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know-who), 누가 양육의 대상인가?
네 명의 자식을 키웠고, 7명의 손주를 양육한 양육 경험 만렙의 시어머니와 아동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아동심리치료학 석사를 수료한 지식 만렙의 며느리가 양육 방식을 놓고 엎치락, 뒤치락이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 차라리 정답이 있었다면 그 답을 찾아가면 되겠지만 이 답 없는 게임 앞에 일단 며느리가 선공한다.
어머니, 애들 TV 그렇게 오래 보여 주시면 안돼요.
어머니, 애들 요구르트는 하루에 2개 이상 주시면 안돼요.
어머니, 애들 유튜브 좀 그만 보여주세요.
며느리의 선공에 시어머니께서는 철옹성 같은 한 마디로 방어하신다.
난 그런 거 못한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처음에 한 달 정도 예상했던 아이들의 등원 중단 사태가 기약 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3월 한 달쯤이야 괜찮겠지.' 생각했던 시간이 한 학기가 지나 일 년 가까이 이어지자 집안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있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시는 시어머니께서는 아이들의 등원을 완강하게 반대하셨고, 본인이 아이들을 돌볼 터이니 신경 쓰지 말라 하셨다.
"뭐? 13만 원? 이게 말이 돼?"
육아도 처음인데, 팬데믹은 더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던 터에 일단 어머니께서 봐주시기로 하였으니 가정 돌봄을 시작하였는데, Btv 석 달치 고지서에 월평균 지급 비용이 10만 원이 넘었던 것이다. 남편 계좌에서 자동이체로 나가고 있어서 모르고 있었던 TV 이용 요금이 아이들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직전 달에는 13만 원이 나왔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난 세대여서 그런지 아이들은 기기를 다루는데 제법 능숙하다. 할머니도 할 줄 모르는 엉덩이 탐정 유료 결제를 큰 아이가 엄마, 아빠 회사 간 틈을 타서 봉인해제한 것이다. 결제에 재미를 들리신 6세 아드님께서는 20분짜리 만화를 1분만 보다가 재미없으면 다른 것을 또 틀고, 또 틀고 하면서 이 사달이 났다.
처음엔 어머니께 부탁드렸다. "어머니, 애들 이 시기에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 안돼요. 뇌 발달이 한 참 일어나는 시기라 한 가지 자극만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안 되거든요." 원래 이 것보다 더 길게 설명하고 싶었다. 전두엽과 후두엽의 기능과 발달 과정 설명까지 해드리고 싶었지만 뭔 지식 자랑인가 싶어서 나름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설명했다 자부했다.
"재들이 내가 말하면 듣냐? 재들한테 말해야지 나한테 말하면 뭐하냐?"
간곡히 부탁드리는 나의 이야기에 돌아온 어머니의 답변이었다. 맞는 말씀이었다. 어머니께서도 자식 넷은 엄격하고 냉철하게 키운 분이셨지만, 손주 새끼들은 오냐오냐 키우시느냐 아이들은 할머니의 제재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나는 손주는 안 키워봤으니 어머니께 나와 같은 마음으로 손주를 키워달라 하는 것은 무리였으리라.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머니께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지 싶은 생각에 이 외에도 수많은 양육의 방식을 요청드렸다.
"어머니, 애들이 달라고 해도 요구르트는 하루에 2개 이상 주시면 안 돼요."
하루는 저녁에 둘째 아이 양치를 시키는데 충치가 보였다. 눈에 보일 정도면 벌써 얼마나 썩었을까 싶어 긴급하게 찾아간 어린이 치과에서 충치가 4개나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 저녁이야 내가 양치를 시킨다고 해도 내가 회사 가 있는 사이 치아를 상하게 하는 음식은 조절해야겠다 싶었다. 이 또한 어머니께 부탁드렸으나 돌아온 답변은 한결같았다.
"난 애들이 달라하는데 안 주는 거 못한다. 어떻게 먹을걸 달라고 하는데 안 준다냐. 그리고 재가 또 좀 유별나냐. 줄 때까지 냉장고 앞에서 운다 야."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편다 했던가. 엄격하고 단호한 엄마가 출근을 하고 나면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은 두 다리 쭉 뻗고 할머니께 생떼를 부린다. 예민하기로 일 등이었던 둘 째는 커가면서 돌고래 같은 목청이 레벨업 되었고 그 높은 소리로 앙앙 거리며 울 때면 할머니는 안절부절못하다 결국 냉장고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애들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밥 먹이지 마셔요. 어머니 다리도 아프신데 뭘 왔다 갔다 하면서 밥을 먹이세요."
