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사랑하긴 했을까 믿을 수가 없잖아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를 낳고, 일 년. 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이브에 돌잔치를 하며 크게 한 판 했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던 설 명절에 진지하게 헤어짐을 결심했다.
남편과 나는 1년을 연애하고 결혼했고, 연애 기간 포함하여 많이들 싸운다는 결혼 준비 시기부터 아이를 낳기까지 만 5년의 기간 동안 한 번도 다퉈본 적이 없었다. 이를 자랑처럼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사이가 너무 좋아서 혹은 둘 다 성격이 좋아서 싸우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돌아보니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는 말은 “한 번도 화해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화해의 경험이 없었던 우리는 아이를 낳고 다툼의 빈도수가 늘어가자 풀어가는 방법을 모른 채 ‘헤어짐’이 대안으로 등장하던 시기였다.
“언니, 나 남편이랑 헤어져야겠어.”
“왜?”
“남편이 나한테 큰 소리를 쳤어.”
“남편이 너한테 왜 큰 소리를 쳤는데?”
“내가 잔소리를 해서.”
그날도 남편과 쎄게 한 판하고, 둘이 싸운 것을 시어머니께 티 내고 싶지 않아 오밤중에 501번 버스를 타고 한강대교를 건너며 지금 함께 글을 쓰고 있는 윤작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친정으로 갈까, 어디로 갈까 고민하며 인생 멘토인 언니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나름 아주 진지하게 상황을 설명하며 궁서체로 헤어져야겠다고 말하는 나에게 언니는 말했다.
“하영아, 음, 이건 말이지, 부부싸움으로 따지면 <난이도 하>야”
응? 이건 무슨 소리인가? 나는 아주 심각한데, 이게 난이도 하면, 난이도 중이나 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쏟아지는 질문에 언니는 찬찬히 설명해준다. 부부싸움에서 난이도 중(中)이나 상(上)은 부부 관계 외에 이해관계자들이 등장하고, 화해하고 나서도 상처가 남는 상황이 난이도가 높은 것이라 말해주었다.
“언니, 그럼 난 어떻게 해야 돼?”
“음, 남편이 큰소리를 쳐서 화가 났다고 했지? 네가 가서 더 크게 소리를 쳐봐.”
그러고 나서 이어진 처방은 둘 관계에서 더 잘못했다고 판단되는 쪽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된다고 하였다. 언니랑 통화를 하고 나는 신기하게도 상황이 <난이도 하(下)>가 되었다. 문제가 좀 가벼워 보이니, 친정으로 가야 하나 싶었던 마음은 백화점으로 향했고, 명동에서 내려 신발을 하나 샀다.
집으로 돌아가서 일주일 정도 ‘묵언 수행’에 들어갔다. 뭐, 어차피 헤어질 생각도 한 판인데 그걸 꼭 신속하게 실행할 일은 아니다 싶었다. 일주일 넘게 이어진 내 묵언 수행 속에 남편이 백기를 먼저 들었고, 나한테 큰소리치면 내가 더 크게 소리를 칠 것이라 엄포를 놓으며 우리는 싸운 후 화해하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배워가고 있었다.
저 말은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나의 남편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이다. 자신은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내가 변했다는 것이다. 그럼, 한결같이 다시 되받아치는 나의 논리는 ‘당신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말한다. 아빠가 되었으면 아빠의 역할을 해야지, 아빠가 되고 나서도 주말에 등산 다니고, 주말에 회사 워크숍 잡고 그러면 돼요? 안돼요?
‘초보 운전’ 딱지는 언제 뗄 수 있는 걸까? 누가 딱 정해 준 것은 아니지만 운전을 하는 운전자의 마음이 편해질 때 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초보 부모’ 언제 ‘능숙한 부모’가 되는 것일까? 아이를 낳고 돌이 되기 전까지 우리 부부는 ‘초보 부모’ 딱지를 붙여놓고 다니는 사람들 마냥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간신히 이렇게 지내면 되려나 보다 하고 익숙해질 때 즈음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다시 또 익숙해질 때 즈음 이유식을 해야 하는 등 ‘익숙’이란 단어가 등장하면 최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새로운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나도 미숙하긴 매 한 가지인데, 남편은 육아 초보자 대회가 있다면 일 등을 할 것만 같았다.
내가 잠시 식사를 차리는 사이 남편에게 기저귀라도 한 번 갈아달라고 부탁을 하면 남편은 기저귀를 벗기고 나를 쳐다보았고, 그럼 나는 다시 새로운 기저귀를 입히라 말해야 했다. 그럼 남편은 새로운 기저귀를 입혀 놓고 또 가만히 있는다. 그럼 다시 바지를 입히라고 이야기해야 했으니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가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한다 생각이 들었고, 내 입장에서는 왜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이 하나 돌보지 못하지 하는 불만이 쌓여갈 뿐이었다.
