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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스팟 Sep 27. 2021

<시어머니편>고슴도치동거법.
누가 깐부고 누가 적인가

노후(Know-who)갈등의 상대는 누구인가? 누구와 싸울 것인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 구슬치기 편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드라마에서 참가자들은 그다음 게임이 무엇인지 모른 채 2인 1조로 짝을 맺으라는 주최 측의 지시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짝을 찾아 헤맨다. 어떤 팀은 부부가 한 팀이 되었고, 또 다른 팀은 머리가 좋은 사람과 힘이 쎈 사람 둘이 짝이 되었다. 주인공인 기훈도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아 헤맨다. 건장한 수학 선생님이 찾아와 짝이 되자 청했지만, 내내 한 편에서 같이 싸워 온 할아버지가 홀로 계신 것이 안쓰러워 할아버지 오일남에게 다가가 짝이 되었다. 


우리 깐부부터 맺어야지


"우리 깐부부터 맺어야지"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일남 : 그러면 우리 '깐부'부터 맺어야지. 
기훈 : 깐부요?
일남 : 아니, 구슬치기 좀 한다면서 깐부도 몰라? 동네에서 구슬이랑 딱지랑 같이 쓰는 친구 말이야. 네 거 내 거 없이. 
기훈 : 아, 깐부 기억나네요. 영감님, 아니 깐부님, 우리가 이 동네 구슬을 싹 다 쓸어버립시다. 


그렇게 환상의 짝꿍이 되어 그 동네 구슬을 싹 쓸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 순간


이번 게임은 각자 자신의 구슬을 가지고 지금 여러분의 옆에 있는 짝과 시합을 벌여 상대의 구슬 열 개를 모두 따내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환상의 짝꿍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적군으로 뒤바뀐다. 오징어게임 스포는 여기까지. 




노후(Know-Who), 누가 갈등의 대상인가?


갈등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대상이 '누구'인지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분명 아군인 줄 알았던 사람이 적군이 되기도 하고, 적군이었던 사람이 이 갈등을 풀어줄 아군이 되어주기도 한다. 평생 사랑을 약속하며 두 손 꼭 잡고 입장한 결혼식장에선 분명 환상의 짝꿍이었는데, 육아라는 시합을 벌이며 아군이 적군으로 바뀌었다. 


시어머니와 동거 초기의 가장 큰 시행착오는 갈등 해결의 첫 단추인 갈등의 '대상'을 인식하는 부분부터였다. 어머니와 동거하면서 불편한 부분, 맞지 않는 부분, 맞춰가고 싶었던 부분이 있으면 어머니와 이야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동거하기로 하고 쎄게 했던 "어머니, 섭섭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 하는 그 결심 때문에 불편함이 생기면 초반에는 꾹꾹 눌러 참았다. 꾹꾹 눌러 담다 더 이상 담아낼 마음의 그릇이 없어지자 가장 쉽고, 가장 편한 곳으로 불평을 쏟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나의 남편이자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동거 초반에 나는 당연히 남편이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며느리인 나는 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아들은 더 편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하나의 인격체이지 나의 아바타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기대했던 '조정자' 역할을 입력대로 처리하지 않고 덧붙이거나 왜곡해서 내보내는 바람에 상황이 더 복잡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내가 어머니의 이러이러한 부분 때문에 힘들었다거나 속상했다고 하면, 대뜸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께 "엄마, 하영이한테 잘해. 하영이 같은 며느리가 어딨어."라고 말했고, 그러면 시어머니는 "야, 이거보다 얼마나 더 잘하냐?"  말씀하시며 오해의 씨앗들이 곳곳에 흩날릴 뿐이었다. 


동거 초기 집안 커뮤니케이션 도표_남편은 과부하에 걸려 비뚤어지고 있었다.


"비뚤어질 테다"


비뚤어진 것은 나도, 시어머니도 아닌, 남편이었다. 내 성에 다 찬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운데서 조정자 비슷한 역할을 해주던 남편이 비뚤어졌다. 본인도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과부하의 사단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1차 유행 당시 어머니께서 한 달 동안 주말에 시댁에 내려가지 않으셨다. 그때만 하더라도 코로나19가 이렇게 장기화될 거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시기였기 때문에 나도 며칠만 참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주말에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간신히 찾았던 어머니와 나와의 심리적 거리두기가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며느리가 잔소리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셨기 때문에 그 일로 내가 힘들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으셨고, 당시 나도 거리두기 방식을 동거의 기술로 채택하던 시기여서 굳이 어머니께 힘들다고 내색하기 싫었던 시기였다. 주중이야 출근하면 마주칠 일이 크게 없지만, 주말까지 서로 얼굴을 맞대어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어머니의 잔소리 총공이 또 시작된 것이다. 