바쁜 아침 시간, 가장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분은 어머니이시다. 애들 옷 입히고 있으면 어느새 한 숟가락 입에 물리시고, 때때로 아침에 아들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길게 보고 있으면 그 사이에 또 한 숟가락 또 입에 먹이신다.
"이렇게 해야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고 가지.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가야 힘쓴다."
아침밥에 대한 '적정한 양'에 대한 기준이 나와 어머니가 서로 사맛디 아니하여 아침마다 늘 북새통이다. 어머니와 같이 살기 전에 나는 아침 식사는 안 하는 사람이었다. 하루 세 끼를 먹는다는 것이 부대끼기도 하고 아침 출근길 빈 속에 마시는 커피가 그렇게 맛나기에 아침은 원래 잘 안 먹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며 위염도 생겼고, 어머니께서는 밥도 안 먹고 출근하는 며느리가 늘 안쓰러우셨기에 아침마다 밥 안 먹는 며느리를 위해 누룽지를 끓여 먹이신다. 그렇다. 우리 어머니는 밥, 그것도 아침밥에 대해서는 철학이 담긴 진심이 있으셨다. 대상이 '나'이든, '며느리'이든, '아들'이든, '손주'이든 어머니가 생각한 만큼의 밥을 먹어야 현관문 밖을 나설 수 있다.
"밥은 양과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자신이 먹고 싶은 만큼을 먹어야 한다."는 나의 육아 철학보다 어머니의 "밥심 철학" 전술이 더 셌다. 이 전투 아무래도 전술을 바꿔야 했다.
양육(養育)[명사], 아이를 보살펴 자라게 함.
양육은 아이를 보살펴 자라게 하는 것이다. 양육의 대상은 아이여야지, 시어머니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 체, 경험치 만렙의 시어머니를 내 스타일에 맞는 양육자로 육성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제 아무리 지식 만랩을 장착했다 한 들, 엄마 경력 고작 7년 차 엄 대리 며느리의 훈수가 엄마 경력 40년이 넘는 엄 이사님께 먹힐 리 만무했다. 전략을 바꿔야만 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 아인슈타인 -
내가 계속해서 어머니께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부탁을 드려봤자 아이들의 TV 시청 시간이 줄어들지도, 매일 먹는 요구르트의 양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같은 방법으로 어머니를 쪼아봤자 어머니와 나 둘 사이만 나빠질 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하여 육성 대상의 타깃을 바꿨다. 어머니가 아닌 '아이'들로.
아들에게 TV를 적정시간 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해 보았다. 이 또한 먹히지 않았다. TV를 조금만 보았다는 거짓말만 늘어갈 뿐이었다. 그리하여 남편과 상의하여 내린 결정은 "TV를 없애기"였다. TV를 보는 시간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면 적정 수준의 불편함을 감소해서라도 TV를 없애는 것이 낫겠다 판단했다.
그렇게 TV 없이 보낸 지 1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TV 시청 시간을 조정하기 위한 작은 결정이 가정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퇴근 후 늘 백색소음처럼 틀어져 있던 TV가 없어지니 가족 간에 집중해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필요한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TV를 끊었을 뿐 기존 텔레비전을 버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노트북을 연결해 주말에 아이들과 시간을 정해 디즈니 만화를 시청할 수도 있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병원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한다. 소아과든, 치과든, 안과든 대기실에 있는 TV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물질만능시대에 시대를 역행해서 적당히 부족하게 지내보는 것도 괜찮다 싶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머니와 자식을 상대로 계속 제재를 하는 것보다 통제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아마 이 환경 자체는 꼭 TV를 두어야 하는 어떤 상황이 새로 생기지 않는 한 당분간은 이 삶을 유지하게 될 것 같다.
아이들도 안다. 요구르트를 왜 많이 먹으면 안 되는지. 때때로 출출하거나 심심한데 마땅히 먹을 것이 없다 판단이 되면 냉장고에서 꺼내 먹을 뿐이다. 말길 다 알아듣는 7세, 5세 아들딸에게 설명했다. 요구르트는 일주일에 딱 10개씩 사기로, 그 요구르트를 다 먹으면 다음 주 일요일이 될 때까지는 다른 것을 마시기로 말이다. "정아, 오빠가 신비 아파트 놀이해줄 테니까 너 요구르트 내가 먹어도 될까?" 한정된 자원으로 두 녀셕은 가끔 협상을 위해 요구르트를 재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주고 싶은 마음이야 부모든 조부모든 마찬가지겠지만, 한계와 절제를 배워야 더 성숙한 인격체로 성숙할 수 있기에 오늘도 한정된 자원 활용법을 아이에게 가르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 역시도 '내려놓음'을 많이 배워야 했다. 지금도 배우는 중이기도 하다. '아이는 밥상에 앉아서 스스로 먹어야 한다'가 여러모로 유익한 것임을 안다. 그러나 아이를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서 보내야 한다'는 어머님의 진심을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앞선 편에서도 언급했던 인간에게 공기와도 같이 중요한 '자율권'을 어머니에게서 빼앗을 수도 없다.