아이가 필요한 것은 엄마 눈에만 보이는 것이지? 한 밤 중 아이 우는 소리는 내 귀에만 들리는 것이지? 아빠가 되었으면 아이를 챙길 생각을 해야지, 자기를 챙겨 주지 않는다고 불만인 거지? 애 하나 돌보는 것도 너무 어려운데, 투덜이 스머프가 되어버린 남편까지 케어해야 하는지 참 난제였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남편에 대한 나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의 10점이었다. 남편은 밤새 이야기해도 이야기의 주제가 끊이지 않는 해비 토커로 늘 함께하고 싶은 재밌는 사람이었고, 내 삶의 아픔도 고단함도 품어주는 감동적인 사람이었다. 한 때는 결혼 예찬론자였던 내가 아이를 낳고 변한 것은 사실이다. 아빠가 된 남편에 대한 나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1점이었다. 남편으로서 만족도가 너무 높았던 탓이었는지 내가 기대했던 ‘아빠 역할’의 모습과 부합하지 않은 남편의 모습에 나는 잔소리 폭군이 되어 있었다.
육아 초보자이면 육아를 방해라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건만 남편은 한 밤 중에 술에 거나하게 취하고 들어와 간신히 재워 놓은 아이 둘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깨워놓고, 코를 도롱 도롱 굴며 가장 먼저 잠들곤 했다. 아, 한 대만 때려도 되나? 싶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사실 아이를 낳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의 바닥’을 보는 것이었다. 누군가 한테 큰소리를 내며 싸워본 적은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은데, 발가락부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쏟아내는 내 모습도 낯설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가장 미워지는 순간도 힘들었다. 내가 혹시 또라이는 아닐까? 어쩌다 나는 이렇게 된 것일까? 나라는 사람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나? 하는 세상 가장 낯선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 참 고단했다.
그 와중에 위로가 된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이가 18개월 즈음되었을 때 교회 2030 부부 모임에 참석해서 각자 삶을 나누는데, 내가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들, 이야기들을 타인의 입으로 들으며 위로가 됐다. 내가 또라이가 아니라는 사실과 이 시기를 지나가는 많은 부부들이 지나온 과정들을 나 또한 평범하게 지나고 오고 있었다는 것은 개인화되어 있는 나만의 문제를 보편화시킬 수 있게 되면서 나 또한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보았다.
한 창을 수렁을 헤매던 그 시기, 기사에서 신혼부부들의 결혼 만족도가 큰 아이를 낳고 뚝 떨어지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할 시기 즈음 올라간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를 글에 넣고 싶어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아래 사진을 찾았다.
자녀 양육기에 결혼 만족도가 보편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모의고사 문제로도 나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육아 에세이를 기획하고 시간을 내서 쓰고 있는 이유도 사실 이 때문이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육아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지금 경험하고 있는 그 어려움이 아이를 키우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이며, 그 수렁을 잘 버텨내고 나면 다시 또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다만, 그 진흙탕 같은 시기에서 싸움의 기술도, 화해의 기술도 배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도 말이다.
내년 1월이면 꽉 찬 결혼 10년 차 부부가 된다. 그 수렁의 시기를 지나 지금 나는 남편에게 다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이젠 잘 싸운다. 싸울 때마다 매번 신박한 방법으로 화해를 한다.
