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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다협동조합 May 06. 2021

네 이름은 금식이야

비진학 청년 1인 주거 이야기 - 정래의 홈―에세이 2





겉으로 보이는 내 삶의 태도나 내가 만들어낸 성과가 아니라, 내 존재 그 자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눈치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나는 집으로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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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난 아침,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꽃집이었다. 작은 화분이라도 들여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방이 휑했다. 짐은 그럭저럭 정돈된 반면 누군가 사는 집 같지는 않았다. 정제된 언어로 풀이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방이 쓸쓸해보여서, 그래서 식물을 들여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마침 고시원 바로 옆 건물에 작은 꽃집이 있었다. 꽃집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작은 화분에서 살고 있는 금전수를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물을 많이 주지 마세요. 가만히 둬도 잘 자라요.” 꽃집 사장님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나는 먹기도 많이 먹고, 가만히 두면 아무것도 못 하는데.’ 그래, 그런 못난 사람이니까 반려식물이 필요한 거겠지. 덜 먹고, 잘 자라는 식물을 보고 돌아볼 줄 알라고. 먹기도 많이 먹고, 무엇이건 가만히 하게 두면 아무것도 못하는 못난 내가 혼자서는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그래서 너를 들이는 걸 거야. 금전수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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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어떤 이름으로 할까 고민하다 ‘금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금전수니까 금식이, 물을 적게 먹으니까 금식(禁食)이. 마침 그를 방에 데려온 날도 금요일이었다. 이름을 붙이니 그가 살아있다는 감각이 더해졌다. 그 이후로 이 방에서 사는 생명이 나 하나뿐이라는 이유로 비참한 기분이 들 참이면 늘 금식이가 위안을 줬다. 나더러 이 방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생명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는 사실이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에 브레이크를 걸어주곤 했다. 고되고 힘든 서울살이에서 숨이 턱턱 막혀올 때마다 금식이에게 의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곤 했다. 나는 고시원 방에서 혼자였지만, 동시에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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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여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꽃을 피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들이고, 또 그 꽃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 다시 갖은 노력을 들이는 지난한 과정을 내가 키우는 식물이 겪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기를 바랐다. 꽃을 틔우면 그걸 보는 사람들은 자꾸만 가타부타 촌평을 남긴다. 꽃이 예쁘다, 색이 진하다, 향기가 좋다……. 그런 평가에 나는 지쳐있었다. 누가 되었건 그러지 않겠느냐마는,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나는 남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끈기, 자신감, 근면성실함 같은, ‘정상적인’ 생애주기에 요구되는 덕목에 부합하려고 늘 발버둥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어나서 잠에 들 때까지 모든 생활의 중심은 욕망이 아니라 당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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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는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없었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했고, 이른바 ‘생활태도’에 따라 상벌점이 부여됐다. 복도에서 상급생을 만나면 반드시 인사해야 했고,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합을 받기도 했다. 그곳은 집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집다운 집은 내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평가받지 않는 곳이다. 함께 사는 세상이니만큼 언제건 어디서건 평가에서 자유롭기를 바라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최소한 내 집에서는 남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내 삶의 태도나 내가 만들어낸 성과가 아니라, 내 존재 그 자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눈치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나는 집으로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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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러 꽃을 피우지는 말고,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방식으로, 나의 삶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 그러니 나와 함께 살 식물도 꽃을 피우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금식이가 내 옆에 있다. 금식이는 잘 살고 있다. 봄기운이 물씬 밀려오는 요즘, 금식이는 새싹을 셋이나 틔웠다. 그렇게 싹틔운 모습이 좋다. 들판이 아니라 작은 화분에서 살아도 그곳을 집으로 여기고 싹까지 틔우는 금식이의 모습이 마냥 부럽다. 나도 내가 사는 고시원을 집으로 여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만 고시원은 눈치보지 않는 공간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쯤 눈치보지 않고, 평가받지 않는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요원하기만 하다. 금식이를 데려온 그날, 나는 고시원 방 침대 위에 쪼그려 앉아서, 창가에 자리잡은 금식이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여기 괜찮냐고, 힘들지는 않냐고. 그렇게 금식이에게 자주 말을 걸었다. 실은 그게 내게 거는 말이었다. 서울, 고시원. 여기 정말 괜찮냐고, 힘들지는 않냐고. 그렇게 말하다보면 고시원이 힘들지 않고 괜찮은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처럼 자꾸만 금식이에게, 내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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