이 물 마실 때도 하이 얼굴이 다 보여. 오물오물 입술 움직이는 거 엄청 귀엽다. 엄마가 그래서 이 컵 산 거야. 하이 얼굴 계속 보려고."
엄마는 나를 진짜 많이 좋아하나 보다.
엄마 일기
이놈의 설거지. 가정 꾸려 살아보니 밥 해 먹고 치우는 게 제일 일이다.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하느라 내 손으로 밥 할 기운도 없고, 그 뒷일까지 하자니 종종 짜증이 난다. 집밥이래 봤자 하루 한 끼인데 그것도 벅차다.배민이 괜히 잘 되는 게 아니다.
식기세척기가 있어도 설거지는 에브리데이 에브리타임 항상 있다. 모든 종류의 그릇을 소화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모든 식기를 식세기용으로 바꿔야겠다, 하나씩 하나씩. 일단 플라스틱 컵부터 없애자!
언제나처럼 택배를 보자마자 하이가 "내 거야?" 하고 묻는데 느닷없이 "응. 이거 하이 거야."라고 해버렸다. 왜 그랬지?
최근에 에어프라이어도 바꾸고 프라이팬도 새로 장만하느라 택배가 자주 왔는데 그때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 것이냐 묻던 하이한테 마음이 쓰였나 보다. 무의식이 이렇게 무섭다.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빚어내는 색의 조화를 생각하며 주문해 놓고 네 꺼라니. 그렇게 트라이탄 컵은 하이 것이 되었는데 기대감을 드높이고 싶은 마음에 이 컵에는 무엇을 담 든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신기하고 놀라운 컵이라고. 말이 청산유수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컵이 담기는 음료만 투명하게 비춰주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컵으로 가려졌을 하이의 얼굴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데 한 모금 한 모금 꼴딱거릴 때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입술 어쩔 거냐고.
"하이야, 하이 물 마실 때 입술 움직이는 게 너무 귀여워. 엄마가 그래서 이 컵 산 거야."
엄마가 되면 거짓말이 느는가. 집에 들인 이유는 구라. 너무 귀여운 건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