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은 Jul 13. 2021

쑥 팔기

80년대 삼성동에는 쑥이 자랐다.


지금 내가 사는 우리동네엔(삼성동이 아니다) 쑥떡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쑥인절미가 있다.

지인의, 에르메스를 거론한 추천에 진심어린 콧웃음을 선사했다. 훗- 네 얼마나 맛있나 볼테다. 눈도 없는 쑥떡이랑 초면에 눈싸움을 한다. 아 그런데 한입 두입 베어먹을때 마다 향긋한 쑥 줄기가 한올한올 치실처럼 이 사이에 사~악 걸리는 것이, 세상에! 내가 여적 먹었던 쑥떡은 쑥떡이 아니라 쑥색인 떡이였던거다. 

이렇게 되면 지인이 참 고맙다. 잠시 의심한건 미안하면 된다. 이제 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다 믿을 판이다. 갈래갈래 쑥 가닥이 떡반죽에 차곡차곡 몇 개의 레이어에 걸쳐 자리한다. 과히 에르메스 스카프의 프린트를 몇 차례에 걸쳐 레이어 입히는 작업과도 같다. 지인이 에르메스라 한 것은 그만큼 귀한 맛이라는 소리였을것이다. 정작 먹어보니 재료와 공정과정이 명품인것이다.


맛에 대해 더 설명하자면 쑥줄기가 이에 걸려 불쾌하냐, 하면 그게 또 쫀득한 인절미가 씹히면서 다시 이 사이에 낀 쑥줄기들을 스르륵 휘감아 데려간다. 처음 몇 번 씹을때는 전혀 단맛이 없다. 찰기만 느낄뿐. 씹을수록 침과 섞여 달근해질 즈음 삼키지도 않았는데 목구멍으로 호로록 내려간다. 목구멍 아래서 누가 잡아 당기는게 분명하다. 목구멍 아래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자아가 생긴다. 저도 먹고픈게지. 입에선 안 넘어가려 계속 씹어대고, 목에선 잡아 끌고 참 안타까운 이별이다. 괜찮다. 또 한입 베어물면 된다.

지방에 계신 어른들에게 보내 드리고 싶은데 지방엔 배달이 안된단다. 당일 만들어 당일 섭취가 확실한 수도권 내에 한하여 배송을 하신단다. 쑥사장님의 저 서늘한 자부심이라니! 맛을 지키고자 하는 저 뚝심과 소비자를 안달나게 하는 저 날카로운 판단력. 아 명품이다.

나는 지금 쑥인절미 사러간다.





쑥은 내 어린시절 일탈이다. 

친구 수현이는 5학년 초에 전학을 온 친구이다. 단짝 지이와 내가 짝꿍이고, 전학 온 수현인 우리 뒤에 혼자 짝 없이 앉았다. 보통 전학 온 아이들은 기존 아이들에 기가 눌려, 분위기 파악을 하려, 며칠 조용히 지내는 게 관행이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질문에 짧은 대답을 하거나 그 호기심도 안 보이면 전학 온 아이는 며칠간 그 존재감이 없다. 그 아이 이후로 새로운 전학생이 오면 그때서야 조금씩 기존 아이들과 섞인다.


  수현이는 예뻤다. 어릴 적 내 예쁘다는 기준은 쌍꺼풀의 유무이다. 수현이는 쌍꺼풀 큰 눈에 얼굴은 하얗고, 구불구불한 긴 갈색 파마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다녔다. 수현이의 팔다리는 방아깨비처럼 길고 가늘었다. 얌전하게 생긴(생겼다고 생각했던) 수현이는 전학 첫날부터 앞에 앉은 나와 지이의 등을 수업시간에 자꾸 톡톡 건드렸다. 내가 응답을 안 하면 지이를, 지이가 대답 안 하면 나를, 번갈아 가며 콕콕 찍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학교 수업과 관련된, 새로운 전학생으로서 당연히 모르는 진도나 준비물 따위를 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5학년 지은이와 지이는 새로운 전학생의 사정이나 심정을 헤아릴 만큼 절대 너그럽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다 선생님에게 떠든다고 혼이 날까 무서웠다. 선생님께 지적을 당했을 때 쏟아질, 반 아이들의 시선이 싫었다. 전학생을 도와주는 거예요~라고 나 자신을 변호하면 되는 줄도 몰랐다. 그게 다 아니면 단순히 그냥 귀찮았을 수도 있다.