고심 끝에 현재 버전으로 찾은 전략은 아이들을 전담하여 훈육할 수 있는 시간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주말 아침이면 아이들은 식판에 배급받는다. 뽀모도로 시계로 15분의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만큼은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한다. 유튜브를 볼 때도 아이가 정한 시간만큼을 보도록 하고, 잠 자기 전에 60분을 맞춰주고 1시간을 놀이한 다음 종소리가 나면 혼자 가서 양치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아이는 약속한 시간만큼 자신의 놀이를 마치고 나면 엄마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혼자 가서 양치를 한다. 주중에 내가 훈육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다 할지라도 주말의 시간을 할애하여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면 또 곧잘 따라와 주고 있어 나의 불안을 감소시켜준다.
시간 개념과 자기 통제를 가르치는데 뽀모도로 시계가 여러모로 유용하다. 역효과로는"웅아, 엄마 잠깐만 10분만 쉴게." 하면 예전에는 20분도, 30분도 쉬었지만, 아이가 10분을 맞춰 놓는 바람에 나 역시 딱 정해진 시간만 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종 협상도 한다. "엄마, 내가 딱 40분 쉬게 해 줄게요. 알람 소리 나면 저랑 놀아주시는 거예요." 한다. 그래, 네가 뉘 집 아들이겠니. 아주 엄마를 꼭 닮았구나.
"할머니가 괜찮다고 했어요."
하루는 아이 둘 데리고 산책을 갔다가 오는데, 둘째가 집에 안 들어가고 혼자 놀고 있겠다고 난리다. 화장실이 급한 첫 째는 빨리 가자고 하는데, 5세 딸이 집 앞 벤치에 혼자서 놀고 있을 테니 집에 다녀오라고 한다. 누가 우리 예쁜 딸 데려가면 어떡하냐고 설득하고 있으니 "할머니가 괜찮다고 했어요."라고 한다. 유치원 하원 길에 한두 번 아이가 혼자 집 앞 벤치에서 놀았던 경험이 있었나 보다.
"응, 정아, 사람들은 저마다 중요한 것이 달라. 할머니는 할머니의 방식이 있고, 엄마는 엄마의 방식이 있단다. 엄마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너를 아직은 혼자 두고 집에 올라갈 수 없어. 소중한 우리 딸에게 아주 잠깐 사이에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거든. 엄마가 할머니께 부탁드려 놓을 거야. 우리 정이 혼자 두지 말아 달라고, 그러니까 정이도 혼자 있겠다고 할머니한테 떼 부리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너희를 안전하게 보호해서 키워야 할 의무가 있거든."
일장 연설을 알아 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순간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말을 찾아 설명하고 이야기하고 토론한다.
정답이 없는 양육의 길에서 양육의 동지들과 호흡을 맞춰 목표에 도달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일단 '잘 키운다'의 목표 설정도 너무 다르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육아서 고전의 제목처럼, 아이들은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지만 사실 초조하고 미숙한 엄마와 경험치 만랩이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는 손주를 키우는 것은 처음인 할머니 사이에서 믿는 만큼 쑥쑥 잘 자라주었다.
엄마 경력 7년 차, 내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5세, 7세의 아이들은 '잘' 컸다. 그리고 나도 제법 아이들을 '잘' 키웠다. 프로이트가 '건강한 사람'의 정의를 "일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 했는데, 이 것을 따라 해 '잘 큰 아이'를 '놀이할 줄 알고, 관계 맺을 줄 아는 아이'로 정의해보았다. <흔한 남매>인 웅이 정이는 하루에도 열다섯 번씩 격렬히 싸우고, 또 화해하고, 또 놀이하고, 또 울고, 또 웃곤 한다. 상대가 친구든 동생이든 오빠든 아빠든 할머니든,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주장한다. 반반의 협상을 하기도 하고, 내버려 둘 줄도 안다. 참 잘 컸다. 참 잘 키웠다.
아이들이 자란다. 그 사이 이 하나의 인격체들을 키워내기 위해 고심하고, 갈등하고, 해결해 가며 나도, 시어머니도 자란다. 자라는 순간의 마디마디마다 성장통이 수반되지만 제법 잘 자라고 있는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 이 글을 쓰길 참 잘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참, 유별난 며느리와 잘 살아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 나 같은 며느리 없다 생각했는데, 우리 시어머니 같은 어머니도 없다 싶다.
모쪼록 이 글이 나의 삶의 고비고비의 순간마다 다시 찾아와 말을 걸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