얼마 전에는 퇴사를 하고 내가 대표인 회사로 출근 준비를 하며 화장을 하는데, 남편이 아들한테 한다는 소리가 “아들, 너희 엄마는 무슨 화장을 하루 종일 한다냐.”라고 하는데 울컥했다. 전날 저녁에 속눈썹 연장 시술을 받고 가겠다고 한 나에게 남편이 안된다고 했던 것이 켜켜이 쌓여 ‘이제 예전처럼 월급을 따박 따박 가져오지 못한다고 혹시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과잉 해석에 빠졌다. 출근길 태워다 주겠다는 남편 소리를 마다하고 혼자 지하철 타고 출근하며 펑펑 울었다. 영문도 모르는 남편은 계속 전화를 했고, “나 지금 통화하면 엉엉 울 것 같으니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자”라고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그날 있던 강의 장소로 남편이 데리러 왔다. 당시에 내가 했던 강의가 <TKI 갈등관리 전문가 자격 교육 특차>였다. 갈등관리 교육을 진행하며 교육생 분들에게 당일 아침 부부 싸움을 소개하면서 때로는 바로 싸우는 것보다 시간을 잠시 벌면 ‘화’ 난 감정 이면의 욕구를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렇게 일하면서 전환이 되고 나니 오늘 아침에 내가 화가 난 이유는 일시적으로 낮아진 나의 자존감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침부터 일격을 당한 남편은 친구들에게 SOS를 쳤단다. 아내가 이유를 모르겠는데 자기 때문에 울면서 출근을 했다고 말이다. 그러자 한 친구는 ‘20만 원 뽑아서 가져다줘.’라는 처방을, 또 다른 친구는 ‘조각 케이크와 꽃다발을 사 가지고 가봐.’라는 해법을 알려주었단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준비해 왔어?”라고 묻자 남편은 아무것도 준비 안 했다며, 뭘 원하는지 물어본다. 그래서 그냥 그거 다 달라했다. 20만 원도 줘 보고, 조각 케이크도 사달라고. 그거 다 받아보고 내 마음이 풀리나 안 풀리나 좀 봐야겠다며 그렇게 한바탕 웃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방법을 익히기까지는 부단히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노력의 방법 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노하우 하나는 바로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큰 아이를 임신했던 시기에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남편은 걱정이 된다며 당시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나를 매일 같이 데려다주었다. 아침 시간 차 타고 30분. 그 시간이 둘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해비 토커인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30분이 금방 지나갔는데, 내가 이렇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본인의 고민이 해결된다며 남편은 나에게 ‘들을 귀’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까다로운 둘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두 돌이 다 되어갈 때 즈음, 남편이 회사 출장으로 두바이를 갈 일이 생겼다. 출장길에 도와줄 일이 있는데 함께 갈지 물어보는 남편에게 선뜻 같이 가겠다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팀장 달고 2년 차 즈음된 터라 회사 일도 만만치 않게 바쁜 시점이기도 했거니와 5살, 3살 아이 둘을 시어머니께 맡겨두고 갈 수 있을지,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는 않을지 눈에 밟혔다. 우리가 살면서 이럴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오겠냐는 남편의 설득에 일주일간의 출장길에 같이 따라나섰다.
그렇게 함께 떠난 출장이 아이 낳고 나서 처음으로 가져본 둘만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아, 내가 이 사람이랑 사랑해서 결혼했었지.”하는 옛 연애 감정도 살아났다. 분명 우린 사랑했었는데, 육아에, 삶에 치이다 보니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도 못하는 사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남편과 출장 가 있는 1주일의 시간 동안 시누이 언니가 시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을 봐주셨다. 둘의 시간을 잘 보내고 나니 타인을 돌볼 여유도 생겨 시간을 만들어준 시어머니께도 시누이 언니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했다.
결국, 둘이 좋은 관계를 세워 갈 수 있는 것이 좋은 가정을 세워나가는 주춧돌이라는 것을 시간이 많이 흘러 알았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앞서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얼마 전 아직 한 살도 안된 딸을 키우고 있는 친언니가 전화 와서 형부가 밤에는 잠이 들어서 도와주질 않아 힘들다 하소연하길래 수화기 넘어 간절함을 담아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둘이 사이좋게 지내는 게 가장 중요해.”
둘만의 시간을,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각자 사는 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다. 꼭 나처럼 아침에 같이 출근하라는 것도, 둘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라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삶의 방식에서 하루의 단 10분의 시간이라도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는 것. 거기에서 관계에서의 우선순위가 자식이 아니라 부부에 있다는 것을 서로에게 전달할 수 있다 생각한다.
배우자(配偶者)는 한자 뜻으로만 풀이하면 ‘짝을 지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나와 결혼한 남편이나 아내를 뜻한다. 한자 풀이를 하지 않고, 한글의 소리글자로만 보자면 ‘배우자’는 배운다는 동사의 다짐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열심히 배우자! 이런 느낌이다. MBTI 성격 유형으로만 따지면 나는 ESTJ의 아내이고, 남편은 INFP의 성격인데, MBTI를 굳이 모르는 사람이어도 알파벳 네 글자가 단 한 자도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성격이 정반대인 남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인생을 꼭 계획한 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세상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도 남편에게서 배운다.
“여보, 친정 가서 점심 먹기로 했으면 몇 시에 출발할지는 얘기해 줘야지.”
저 이야기는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남편이 하는 말이다. 사사건건 계획하고 통제하려 했던 내가 요즘 나사 열 개 즈음 풀린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남편이 되려 몇 시에 갈 거냐, 언제 출발할 거냐 되묻는다. 그냥 봐서 정하자는 나의 대답에 남편은 어이없어하며 그저 웃는다. 우리는 이렇게 살며, 살아가며 서로에게 오늘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