  수현이는 한 명씩 시간차로 집적이던 것에서 전략을 바꾸어 우리 둘을 한 번에 공략했다. 수현이는 나와 지이의 맞닿은 어깨나 맞닿은 팔 가운데를 연필이나 손가락으로 부비부비 비집고 들어왔다. 지이와 나는 맞닿은 각자의 어깨 한쪽씩에 힘을 바짝 주어 서로 더 딱 붙이고 틈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버텼다. 고개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행여 벌어질까 어깨 틈을 메웠다. 수업 내내 땀까지 삐질 삐질 흘리며 버텼다. 그 정도면 수현이 한테 화를 내거나 선생님께 이를 수도 있는데 둘 다 그러지도 않았다. 다만 둘이 쑥덕쑥덕 눈 맞추며 수현이가 성가시게 굴어도 절대 뒤 돌아보지 말자고 더 어깨 각을 세웠다. 신기한 건 그렇게 애를 쓰고 수현이를 버티던 기억은 너무 생생한데 어떻게 우리 셋이 친해졌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현이를 들어오지 못하게 할 틈도 없이 그럴 겨를도 없이 친해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엉뚱하단 말을 들어와서 어느 시점, 생각했던 일이나 생각했던 말을 다 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철은 없는 것이, 다행히 눈치는 있어서 생각대로 다 해버리면, 다 말해 버리면 주변 사람들이 심하게 당황한다는 걸 일찍이 알아챘다. 그때부터 사뭇 멀쩡한 아이처럼 행동하고 잘 살아왔다. 그 와중에 친해진 수현인 나보다 더 엉뚱하고 무엇보다 그 엉뚱한 생각을 다 행동으로 옮기는 추진력이 있는 아이였다. 수현이는 리더십이 있고, 노래도 잘하고, 흉내도 잘 내고, 같이 다니면 뭐든 그렇게 다 재미있었다.


  그날은 수현이, 지이와 오전반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수현이네 삼산아파트 앞에서 헤어지는 게 아쉬워 셋이 손을 번갈아 잡았다 놓았다, 눈을 맞췄다 떼었다 하고 있었다. 그때, 저쪽에서 매일 방에서 담배를 피우고 앉아 계시던 수현이 할머니가, 지면 100°에서 120° 정도 굽은 등을 앞세워 비장하게 걸어 나오고 계셨다. 할머니는 빛바랜 분홍색, 파란색 등 몇 개가 겹쳐져 갈색 정도로 보이는 소쿠리를 잔뜩 들고 계셨다. 할머니의 등과, 연장이 들어 있는 소쿠리와 땅이 얼추 평행선이 그려져야 제대로 걸으실 수 있을 텐데 이건 뭐 슬쩍 보기에도 참 불편한 각도로 걸어오셨다. 할머니 어디가? 할머니 내가 들어줄까? 수현이가 다가서자 우리도 따라 부축을 하고 소쿠리에 어정쩡히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어느새 우리 셋은 소쿠리를 숭배하듯, 할머니를 호위하듯 걸어 걸어 경기 고등학교 근처나 오천 주유소 근처 공터에서 쑥을 캐고 있었다. 어떤 놈이 쑥이고 어떤 놈이 잡풀인지, 어떻게 생긴 쑥이 더 맛나고 어떤 쑥이 질긴지 배워가며 캐다 캐다 보니 할머니께서 많다고 잘했다고 흙먼지까지 덜어 가지고 가시며 칭찬해 주셨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는 어디 가셨는지 그때부터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더 이상의 각출이 없고 내가 캔 쑥, 내 바구니 쑥은 내 것이 되는 신비로운 자유경제 체제로 돌입한 것이다. 누가 더 많이 캐는지 내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더 많다고 우기기도 했을 것이다. 같이 공터 언덕을 줄지어 다니다 곧 뿔뿔이 흩어져 지금 내 시야에 걸리는 범주는 다 내 영역이고, 그 안의 쑥은 다 내가 캘 거라는 비장함으로 할머니 등보다 훨씬 굽은 등 모양을 하고 한동안 쑥을 찾아다녔다.


