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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다협동조합 Aug 02. 2021

내가 사랑하는 틈

비진학 청년 1인 주거 이야기 - 정래의 홈―에세이 8









살면서 무언가 큰 업적이나 성과를 이루게 되리라는 확신을 얻기는 분명 힘들다. 그렇지만 확신이 없다는 점은 도리어 설렘이 되기도 한다. 
산다는 건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 동안
무엇이 이루어질지 모르는 가능성 때문에 멋진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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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을 나왔다. 방을 얻어 이사를 했다. 위치는 서대문구 홍은동. 방을 알아보고 짐을 옮기는 데까지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서둘러 이사했지만 이유 없는 이사는 아니었다. 맥락이 있다. 더는 고시원에서 사는 일상을 버텨낼 수 없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이사하기 직전 내 방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고독사 현장, 이라고 구글링하면 상단에 노출되는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그런 모습. 절반은 쓰레기, 절반은 먼지 묻은 옷가지로 뒤덮인 바닥과 거기서 올라오는 불쾌한 냄새, 내 방은 그랬다. 바닥은 발 딛을 틈이 없었고, 방 안 공기에는 숨 쉴 틈이 없었다. ‘틈’. 틈이라는 말을 발음할 때 내는 조음기관의 작용을 좋아한다. 혀를 튕기고 입술을 닫으며 ‘틈’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마다, 틈과 여백이 사람을 살게 한다고 생각을 했다. 몸 하나 뉘일 틈, 숨 쉴 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 그 사이에서 삶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틈 없는 방은 상징적이다. 나는 틈 없는 곳에서 더는 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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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고시원에서 살아서뿐만은 아니겠지. 고시원이라는 환경만큼이나 내 안에서 작용한 꽁한 마음들도 영향을 미쳤을 게다. 밤마다 느끼는 허한 감정이나 아침마다 느끼는 무력함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더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고시원에서 잘 사는 사람도 있는데 왜 나는 이토록 정돈되지 않는 생활을 할까, 같은 나를 탓하는 물음들이 자꾸만 솟아 올라왔다. 다들 잘 사는 것 같았다. 세상은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착착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고, 사람들은 그 질서를 착착 지키고 스스로를 다스리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단지 나 한 사람만 어긋난 듯 마음이 꽁한 날마다였다. 고시원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다 설명되지 못할 마음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지만 따지고보면 고시원이라는 사는 곳 때문에 벌어진 일로 숫제 환원해버릴 수 없다뿐이지 모두 연관되는 문제 같았다. 그래서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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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여름이 다가오고 있기도 했다. 고시원에는 에어컨이 없다. 작은 선풍기로 버티기에는 기후 위기가 매서웠다. 하여, 부동산 몇 군데 발품을 판 끝에 사무실에서는 조금 멀지만 동네가 괜찮은 주택가로 이사를 했다. 물론 에어컨이 있는 방으로. 에어컨 빼고는 아무런 옵션이 없었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았다. 내가 내 방을 꾸밀 수 있는 ‘틈’이 생긴다는 거니까. 그렇게 보면 새로 이사한 집에는 틈이 가득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방을 채울 틈이 정말 가득했다. 부동산 계약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 바닥을 쓸고 닦았다. 고시원과 본가에서 들고 온 짐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당근마켓에서 사온 책상도 조립했고, 일주일이 더 지난 후 얘기지만 이케아에 주문한 침대 겸 소파도 조립했다. 그런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방의 여백을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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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틈의 멋진 점은 가능성이다. 틈이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니까. 새 방이라는 꽤 괜찮은 틈을 얻었기에 나는 거기다 여러 물건을 채워넣을 가능성을 얻었다. 공간은 언제나 유동적이므로 그 가운데서 앞으로 버릴 물건도 있을 테고, 새로 들어올 물건도 있겠지. 고시원에서는 이런 가능성이 없었다. 내가 나로 방을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없어서 고시원 방에서는 늘 답답했다. 이제는 좀 낫다. 방을 채워나갈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비약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다. 삶은 태초에 비어있다. 살면서 무언가 큰 업적이나 성과를 이루게 되리라는 확신을 얻기는 분명 힘들다. 그렇지만 확신이 없다는 점은 도리어 설렘이 되기도 한다. 산다는 건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 동안 무엇이 이루어질지 모르는 가능성 때문에 멋진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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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는 자주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내일, 다음달, 내년에, 10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 모른다는 게 너무 두려웠다. 미래를 몰라서 불안했다. 정확히는, 내가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모른 나머지, 혹은 원하는 미래가 있더라도 그걸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 나머지 내가 원치 않는 모습으로 내 미래의 시간이 채워질까 두렵고 불안했다. 이사도 했겠다, 마음을 조금은 고쳐먹어봐야겠다. 내가 채워나갈 시간들을 덜 불안해하고 더 기대하는 쪽으로 마음을 비틀어봐야겠다.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정신이 깃들겠지. 무엇이건, 어떤 것으로건 채워질 내 미래의 시간들에 미리 저주를 퍼붓는 일일랑 그만둬야겠다. 이사하고 두 달쯤 지난 지금, 아직도 새로 이사온 집에는 틈이 많다. 한동안은 얼마간 휑하더하도 많은 물건을 들이지 말아야겠다. 이 틈을, 가능성을 만끽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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