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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리미 Jun 15. 2021

80세의 수상록

사막(四幕)의 카덴짜

서언


 카덴짜는 음악 용어이다. 연주자가 악보에서 잠시 놓여나와 재능 껏 빠르고 열정적으로 혼신을 다해 연주할 수 있는 자연유로운 공간이. 영끌해서 아파트를 사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카덴짜 부분을 완벽하게 연주하고

나면 감동을 한 객석에다서는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지며 박수소리가 천정을 뚫는다.     

 고등학교 동기생 단톡방에 들어가 보았다. 한 친구가 자기 80세 생일 연회를 치르고 사진을 몇 장 올렸다. 축하 문자가 올라오며 우리 동기들이 대개 다 80이 됐으니 단체 축하연이라도 해야겠다며 조곤조곤 중얼대고

있었다. 난 아직 79세다. 1년의 여유를 부리면서도....문득 학교 때 배운 영어 문장이 생각이 난다.


'already.....but not yet...'

 

 5, 60대 까지만해도 나이 뒷자리에 9자가 들어가면 2년이나 지난 후에 실제 나이를 인정했다. 우선 만으로는 아직도 9세였다. 그 다음 해도 여전히 9세이다. 아직 생일이 안되어서이다. 생일이 늦을수록 9세에 대한 기간이 길어졌다. 59세를 세 번 쯤 버티고 나서야 겨우 60세라고 마지못해 내놓았다.


 70세는 두 번으로 단념을 하고 80세는 오기 전부터 이미 벌써 80세를 인정하고 노년을 즐기기로 작심을 한다. 집안에 생일이 오거나 명절이 오면 아직도 부엌에 나가 뭘 도와줄까 하고 평생 해오던 일에서 놓여나질 

못했다.

자주 그릇을 깨 먹고 잘 태우고 떨어트리고 하니까 부엌에 안 나오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며 며느리며 동생이 거실 쪽으로 밀어 버린다. 번번히 부엌에서 쫓겨나며 이제 그만 미련을 접기로 했다.

집안의 잡사에서 모든 권리와 의무까지도 벗고 나니 시간이 널널해서 좋았다. 밥도 식구들과 달리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돈 쓸일도 없고 돈 벌어 세금낼 걱정도 없다. 의무와 권리에서의 해방이다. 그러나 것도 하루 이틀이고 한 두 달이지 고질적인 병세가 되살아났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아무것도 안 하니 밥도 세끼 다 먹기 버거웠다. 그러나 두 끼는 말 뿐이지 때 찾아 먹지 커피 마셔야지 과일도 먹어야자  달달한 것도 생각나지 심심하니까 식충이가 돠어가고 있었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몇 십년 다니던 회사에서 명퇴를 당한 50대처럼, 습관적으로 해 온 일들이 맴맴 돌고 남아도는 시간들이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조 성진의 피아노 곡 중 특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곡을 대 여섯 시간 씩 보고 들으면서, 젊은 나이답게 당당하고 자신있게 연주하며 특히 카덴짜를 아름답고 훌륭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감탄했다. 감탄과 더불어 내 인생의 제 4막을 부끄럽게 보내지 말자.....80대도 정정당당하게 신바람 내며 살아야 하는데...

 내 방법의 김치 토스트를 만들어 팔아볼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내가 쓴 작품을 내가 제작하는 방법은 없을까. 벼라별 생각을 다하며 당당하게 살아야 하는 헛꿈을 꾸어대고 있었다.


'아..!!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해.'


 하는 소리가 조성진의 연주 속에서 들려왔다.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 뜻하지 않은 무대에 올라 100여명의 오케스트라와 협주하는 협연자 입장이 되었던 나를  소환하고 있었다. 독주자도 어렵지만 협연은 더욱 긴장되고 어렵고 벅차다. 그리고 외로웠다. 원고지 첫 자가 마음에 안들면 휘익 버렸다. 

그렇게 원고지의 시체가 방바닥에 가득 널려있다. 쓰다보면 버린 원고지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다시 방안을 기어다니며 원고지를 찾아내어 계속 쓰기도 했다. 원고 마감 시간 즉 데드 라인을 넘지 않으려고 밤을 새며 완성된 원고를 방송국에 손수 들고 부리나케 택시 잡아 타고 가곤 했다..

언제가부터는 컴퓨터로 원고를 쓰고 메일로 대본을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전기가 1 초 동안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옛날 컴퓨터는 복원 기능이란 것이 없었다. 밤새 쓴 원고가 휘익 날아간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PD에게 전화했다. 사정을 이야기 해다. PD는기다리고 있을테니 천천히 다시 쓰세요 하며 울먹이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 날 처음으로 마감 시간을 어기고 100장이 넘는 원고 분량을 펑펑 울면서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다행히 대충이라도 번호를 매겨서 구성을 해놓은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것을 참고했다. 밤 중에 원고가 끝나 보내고나자 대기하고 있던 배우들과 감독 스탭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배우와 스탭들이 오케스트라처럼 100명은 되었다. 그들은 대본이 나오지 않으면 꼼짝도 못한다. 

 100여명이 스텝들과 배우들이 녹화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려면 작가는 책임감을 갖고 원고 기일을 엄수해야만 한다. 방송국은 서로 엄청난 유기관계를 갖고 있는 공동체였다. 누구 하나 튀어서도 안되며 모든 일이 조화 속에 일어나야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똑 같다. 누군가 튀었다하면 그는 실수로 인해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한다.      

 피아노 연주는 80이 되어도 할 수가 있지만 드라마 작가는 그렇게 숨가쁜 일은 할 수가 없다.  너무도 극한 작업이라 노인은 힘이 달려 계속 할 수가 없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 어린 조성진의 피아노 음악 속에서 묻어나오고 있어 자다.


'드라마를 쓸 수 없으면 다른 글이라도 쓰자.'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차이콥스키냐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2악장의 느리고도 애절한 슬라브 풍의 멜로디에서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단순하고 간결한 이야기들을 쓰자. 구성이니 스토리니 캐릭터니....그런 잡다한 군더더기를 빼버리고 단순한 느낌 또는 깊이 생각한 사색의 편린들....그 결과물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쓰기 시작했다. 작업이 빠르지 않았다. 청탁 받은 에세이는 두 시간이면 다 썼는데 한 꼭지 끝나는데 사 나흘이 걸리고도 다시 수정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아 진도가 생각보담 나가지를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썼다. 쓰고 싶으면 쓰고 쓰기 싫으면 열흘도 쓰지 않았다. 


 '세월아 가라...시간아 가라...하면서....'


 사막의 카덴짜라는 제목은 이미 적어놓고 썼다. 사막이란 연극의 4막과 모래벌판의 사막(沙漠)을 공유하고 있다. 沙漠과도 같았던 삭막한 에서 극지에서 극한의 일을 하며 살아왔던 일들을 인생 4幕이 되어 쓰고 있다.

처음 TV 드라마에 데뷔할 때처럼 왠지 담담하다. 왜 언제나 가슴이 떨리지 않고 담담한지는 沙漠과 4幕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쓴 온갖 넉두리를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마침내  쓰고 싶은 것들을 겨우 끝내었다.


 

                                                                                                                   2021. 3 1 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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