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자만이 살아 남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80년대 초등학교에 다닌 세대들은 경도의 인권유린을 야곰야곰 받았다. 물론 그때 우리들은 인권을 제기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 나이 특유의 무지함과 천진함으로 아동노동 착취를 놀이로 승화시켰다.
일례로, 교실 마루 광내기.
1980년 초 강남의 H 초등학교 학기 초에는 60여 명으로 시작한다. 8학군 운운하는 뉴스가 자주 들리고, 학년이 끝날 즈음이면 학생 수는 80여 명이 훌쩍 넘는다. 하루에 2명씩 전학을 오는 날도 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교탁에 턱을 붙이고 뒤통수를 뒷목에 얹고 수업을 들었다. 나는 초등학교 6년을 통틀어 첫째 줄과 둘째 줄을 벗어난 적이 없다. 키가 큰 아이들은 교실 뒷벽에 의자 등받이가 가 닿는다. 키가 큰 아이들과 작은 아이들의 교류가 힘들 만큼 교실 안은 빽빽하다. 한번 교실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 쉽지 않다.
80년대 초 늘어나는 학생 수를 수용하기 위해 급하게 새로운 초등학교가 곳곳에 개교했다. 청담, 삼릉, 도성, 봉은, 대현, 대곡초등학교… 근처에 새로운 학교가 개교를 하면 이사를 하지 않았는데도 다니는 학교가 바뀔 수가 있다. 5년간 다니던 학교에서 강제 전학을 당했다. 새로운 학교 측에서는, 학생을 인수한다라고 표현했다.
새로운 건물, 새로운 시설…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노동의 시작이다. 오래된 수건 반쪽을 가져오란다. 준비물을 준비하지 않은 아이들은 부산을 떨며 큰 수건을 가지고 온 아이에게 조금 잘라 달라한다. 부욱- 찢어 손바닥만 한 걸레를 각자 쥔다.
얼마 후 문방구에는 ‘손걸레 있음’ 문구도 나붙는다. 손등만 한 동그란 철제 왁스 통도 준비해 온다. 마룻바닥 광을 내기 위한 고체 왁스다. 구두약을 가져오는 아이도 있었다. 가끔 공기를 가져와서 30년 내기, 콩콩이, 제비꺾기등 현란하게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고, 책상 모두를 교실 앞쪽으로 우르르 밀어 놓는다. 우리는 교실 뒷벽을 보고 횡렬로 정렬한다. 적당히 자기 구역을 설정하고 무릎을 꿇고 앉는다. 두 손에 걸레를 끼고 엉덩이를 들썩여가며 열심히 바닥을 문지른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상관없다. 하라면 한다. 왁스를 두껍게 바르고 마룻바닥에 자기 얼굴이 비칠 때까지 열심히 문지른다. 얼마 후, 교실 바닥보다 걸레가 더 맨질맨질해진다.
가끔, 거친 마룻바닥에 삐져나온 가시에 손이 찔리기도 한다. 내 손에 가시보다, 내 발아래 교실 바닥이 중요하다. 가시는 집에 가서 빼면 되지만, 교실 바닥은 지금 닦아야 한다. 내 옆의 아이보다 내 구역이 더 광이 나야 한다. 교실 바닥 광내기 미션이 끝나면 누가 더 잘 미끄러지나 슬라이딩 내기를 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질 수는 없지 않은가!
새 운동장은 멀리서 보면 조경도 잘 되어 있고 번듯했지만 자갈이 많았다. 학년 별로 줄지어 한발씩 앞으로 전진하며 눈에 띄는 자갈을 주워모아 한곳에 모아 버리는 임무도 수행했다. 수백명이 흙모래더미에서 자갈을 솎아 내면 주위가 온통 매케한 모래먼지로 가득하다. 물론 그때는 그것은 노동이 아닌, 누가 더 예쁜 자갈을 먼저 발견하나 내지는 누가 더 많은 자갈을 모으나 하는 등의 놀이였다. 지금은 그 운동장에서 후배들이 승마강습을 받는다고 들었다.
또 한 예로는, 그 터져나갈 듯한 교실 한 가운데 떡 하니 자리잡은 석탄난로이다.
난로가 없어도 따뜻할것 같은 밀도인데 겨울이면 어김었이 난로를 피웠다. 키가 좀 큰 남자아이들은 아침마다 창고에 줄을 서서 조개탄을 받아 날랐다, 오후엔, 아직 뜨거울 조개탄 재를 긁어모아 소각장으로 내다 버렸다. 그 까불락거리는 녀석들이 그래도 큰 사고 없이 그 임무를 수행해냈다.
1980년대는 교실 바닥은 가시가 천지이고, 놀이터에선 그네가 꼬집고, 시소 밑에 타이어가 없던 시절이다. 뺑뺑이에서 놀다가 두어 명 튕겨 나가도 뺑뺑이는 돌았다. 원심분리의 원리를 놀이터에서 배웠다. 정글짐과 구름다리를 오가며 하는 얼음 땡은 유격 훈련이다. 발이 땅에 닿으면 죽었다. 죽지 않기 위한 그 땀 냄새란… 체험 삶의 현장이다.
교실 안에서 그 많은 아이의 땀 냄새와, 조개탄과, 곰 표 왁스 냄새로 머리가 아팠다. 어디서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누구한테 맞지도 않았는데 많이 아팠다.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난생 처음 알았다. 마침 걸레을 안 가져와 본의 아니게 쉬고계신 선생님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가서 말을 했다.
“어디? 머리가 아파? 기다려봐.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거야”
1980년대에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