뭐 하러 서랍에 있는 옷들은 정리해 두냐, 어차피 나는 그렇게 차곡차곡 정리 못한다. 하지 말아라.
책장의 책들은 왜 다시 빼다 꼽냐, 나는 그렇게 못한다. 그냥 두어라


주중에는 시어머니께서 살림을 도맡아 해주시다 보니 살림 가지고 부딪힐 일이 많지 않지만, 주말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살림을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 또 사사건건 부딪혀야 했다. 나는 주말에는 아이들 장난감 통을 쏟아서 종류별로 색깔별로 크기별로 정리해 두고 싶어 했고, 서랍장 옷들도, 책장도 색깔별, 크기별, 종류별로 분류해 두고 싶은데, 어머니는 어차피 본인이 관장하는 주중에 다시 또 헝끌어질 텐데 무엇하러 그걸 정리하고 있는지 애쓰지 말라는 의미로 나를 막아서셨다. 나는 집안의 옷장 하나, 책장 하나 마음대로 정리할 수 없는 '자기 결정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무기력감에 빠졌다. 다시 찾아온 위기였다.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전의 방식처럼 나의 무기력감과 우울감은 남편을 향했다. 어머니랑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드니 어떻게 좀 해봐라, 어머니 잔소리 좀 못하게 해 봐라, 어머니가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런 이야기를 했다 하며 남편을 쪼아 댔으니, 좋은 소리도 하루 이틀이면 족할 텐데 이 소리를 1차 유행 당시 주말마다 들어야 하는 남편도 곤욕이었다. 내가 어머니와 있는 주말이 너무 힘드니, 앞으로 어머니께서 주말에 집에 계시면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 언니네로 가 있겠다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시골에 내려가지 않으신 어느 주말, 짐을 싸서 1박 2일로 아이들 이모네로 갔다. 남편은 본인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도 힘드냐며 중간에서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은 더 이상 가운데서 조정자,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기로 선언했고, 궁지에 몰린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께 의사 표현을 해봐야겠다 결심했다. 그리고 A4 2장 분량의 첫 번째 편지를 써내려 갔다. 




어머니께 며느리가 드리는 첫 번째 편지


<어머니께 며느리가 드리는 첫 번째 편지>   

어머니께 감사한 것     

- 웅이 기침하는 것 발견하고, 병원 다녀와 주신 것
- 웅이 정이 외출하고 들어오면 손 위생 등 챙겨주시는 것
- 매일 아침/점심/저녁 맛있고 건강한 식사로 준비해주시는 것
- 아프신 와중에도 코로나19로 인해 두 아이 등원 안 하고 돌봐주셨던 것
- 매일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챙겨 주시는 것
- 서울 집, 시골집 두 곳 모두 주중, 주말 살펴가며 챙겨주신 것
- 먼 길 시장 다니시면서까지 늘 검소하게 생활하시는 것
- 본인 건강이나 삶보다 자식, 손주의 삶을 먼저 생각하고 걱정해 주시는 것
- 때때마다 웅이 정이 내 생일, 어린이날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것
- 웅이 정이 아가 때 노래 많이 불러주시고, 업어주시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적으로 키워주신 것
- 정이가 ‘할머니 좋아’라고 말하며 할머니에게 애착 갖고 클 수 있도록 키워주신 것
- 매일 아이들 가방, 도시락 잊지 않고 챙겨주신 것
- 웅이 정이 열감기 있을 때 새벽까지 물 마사지하며 돌봐주신 것
- 결혼기념일, 생일 때 남편과 식사하고 오라고 아이들 돌봐주셨던 것
- 매일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     
...          

