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밥통, 에어컨, 무선전화기의 등장
요즘 더위 같아서는 ‘덥다’는 단어가 아닌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80년대 초 삼성동 여름도 오늘처럼 더웠다.
80년대 초 10차선 테헤란로 가로수들은,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얄상하고 비실했다.
놀다 놀다 좀 쉬고 싶어도, 아이스크림 막대기 같은 초등학생조차 쉴만한 나무 그늘 한 칸이 없었다. 오늘보다 더 덥다 해도 어디 들어가 땀 식힐 데도 없었다.
제과점이나 은행에 들어가 봐야 누런 골드스타 선풍기 두어 대가 벽에서 시끄럽게 서로 마주 보고 도리도리 하고 있을 뿐, 등에 달라붙은 찐득한 땀을 식혀주진 못한다.
그런 80년대 초 삼성동에도 어느새 새로운 문물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 좋아졌다. 교실 가운데 석탄 난로에 철제 도시락을 포개 놓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겨울엔 플라스틱과 스뎅으로 만든 코끼리표 보온 도시락이 유행을 했다. 마호밥통이라고도 불렀다. 마호병도 많이 눈에 띄었다.
유행은 따르라고 있는 것이다. 물통과 밥통, 반찬통, 국통이 한꺼번에 들어있는 보온밥통을 손에 쥐었다. 시작은 일제 코끼리표였으나 얼마 못가 국산 코스모스 표로 바뀌었던 것 같다.
밥통을 밥통이라 부르지 않고 무기로 사용한 게 사단이었다. 코끼리표 밥통 줄을 엄지와 검지에 단단히 쥐고 뱅글뱅글 돌리면 이게 천하무적 무기로 돌변한다. 하굣길 장난을 걸던 사내 얘들도,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물론, 이렇게 물건을 오용할 경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천하의 코끼리표 밥통은 아스팔트에 크게 대미지를 주고 장열히 그 명을 다했다.
며칠 후, 우람한 코끼리는 다소곳한 코스모스로 탈바꿈했다.
우리 초등학생들이 보온밥통에 심취해 있을 때, 엄마는 무선 전화라든가 에어컨 같은 가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처음 에어컨을 설치할 때, 창문 유리를 잘라내는 것부터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유리창문 일부를 에어컨만 하게 잘라내고 그 자리에 에어컨을 끼웠다.
80년대 초, 에어컨을 트는 것은 집안 큰 행사였다. 엄마가 "에어컨 튼다"하면 신나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문이란 문을 다 닫는다. 전기를 아껴야 한다며 현관문, 화장실, 창문, 방이란 방 문은 모조리다 닫는다. 그것도 모자라 이층 방문, 창문 베란다까지 다 받으러 뛰어다닌다. 아까 보다 숨도 차고 아까보다 더 더워진다.
사실 에어컨 한대로 온 집안을 식힐 수는 없었다. 끄면 바로 더워지는데도 밖보다 낫다며, 에어컨 30분 틀면 세시간을 온 집안 문이란 문을 다 닫아놓고, 온 식구가 오랫동안 헥헥거렸다.
아빠의 신기술 사랑에 우리집은, 지금 말하면 소위 얼리어답터 가족이었다. VHS와 베타가 서로 경쟁을 할 때, 아빠는 디자인이나 기술 차원에서 당연히 베타가 이길거라고 장담을 하고 베타 비디오플레이어를 덜컥 사왔다. 얼마 안되 비디오시장은 저렴하게 공급한 VHS가 장악을 했다. 그런식으로 우리집 안에서만 반짝하다가 사라져간 기술들이 적지 않다.
하루는 아빠가 집으로 전화를 하셨다. 엄마를 찾으셨다. 무선전화를 들고 미장원에 있는 엄마에게 냅다 뛰었다. “아빠 잠깐만, 엄마 미장원에 있어” 벽돌 하나 반만 한 무선전화기를 손에 쥐고, 운동화를 급하게 구겨 신고 비장하게 뛰었다.
평일 낮 동네 미장원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 머리엔 하나같이 큰 수건 똬리를 얹어 목을 빳빳이 하고들 있다. 전화가 끊길까 쉬지 않고 달려 미장원 문을 활짝 열어젖힌 나를, 일제히 슬로모션으로 목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보았다기보다는… 모두 일제히 내 손이 들고 있는 무지막지 큰 무선전화를 보고 있었다. 쟤 뭐해...
“엄마 전화 왔어…여보세요? 여보세요?” 엄마에게 전화를 넘겨주기 전, 나는 전화 넘어 분명 있어야할 아빠를 애타게 찾았다.
전화 속 아빠는 간데없었다. 1980년대 초 등이 서늘해지는 여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