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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스팟 Sep 27. 2021

<시어머니편>고슴도치동거법.
나에게 자유를 달라.

노와이(know-why)_우리는 왜 싸울까?


남과 교제할 때, 먼저 잊어서는 안 될 일은

상대방에게는 상대방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이 있으므로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남의 인생에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헨리 제임스(미국 소설가) -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거의 기술 

<고슴도치 동거법>


가까이 있으면 따갑고, 멀리 있으면 춥다. 

너무 아프지도, 춥지도 않은 우리만의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를 찾기 위해 헤매던 시간을, 뒤따라 오는 누군가는 헤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길고 긴 시행착오의 썰을 풀어본다. 


노와이(know-why), 우리는 왜 싸울까?


1775년 3월, 버지니아 의회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식민지 미국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려는 영국군에 맞서 민병대를 조직해 출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대세는 출병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때 젊은 의원 패트릭 헨리가 연단에 올라 사자후를 토해내곤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삶은 그렇게 귀중하고 평화는 그토록 달콤하던가요? 쇠사슬과 굴종을 대가로 치른 것인데도? 신이시여, 이제 그것을 폐하소서. 다른 이들은 어느 길을 택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다오.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

그 순간 청중들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무기를 들자!"라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듬해인 1776년 미국은 독립했고 그는 초대 버지니아 주지사가 되었다. 

<출처: 강영진(2009). 갈등 해결의 지혜. 일빛 / p188>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다오!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자유 의지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본능적 욕구이다. 에릭슨의 심리사회발달 이론에서 1세~3세에 발달해야 하는 2단계가 <자율성 대 수치심>이다. 만 1세까지 부모로부터 양육받으며,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구나.' 싶은 신뢰감을 형성하고 나면, 그다음으로 배변훈련 기간을 거치며 나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해 가는 '자율성'을 건강하게 획득해 가야 한다. 


자신의 삶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며 사는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은 인간의 삶에서 숨 쉬는 공기와도 같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다가도 부당하게 침해되거나 억압되면 숨이 막혀 반사적으로 터져 나오게 된다. 불가피하게 갈등이 벌어지게 된다.(갈등 해결의 지혜 中)


시어머니와 살면서 "시어머니 잔소리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원인은 잔소리가 아니라 그 잔소리로 인해 침해받은 나의 자기 결정권, 자율성 때문임을 깨달았다. 아이 옷을 하나 입히는데, 옷이 너무 두껍다, 그 옷은 너무 길다, 그 옷은 새 옷인데 왜 집에서 입냐 하시는 잔소리에 아이 옷을 묵묵히 네 번 갈아 입히고 있다 보니, 내 아이 옷 하나 내가 결정해서 입힐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휩싸인 것이다.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사사건건 "어머니, 아이 유튜브 너무 오래 틀어주시면 안 된다.", "어머니, 요구르트는 하루에 2개 이상 주시면 안 된다." 등 며느리 역시 본인의 양육스타일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가 많으니 꽤나 불편하셨으리라. 결국 우리는 서로의 삶의 방식을 주도적으로 꾸려 나가야 하는 자기 결정권을 지속적으로 침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이 글의 시작에서 언급한 헨리 제임스의 말처럼 상대방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이 있었으므로 함부로 간섭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육아>라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어쩌면 이는 예견된 전쟁과도 같은 것이었다. 


MBTI - J(judging) 판단을 선호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사는 길> 찾기


MBTI 성격유형 검사의 마지막 선호 지표는 외부 세계를 어떻게 구조화하길 원하는지 생활양식에 따라 J(judging) 판단을 선호하는 사람과 P(Perceiving) 인식을 선호하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이미지 출처) MBTI 성장 슬라이드_assesta



판단(J)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외부 세계를 순서대로 조직화하고자 한다. 세상을 바라보면 결정이 필요한 사항들이 보이기 때문에 분명한 목적의식과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 결정하고 통제하고자 한다. 한 예로 고등학교 친구 셋이 모두 ESTJ인데, 판단을 분명하게 선호하는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만나기 며칠 전부터 며칠에 만날 것인지, 몇 시에 만날 것인지, 무엇을 먹을 것인지, 먹고 나서 몇 시에 헤어질 것인지 결정하느냐 바쁘다. 그리고 가능한 오차 범위(20~30분 내외) 내에서 세운 계획들을 실행한다.  