어머니, 주말에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제가 아이들 데리고 이모네로 가서 많이 당황스러우셨지요? 어머니랑 4년 여 시간을 함께 보내며 어머니께 감사한 것을 적어 내려 가자면 종이가 부족할 만큼 많습니다. 육아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체력과 감정 소모를 가져오는지 알기에 어머니께 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다만, 제가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어렵다 생각이 드는 점은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제가 한없이 부족한 며느리로만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희생하시고 헌신해주시는 만큼 제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부족하단 생각이 많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스트레스가 높지 않을 때는 어머니께서 똑같은 말씀을 하셔도 괜찮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회사며 남편과의 관계며 스트레스가 높을 때는 어머니께서 저에게 하는 이야기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으신가 보다.’라고 과잉 해석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지난 한 달 동안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주말까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의도치 않게 어머니의 이야기들을 왜곡되게 해석하며 홀로 힘들다 생각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머니하고 오해가 생기면서 관계가 나빠질까 싶어 제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돌볼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당장 어머니하고의 관계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면 매월 적지 않은 수입을 포기하고, 남편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남편도 그 책임감의 무게가 더 커질 것이고, 저도 경력이 단절되면서 다시 현재 위치와 같은 직장을 얻게 되는 것도 쉽지 않으리란 생각도 있습니다. 경제도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그간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글로 적어보았습니다. 

하여 어머니, 제가 부탁드리는 바는 주말에는 서로의 공간에서 쉬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달처럼 주말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을 땐 어머니와 저 사이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나름 찾았다 생각했었거든요. 

제가 좀 더 잘하고, 어머니의 마음도 살펴드려야 하는데 제가 해드리는 것은 없으면서 부탁드리는 바가 많아 송구할 뿐입니다. 그저 바라는 바는 저와 어머니가 웅이 정이를 양육하며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편지의 첫머리에도 작성했다시피 어머니, 제가 표현 많이 못해도 어머니께 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가끔은 어머니 같은 엄마를 둔 남편이나 시누이가 부러울 때도 많답니다. 지난 주말에 무례하게 행동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싶은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글을 빌려 보았습니다. 이렇게 글을 써 놓고도 또 언제 또 서운한 것, 섭섭한 것이 생기게 될지 모르겠으나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시간 동안 부디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어머니,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2020. 02. 24 며느리 드림-     

p.s 처음 쓰는 편지라 뭐라고 쓸지 고민이 되었는데, 종종 표현하지 못한 말이 있으면 글로 전할게요. 어머니도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나는 편해졌다. 다만,


저렇게 편지를 쓰고 나니, 나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는 저 편지가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저 편지를 받고 한 동안 시름시름 앓으셨다. 말 수도 줄어드셨고, 눈 맞춤도 안 하시고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께서는 4년 여의 시간을 며느리와 함께 살며 좋은 시어머니가 되기 위해 나름 쉬지 않고 노력해 오셨는데, 며느리가 자신 때문에 힘들어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시지 못했던 것 같았다. 사실 저런 모습의 어머니를 바라고 쓴 편지는 아니었지만, 나 하나 편해지자고 어머니를 불편하게 만들게 된 것에 대한 죄책감도 들었다. 


그렇게 건강한 관계를 위해 우리는 한 걸음 내디뎠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마음이 많이 상하셨겠지만, 어머니께서는 시골로 돌아가시겠다 하지 않으시고 그 불편한 시간을 버텨주셨다. 나는 편지 한 통으로 그토록 바라던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그만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시어머니와의 즐거운 수다 시간도 함께 잃어야 했다. 그 후로 예전처럼 다시 대화를 나누기까지는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한 동안 둘 사이의 긴 침묵이 이어졌고 다행히 이 침묵은 아이들의 떠들고 노는 소리에 가려져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아래 도표처럼 이전보다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필요한 주제는 필요한 대상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 말이다. 덕분에 가장 편안해진 사람은 남편이었다. 나 역시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해 주지 않는다고 남편을 득달할 필요가 없어지다 보니 남편과는 적군에서 다시 아군이 될 수 있었다. 


필요한 이야기는 필요한 대상에게 직접 하기



사실 아직 이 동거가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했답니다.' 하고 급마무리하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수는 없다. 오늘 아침에도 대장내시경을 받기 위해 약을 드시는 시어머니를 꼼꼼하게 챙겨드리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하며 출근해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 진행형 동거가 분명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관계 실습터임은 자명하다. 


혹시나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에서 갈등의 대상을 잘 못 선정하고 계신 분이 계신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남편은 아군이지 적군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디 모쪼록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길게 하지 않기를 바라며, 가정의 주춧돌인 부부의 관계를 건강하게 세워 나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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