쑥이 올라오는 봄, 오전반이 끝날 시간엔 여름만큼 따뜻하지만 해는 빨리 진다. 해가 질 때 즈음에야 소쿠리 배를 서로 맞대어 놓고 이걸 어쩔  것이냐 얘기를 했다. 팔자. 할머니가 이렇게 좋아하신 걸 보면 쑥은 충분히 상품성이 있다. 어떻게 팔 것이냐. 일단 시장에 가 보자. 언덕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그제야 주섬주섬 챙겨 근처 시장 쪽으로 걸어간다. 그 당시 삼성동에서 장을 보려면 스파라는 대형 잡화점 옆 실내 시장으로 갔다. 전통시장의 형태를 띤 매대였지만 생긴 지 얼마 안돼 나름 깨끗하게 관리가 되어 있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남는 매대가 있다. 소쿠리 두 개를 앞에 나란히 놓고 그 뒤엔 앉았다. 우리 등 뒤에는 학교 가방과 남은 소쿠리 하나를 두었다. 앞에 두 개 소쿠리에는 소복이 담지 않고 듬성듬성 쑥 탑을 쌓았다. 우리가 진열할 동안 수현이는 시장조사를 했다. 시장 안쪽 끝까지 쓰윽 돌고 오더니 한 소쿠리에 오백 원하면 된겠단다.


팔릴 리가 없다. 하늘도 쑥색으로 칙칙하게 변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집 생각도 나고 엄마 생각도 난다. 엄마 생각이 난 것은 엄마가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린 5학년이다. 학교 끝나고 어딜 돌아다니냐고, 집에 바로 안 오고 뭐 하고 다니냐고 혼날까 하는 걱정이다. 나인지, 지이인지, 수현인지 누가 먼저인지 책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매우 불편한 자세로 숙제를 하기 시작한다. 꼬질꼬질 손톱에 낀 흙이 눈에 들어올수록 연필을 더 부여잡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썼다. 분명 푸른 쑥이었는데 손은 이상하게도 꾀죄죄 갈색이 물이 들었다. 손끝을 보며 겁인지 화인지 뭐 그런 것도 점점 생기는 거 같다. 그즈음이면 이미 쑥은 다 잊고 셋 다 그냥 숙제만 다 하고 집에 가자 뭐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뭐 하느라 이렇게 늦어!" "지이랑 수현이네서 같이 숙제하고 왔어요~" 이 정도는 해 줘야 "그. 래. 도. 밥 먹을 시간엔 들어와야지" 정도로 끝난다. "그. 래. 서? "로 시작되는 질문을 받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거 얼마니?" 셋 다 동시에 고개를 들고 "오백 원이요" 아, 개시다. 갑자기 그 집 쑥이 좋다고 순식간에 입소문이 난 것인지, 어린애들이 공부하며 장사한다는 동정 소비 심리인지 뒤쪽에 있던 쑥까지 순식간에 다 팔렸다. 우리는 오후 한나절 만에 경제를 배웠다. 훗날 지이는 은행에서 오랫동안 외국환 일을 했다. 수현이는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한다. 나는 마케팅을 했다. 스스로 소싱을 하고, 판로를 모색했으며, 경쟁사를 조사하고 적절한 시장가를 책정, 동업에 학생시전 마케팅도 했다. 우리는 각자 오백 원짜리 두 개씩을 챙겼다. 이 동전 두 개는 아주 오래오래 내 보물 1호였다. 내 친구 두 명도.


삼성동에서 쑥을 캐 판 적이 있다고 하면 열이면 열 설마~ 한다. 엄마는 그날 내가 왜 늦었는지 나중에야 알게 되셨다. 언니는 내가 쑥을 팔았는지 쑥을 먹었는지 모른다. 그 많던 쑥은 누가 먹었나.



이전 05화 강남 과도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