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1일차
10일 아침, 아침에 눈을 뜨니 지난밤 꿈이 너무 무섭고 학교에 가기가 두려웠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뛰고, 누군가와 심하게 싸우고 속상할 때처럼 심장이 조이고 아팠다.
혼자 집에 있자니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나서 차를 끌고 나갔다. 정신과에 들러 약을 받아 돌아오는 길에 가벼운 접촉 사고를 내고 말았다. 다행히 백미러만 살짝 부딪혀 연락처만 교환하고 끝났다. 울고 싶자 뺨 맞았다는 말처럼 내내 고여있던 눈물이 팍 터졌다.
저녁에는 언니가 와주셨다. 셋이 야식을 시켜먹고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 잤다. 언니는 괜찮다고, 자꾸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되니 병인거겠지. 하지만 한달음에 달려와 준 언니가 너무 고맙고 또 미안했다.
다음날인 11일, 다시 정신과에 가서 입원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선선히 입원의뢰서를 써주었다.
의뢰서를 들고 산 속에 있는 어느 정신병원에 왔다. 의사를 배정 받아 꽤 오랜 시간 진료를 봤다. 긴 생머리의 의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훨씬 다정한 분이었다. 나중에는 의사 선생님도 조금 우셨다.
위험성이 있으니 본인이 원하면 당장 입원할 수 있고, 가능하다면 일을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필요한 서류가 있으면 다 발급해주시겠다고 한다.
나는 3일만 입원해보겠다 했다. 평소에는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준의 자기 파괴적 감정들이 가끔 이렇게 폭발할 때가 있다. 집에는 잘 드는 칼이 너무 많고, 또 하필 우리집은 뛰어내리기 딱 좋은 높이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보건소에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실에 갇혔다. 갇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화장실도 갈 수 없고 밖에서 문이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CCTV도 있었다. 화장실도 아기들이 용변 훈련 할 때 쓰는 그런걸 써야했다. 그렇지만 기분 나쁘거나 갑갑하지 않았다. 창살이 있었지만 창문을 열 수 있었고, 창을 열면 가리는 것 없이 바깥 풍경이 훤히 보였다. 휴대폰은 커녕 격리실에서는 책도 읽을 수 없었다. 처음엔 약간 막막했지만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오롯이 혼자가 되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