인식(P)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조직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기를 원한다. 세상을 바라보면 무엇을 결정하기보다 탐색할 선택 사항들이 보인다. 이러한 선호로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 어떤 순간에서도 결정을 보류하고 보다 탐색하기를 원한다. INFP인 남편은 인식(P)을 분명하게 선호하는데, 신혼 초에 회식 끝나고 몇 시에 들어오냐는 질문에 "상황 봐서"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하곤 했다. 답변에 안달이 나는 것은 늘 "나"였다. MBTI를 알기 전에는 도대체 왜 본인이 몇 시에 들어올지도 모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성격이었지만 대체로 내가 결정한 사항들에 대해서 남편이 받아들여줬고, 나도 내 생활 방식을 크게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면서 아이 낳기 전까지는 비교적 무탈하게 생활하는 편이었다. 


반면 판단(J)을 분명하게 선호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사는 것은 남편과 사는 노력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세상을 바라보면 결정이 필요한 사항들이 보이는 사람 둘이서 너무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크든 작든 계속해서 부딪쳐야 했다. 


최근에도 시어머니와 함께 삼척 바닷가를 놀러 간 적이 있는데, 모래사장 어디에 텐트를 칠 것인지에 대해서 어머니와 나는 야단법석을 피웠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가까이 볼 수 있도록 바닷물 코 앞에 텐트를 펴기를 원하셨고, 나는 질척거리는 진흙 위에 텐트를 치면 나중에 정리할 때도 불편하니 모래 위에 놓고 싶었다. 결국 모래 위에 놓기로 결정했고, 그 모래 위에서도 해가 비추는 방향이 어디냐며 둘이서 텐트를 쥐고 이 쪽으로 돌려야 한다, 저 쪽으로 돌려야 한다 그러고 있는데 남편은 그 사이 아이 둘 손 잡고 바닷가에 들어가 있다. 계속해서 상황을 결정하고 통제하려는 두 여자 사이에서도 상황을 참 경험할 줄, 즐길 줄 아는 남편이다. 


에피소드를 적고 나서 드는 생각은 우리 시어머니도 참 많이 변하셨구나 싶다. 결국 저 삼척 바다에 텐트는 내가 원하는 위치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웠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노하우(Know-how) 파트 소제목으로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기' 팁을 구상해 두었는데, 최근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며느리와 살며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아 주신다. 텐트를 본 순간 어딘 가에 두고 싶다는 생각과 의지가 분명하게 있으시지만 며느리인 내가 다른 곳에 다른 방법으로 놓기를 원하면 그렇게 내버려 둬 주신다. 우리는 2,000일 가까운 시간을 동거하며 서로가 원하는 거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 결정권 보장 시간> 확보하기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결정권'은 공기와도 같은 기본 욕구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살면서 '자기 결정권'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불만족한 상황이 되었다면, '자기 결정권'을 충족시킬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가 보장된 그 시간만큼은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도 내가 출근해 있는 시간에는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는 방식에 대해서는 가능한 간섭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고, 어머니께는 내가 퇴근하고 오면 어머니 방에서 휴식을 취하신다. 퇴근 후 양육은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도 어려운 시간은 '아침 등원' 시간이다. 짧은 시간 안에 두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준비시키면서 내 출근 준비도 해야 하는데, 할머니와 엄마가 동시에 다른 지시로 아이들 등원 준비를 시키고 있으니 참 어렵다. 아이들이 할머니 지시는 잘 따르지 않다 보니 엄마인 내가 주로 옷을 골라 입히고 있으면, 어머니는 여전히 내가 입히는 옷들이 만족스럽지 않다. 사실 내가 옷을 고르는 기준은 딱 하나, 아이가 입겠다는 옷이다. 아이가 5세, 7세 되었으니, 자기가 입고 갈 옷은 자기가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원칙인데, 어머니는 특히나 옷에 대해서는 더 민감하신 편이다. 이렇게 입고 나가면 남이 흉본다, 이렇게 입고 나가면 덥다 등 지금도 종종 내가 입혀 놓은 옷을 벗겨서 다시 입혀 주실 때가 있다. 그럼? 그냥 난 따른다. 가끔은 속이 시끄러운 채로 출근을 할 때가 있지만 결국 계절에 맞는 좋은 옷으로 아이 옷을 입히고 싶은 어머니 마음도 인정해 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도 하고, 상대의 방식을 들어주기도 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 안에서 서로의 관계 맺는 방법을 배워가며 

오늘도 나는,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함께 성장하고 있다. 

이전 05화 <시어머니편> 남편, 전우에서 적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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