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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스팟 Oct 07. 2021

<시어머니편>사회적 거리두기 2M,
심리적 거리두기는?

물리적, 심리적 적정 거리는 몇 미터 일까?

노하우(Know-how), 

시어머니와 함께 어떻게 잘 살까?


이 파트를 쓰기 위해 그 긴 에세이를 돌아왔다 싶다.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누구에게 맡길까 고민하던 시기, 사실 기꺼이 승낙해 주신 어머니 덕에 별다른 큰 고민 없이 시어머니와의 동거를 시작했고 약 5년의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그리고 여전히 찾아가고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려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유리다리를 건너는 한 장면처럼, 앞선 사람이 일반 유리를 밟다 탈락하면 그 길이 아닌 것을 알고 돌아가듯, 내가 겪어낸 시행착오들이 뒷 따라오는 사람들에게는 굳이 힘들게 겪어내지 않아도 되는 경험이 되길 바란다. 


(출처: 넷플릭스_오징어 게임) 유리다리는 결국 앞선 사람이 건넌 흔적을 따라 뒤에 사람이 따라간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거의 기술 <고슴도치 동거법>


하나. 거리두기 : ‘자기 결정권’ 보장을 위한 심리적, 물리적 거리두기
둘. 그냥 두기 : 잘하려고 하지 마. 그냥 둬. ‘딸 같은 며느리’ 되기
셋. 표현하기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몰라요!
넷. 잊어버리기 :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은? 망각!
다섯. 추억 쌓기 : 행복은 강도(强度)가 아니라 빈도(頻度)


노하우 하나. 거리두기 

'자기 결정권' 보장을 위한 심리적, 물리적 거리두기


얼마 전, 동작구 보건소로부터 코로나19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으니 선별 진료소에서 진단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곳에 내가 머문 시간은 20분 내외였고, 네일숍이었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을 일도 없었다. 같은 공간이지만 해당 확진자와 2M 넘게 떨어져 있어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아 진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다시 일상생활을 시작했다. 코로나19의 비말이 전파되지 않는 2M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켰기 때문에 감염을 피할 수 있었다. 


코로나19의 감염으로부터 지켜주는 사회적 거리가 2M라면,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몇 미터일까?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어머니 때문에 힘들다'라고 생각한 적이 꽤 많다. 하지만 정작 뒤돌아보면 문제를 만든 장본인은 나였다. 문제의 발원지가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는데 오래 걸리긴 하였으나 오히려 잘 됐다 싶다. 원인이 '나'라면 해결할 수 있는 통제 요인도 '나'일 테니까 말이다. 


오버(over) : 정상보다 많은, 넘는, 지나치게

동거 초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던 것은 나의 오버(over)한 행동 때문이다. 동거 초기 세게 다짐했다던 '시어머니 섭섭하게 만들지 않기' 이면에 실은 '시어머니에게 잘 보이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인간에게 <인정> 욕구는 기본 심리 내적 욕구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사람은 누구나 <인정>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그 욕구가 나는 남들보다 그릇이 좀 큰 편이다. 어릴 적부터 <인정> 욕구가 많은 나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반장이 되어서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었고, 회사에 입사해서는 성과로 인정받고 싶었다. 야근도, 주말 출근도 기꺼이 하며 열 일했던 이면에는 '가팀장 참 대단해' 그 소리를 듣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시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었다.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고, 집안 일도 회사 일도 잘 해내는 만능 며느리로 인정받고 싶었다.


이러한 욕구는 때로 지나쳐서 욕심이 되기도 했다. 내가 한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더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남편은 누나 셋에 막내아들로 손이 귀한 집의 아들이었고, 외며느리로 시집가서 신혼 초에는 한 달에 한 번은 충남 홍성에 있는 시댁에 내려가 1박을 하고 올 정도로 열심이었다. 우리 시어머니는 초저녁에 주무시고 새벽 4시 반부터 활동을 하시는 새벽형 인간이셨는데, 시댁에 처음 내려갔던 그날에는 나도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어머니 주변을 서성거렸다. 딱히 무엇을 해야 해서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시어머니가 일어나 계시는데 며느리 된 사람으로 잠을 잔다는 것이 송구스러워 그저 그렇게 어정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어머니께서 아이를 돌봐주시기로 하자 어머니께서 고생도 많으시고 감사한 마음도 커서 시댁을 향한 행동이 더 과장되기 시작했다. 이 전에는 명절 때는 2박 3일만 있다가 올라왔는데, 동거를 시작한 첫 해에는 어머니를 뫼시고 내려가서 같이 올라와야 한다는 생각에 명절 기간 4박 5일을 내내 시댁에서 보냈다. 우리 시댁은 보통의 시댁과는 달라 명절 때 오고 가는 손님만 60여 명에 다다른다. 이 분들은 시간을 정해서 오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날에는 식사만 5번 넘게 차린 날도 있었다. 이렇게 동분서주하고 있는 동안 남편은 오래 오래간만에 만난 친척 분들과 담소를 나누기에 바빴고, 아이도 돌봐주면서 쉴 새 없이 차리고 치워야 하는 나 자신을 보며 속이 몹시 시끄러웠다. 


