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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Sep 02. 2022

커피밭 사람들을 읽으며

2021년 2월 2일의 기록

땡볕 아래 10시간 가까이 커피를 따고 돌아온 엘레나는 콜라 한 잔에 아주 행복해했다. 나는 콜라 한 잔에 지금의 그녀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세상사람들이 콜라 한 잔으로 지금의 그녀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콜라 한 잔으로 인해 그녀만큼 행복해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설령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 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번다 해도 지금 이 엘레나 부부만큼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다. (커피밭 사람들, 73쪽)


책에 등장하는 커피 노동자들은 무척 고된 삶을 살지만 어쩐지 행복해 보인다. 매일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생에 경외심이 들 지경이다. 우리는 흔히 저개발국가의 행복지수가 의외로 높다는 통계를 접하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쩐지 ‘그렇겠지’ 하며 그 사실을 순순히 납득한다.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 땡볕에서 커피 열매를 일일이 골라 손으로 따고, 기름에 볶은 밥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삶이, 왜 더 나은 삶처럼 보이는 걸까.


캄보디아의 의사들과 항우울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자 했던 남아공의 의사 서머필드에 의하면 캄보디아의 의사들은 처음에 항우울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서머필드가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 약인지에 대해 설명하자 그제야 자신들은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서머필드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논밭에서 일하다 지뢰를 밟고 다리를 잃은 농부의 이야기였다. 의사들은 그에게 인공 다리를 달아주었고 얼마 후 그는 다시 논밭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곧 하루 종일 우는 상태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기 위해 농부에게 찾아가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고, 그의 고통을 깊이 이해했다. 그러던 중 한 의사가 그에게 젖소를 한 마리 사주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농부에게 젖소를 사주면 젖 짜는 일을 할 수 있을 테고 그러면 그는 자신을 망가뜨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논밭에 가서 일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지역 공동체는 이를 받아들여 농부에게 젖소 한 마리를 사주었다. 2주 내에 농부는 울음을 그쳤으며 한 달 내에 우울증이 사라졌다.


우울증은 흔히 뇌의 화학적 이상 반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우며, 약물에 의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고 약물을 복용해 온, 그래서 우울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된 요한 하리는 말한다. 우울증에 약물 치료가 효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닐지 모른다고 말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우울한 사람들이 마땅히 들어야 할 말은 ‘기운내’가 아닌, ‘우리가 너와 함께 할게.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을 거야’라는 것이라고.


그들 부부가 고향에 남겨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즈음에는 왠지 모르게 모두 분위기가 무거워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분위기 전환은 엄마 아빠를 따라와 축사에서 같이 생활하던 네 살 박이 카일린 몫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싶으면 꼬마 카일린에게 재롱을 피워보라 했다. … (중략) … 그런 카일린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하루간 쌓인 피로와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 그리고 코스타리카에서 불법이주자로 살아가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는 듯했다. (커피밭 사람들, 130쪽)


산업혁명 시대의 사회학자인 뒤르켐은 일찍이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를 개인 내면이 아닌 외부의 사회 구조에서 찾은 바 있다. 전통적 사회 구조가 해체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한 그는 자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 구조의 변화로 인해 연대의 방식이 변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한 개인들은 자살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이 구조적으로 아주 불량스러워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불량스러운 세상 덕에 나는 적당히 누리며 살아가고, 이들은 하루 종일 땡볕 아래에서 커피를 따며 그날 하루 생계를 잇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커피밭 사람들, 72쪽)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저 외면했을 뿐이다. 거북이의 코에서 빨대가 발견되기 전까지, 플라스틱 고리에 목이, 다리가 감겨 죽은 새의 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우리가 플라스틱의 유해함을 모른척했던 것처럼. 사회로 인해 병들고 도태된 개인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런 개인이 많아지면 사회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우울한 사람에게 손 내밀기보다 치료를 권하는 사회의 시각은 우울에 빠진 사람을 고장난 부품으로 취급하는 것만 같아 매정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우울을 느끼며 산다. 하지만 다들 힘들어, 나만 그런  아니잖아, 하고 넘어가기보다 나의 마음이 괴로워하는 소리에    기울일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충분히 아파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있으니까.


호밀밭출판사 We-rite 참여 원고

http://bu-rite.com/bbs/board.php?bo_table=we8&wr_id=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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