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일 미운 건 나다. 재이도 재이 엄마도 아닌 나. 그 순간 하이를 지켜주지 못한 나. 내 아이가 부당한 상황에 처한 것을 보고도 눈치만 봤던 나, 가만히 있던 나.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 엄마라는 사람이, 마흔하고도 손가락 몇개가 더 넘어가는 어른이 구경만 한 셈이다. 이런 내가 제일 싫었다. 내가 이토록 싫어지는 것을 보니 끝에 다다른 것 같다.
자책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내탓'의 장점이 생각보다 꽤 많은데 그 중 으뜸은 나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 고쳐쓰는거 아니라지만 자책하면 고쳐진다. 모델 한혜진님이 그토록 힘든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이유에 대해 '일이건 사랑이건 이 세상 많은 일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내 몸은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더라'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내 뜻대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 하나뿐이다.
자책을 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모자르거나 모지란 나, 미흡하고 미숙한 나의 '못남'이 드러난다. 즉, 주제가 파악된다. 제 주제를 잘 알게된다.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매력이 이것이다. 드러난 나의 실체가 개선의 발판이 되고,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아주 작은 것이라도 고치고 바꾸게 된다. 세밀하고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성찰과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나의 근사한 습관 자책. 스스로를 체크하라고 자check인가 싶은 자책. 이번에도 그랬다. 나에게 책임을 물으니 주제가 파악되고 정리가 되었다.
외모췍 말고 주제췍
첫째,
주제도 모르고 유능한 척을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제가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항상 하이와 함께 해 주시고 하이를 지켜주세요' 라고 기도하곤 했는데 틀렸다. 틀린 기도였다.
내가 지켜보고 있는 순간에도 아이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나는 아이를 완벽히, 완전히 보호해 줄 수 없다.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았다.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 내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할 수 있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생각보다 별로 없다.
특히나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꽝이다. 신속하고 적절하게 판단하고 상황에 맞게 대응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되기 전에도 그랬다. 새로울 거 없다. 엄마가 되었다고 갑자기 될 리 없다. 나는 그게 잘 안되는 사람이다. 인정하자.
둘째,
주제 넘게 '내가 잘하면' 뭐가 달라질 줄 알았다.
수많은 맘플루언서를 볼 때마다 마음에 돌덩이가 하나씩 얹어졌다. 그녀들이 돈을 잘 벌어서? 지식이 많아서? 경험이 출중해서? 학벌과 경력이 화려해서? 아니다. 뛰어나고 월등한 그녀들 덕분에 그녀들의 아이들도 뛰어나고 월등하게 자랄 것 같아서이다.
잘 해보려고 아등바등 종종거렸던 그거, 책이며 유튜브며 눈알 빠지게 읽고 보고 들으며 애쓰고 노력했던 그거,내 모든 수고의 밑바닥에는 마치 아이 인생이 나에게 달려있을 거라는 오만한 환상이 자리잡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 불안의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잘해야 하는데.
내가 잘해야 하는데.
내가 잘하면 우리 하이가.
내가 잘하면 우리 하이가.
잘 했는지 잘 못했는지 어떻게 알까. 누가 판단해 줄까. 내가 잘하면 우리 하이가 뭐 어떻게 될건데.
항상 비교하면서 부족하다 생각하고,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으로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을 끌어안고살았다. 내가 잘하면 이라는 착각 때문에. 나의 인풋, 내가 나에게 집어 넣는 것들이 아이의 삶이 되고 미래가 될거라는 착각 때문에. 그놈의 '내가', 내가 뭐라고. 이제 그 고문과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