"당신 생색내려고 설거지하면서 왜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데?"


저 말은 큰 아이를 낳고 돌쟁이 아들을 데리고 시댁의 큰 댁에 올라가서 설거지를 마치고 시댁에 내려오다가 남편에게 들은 말이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명절 아침 큰 댁에 시댁 식구들이 모였고, 당일 한 자리에 모이는 사람만 24명이었다. 거기에서 며느리 서열로 막내였던 나는 그나마 편한 곳이 부엌이었다. 일 년에 딱 두 번 보는 사이인 시댁 큰 집 식구들과는 서먹했고, 식사를 마치면 부리나케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를 했다. 아이 낳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넘기고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부엌에 들어가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중에 남편이 돌쟁이 아들이 우는대도 돌보지 않길래 시댁 내려오는 길에 남편에게 또 폭풍 잔소리를 했다. 그러다 남편이 저 말을 한 것이다. 큰 댁 올라가서 설거지를 왜 굳이 네가 하고 있느냐, 결국 당신이 생색내려고 설거지하면서 왜 자신을 힘들게 하느냐는 것이다. 


당시 심정은 딱 돌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세상 어느 집 며느리가 자기 생색내려고 설거지를 하겠는가. 이렇게 밖에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남편이 야속하게 느껴져 사내 마네 소리를 하게 되었다.(전편 : 남편, 전우에서 적군으로) 바야흐로 지금까지 큰 댁에 올라가지 않는다. 나름 시아버지 생각에, 남편 생각에 어려운 큰 댁에 올라가서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었는데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비뚤어진 것이다. 저 사건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즈음 이야기인데 지금 돌아와 생각해보면 남편 말이 딱히 틀린 것은 없다. 내가 시댁에 올라가서 막내며느리지만 설거지 안 하고 주시는 밥 먹고 내려 올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일 년에 두 번 보는 사람들한테 잘 보이느냐고 평생 살아야 하는 자신한테 잔소리를 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남편이 옳았다. 내가 관계 내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사람의 우선순위가 잘 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정도에서 지나쳐 있는 내 행동 때문에 속이 시끄럽고 지쳐가는 것도 나 자신이었다. 명절에 친정은 못 가보고 시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남편이 자고 있는 것만 봐도 미워졌다. 특히나 MBTI 유형 중 인식(P)을 선호하는 남편은 "여보, 언제 서울 올라갈 거야?"라고 물어보면 "봐서"라고 답변했고 언제 올라갈지 시간을 알 수 없는 나는 더 초조해졌다. 그러니 시댁에서의 시간이 편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두 번째 해는 어머니를 뫼시고 일찍 내려가되, 올라오는 것은 우리끼리 먼저 올라오기로 하였고, 그다음 해는 아예 올라오는 시간과 내려가는 시간을 명확히 하기 위해 기차표를 끊어서 다녀오기도 했다. 지금은 명절에 시어머니 내려가시는 왕복 기차표를 끊어드리고, 우리는 1박 2일에서 2박 3일 정도 상황에 따라 다녀온다. 


심리적, 물리적 거리는 어느 수준이 적정한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절대적으로 물리적인 시간을 딱 하루다, 이틀이다 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심리적으로 불편한 감정 없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는 그 물리적 시간이 명절에 시댁에 내려갈 때는 최대치로 2박 3일이고, 명절 당일에는 올라와서 친정에 가야 속이 시끄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평일에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도 24시간 중에 1~2시간 정도는 어머니와 마주쳐야 편하고 그 이상의 시간을 함께하면 잔소리로 인한 감정이 불편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주말에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어머니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이 글을 시부모님이 보신다면 아마 크게 한 번 웃으실 것이다. 이 며느리가 시댁에 내려와서 뭐 한 것이 있다고 힘들다, 3박 4일은 있을 수 없다 하느냐는 말이다. 어머님, 아버님이 기억하지 못하실 어느 시점에 내가 가서 8끼 식사를 꼬박 차리고 온 적도 있었지만, 지금 나는 정말 시댁 가서 잘 먹고 요양하다가 온다. 어머니가 담아주시는 맛있는 게장에, 아버님이 사다주시는 소고기 구워 먹고 아이들이랑 TV 실컷 보다 그렇게 올라온다. 남편 왈, 너처럼 시댁 와서 낮잠 많이 자는 사람도 없을 거다 하는데 늘 반박하는 나의 논리는 나처럼 시댁에 낮잠까지 자다 갈 정도로 시댁에 오래 머무는 사람도 없다 한다. 


이렇게 편해지기까지는 10년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거니와 내가 편안해하는 마음의 적정 거리를 찾고, 다음 편에서 소개하려는 '그냥 두기' 기술을 익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거리 두기' 기술보다는 '그냥 두기' 기술이 훨씬 더 강력하다. '딸 같은 며느리' 되기의 '그냥 두기' 기술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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