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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스팟 Oct 13. 2021

<시어머니편>고춧가루 사실 분? 이십육만사천원의 행복

행복은 강도(强度)가 아니라 빈도(頻度)

시어머니와 잘 사는 노하우(Know-how) 다섯 번째 기술. 추억 쌓기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닌 빈도


강도(强度, intensity) : 센 정도
빈도(頻度, frequency) : 같은 현상이나 일이 반복되는 도수


행복 심리학자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는 행복의 법칙을 강도가 아닌 빈도로 설명한다. 우리는 살면서 행복하기 위해 큰 기쁨을 찾는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벗어난 해외여행을 계획한다든가 비싼 명품을 선물하는 등 진한 강도의 경험이 있어야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매일 어떤 감정을 느끼고 사는지 추적한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큰 기쁨을 주는 경험은 일상에서 1~3%의 비중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한 때 신조어로 유행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축약어인 소확행의 뜻처럼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경험의 반복이 인간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로또 당첨자들의 삶이 로또에 당첨된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과 비교했을 때 더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동거 초기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어머니께 센 강도의 경험을 선사하려 애썼다. 둘째 임신해서는 여름휴가를 시누이 언니와 함께 맞춰서 5성급 호텔을 2박 3일로 다녀왔고, 둘째 갓 태어나서도 롯데월드타워 전망대를 갔다 오기도 했다. 생신 때면 63 빌딩 뷔페를 예약해서 다녀왔다. 아이들 키워주시느냐 애써주시는 시어머니께 무엇이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물론 그것 역시 내 삶의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으나 정작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게 하는 것은 시어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지만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추억들을 쌓는 것이었다.


"고춧가루 사실 분? 손!"


당시에 고춧가루 판매를 위해 스마트 스토어 개설하는 것도 알아봤다. (참고로 고춧가루가 바른말이다.)

"얘, 네가 좀 주변에 고춧가루 살 사람 있는지 알아봐라."


10년 가까이 살면서 올해 처음으로 고춧가루 판매 요청을 시어머니께 받았다. 작년까지는 시누이 언니들을 통해 판매하셨는데, 올해 고춧가루를 팔아야 하는 시점에 둘째 언니 하고는 크게 한 판하셔서 팔아달라고 말하기 어색한 상황이었고, 셋째 언니도 올 해는 판매를 해드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어머니께서는 며느리인 나에게 넌지시 고춧가루 살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덧붙이는 말씀이 저기 건너편 시장에서는 한 근에 만 이천 원도 넘게 파는데 만 천 원에 파는 것이니 사는 사람도 손해는 아니라 하셨다.


일전에 한 번 부탁하셨는데 까먹고 있던 찰나 일요일 아침에 다시 한번 요청하시는 시어머니의 부탁으로 대학 동기들, 학과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 단톡방마다 급 고춧가루 판매글을 올렸다. 삼십 대 중반의 일하는 여성이 다수인 친구들이 살림을 얼마나 할까 싶은데도 의리 때문인지 각자의 친정이 있는 창원으로, 일산으로, 자신의 집으로 고춧가루를 보내달라 하였다. 카카오톡 메인 화면에 "고춧가루 팝니다."라는 메시지를 보고 친하게 지내던 아들 친구네 집에서도 사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스물네 근, 이십육만 사천 원


그렇게 해서 일요일 하루 내가 판 고춧가루의 양은 스물네 근, 총 264천 원이었다. 홍성에 계신 시아버님께서 우체국 택배로 일일이 부치셨으니 택배비 제외하면 대략 25만 원 정도의 수익이었다. 이 정도 금액이면 명절 때 시부모님께 드리는 용돈보다도 적은 금액 이건만 시어머니와 살면서 가장 큰 칭찬을 받았다. 고춧가루의 판매금은 전액 시아버지 드리라 하시면서도 며느리가 고춧가루를 잘 판다며 그렇게 기뻐하실 수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매년 그 돈 드리고 고춧가루를 창고에 쟁여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이지 주말 오후에 귀찮았을 텐데 고춧가루 사주겠다고 한 친구들이 지금도 너무나 고맙다. 덕분에 시부모님과 두고두고 회자될 추억 하나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


옛날에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너무나 사랑을 해서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합니다. 사자를 너무나 사랑하는 소는 날마다 제일 맛있는 풀을 새벽같이 뜯어다가 사자에게 정성스레 대접합니다. 사자는 평생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풀을 소를 위해 먹습니다. 사자도 매일 같이 열심히 사냥해서 가장 연하고 맛있는 살코기를 소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소도 난생처음 고기를 먹어봅니다. 소와 사자는 최선을 다해 사랑했지만 사랑하면 할수록 점점 더 힘이 들지요.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둘은 이 말을 하며 헤어집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위 우화의 내용처럼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최선은 결국 서로를 더 멀어지게 한다. 신혼초에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몇 차례 영화관을 가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남편과 종종 가는 영화관의 좋은 시간을 시부모님과도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부모님께서는 한사코 거절하셨다. 거절하시는 사유는 하도 여러 가지였던 터라 나열하기도 어렵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고기를 싫다 하시는 시부모님께 "이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요."하고 강요한 것 밖에 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시부모님께서는 영화관을 가는 특별한 경험보다 집에서 지어먹는 밥 한 끼를 자식들과 더 자주 할 수 있는 것이 더 만족스러운 경험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조망수용능력 :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타인의 입장에서 그의 사고, 감정, 상황을 추론하는 능력을 조망수용능력이라고 한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뜻처럼 사랑을 주고받을 때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한다. 시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시어머니가 받고 싶은 사랑의 방식보다 내가 드리고 싶은 형태로 감사를 표현했던 것 같다. 여행 가서 비싼 밥을 사 먹는 것보다 자주 얼굴 뵙고 따뜻한 밥 해 먹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시어머니, 옷이나 화장품 등의 선물을 드렸을 때 보다 고춧가루 몇 근 팔았을 때 더 기뻐하시는 시어머니, 그런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벌써 시어머니가 그립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든다고 했던가. 마지막 노하우 파트의 글을 쓰는 시점이 되니 무언가 뭉클하다. 시어머니는 지금도 퇴근하고 집에 가면 계시는, 손 뻗으면 잡힐 그 거리에 아직 계시는데도 나는 우리 시어머니가 그리워질 미래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면 벌써 눈물이 왈칵 난다. 나는 이렇게 시어머니와 바짝 정이 들고 말았다. 그래서 이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 주제로 첫 책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보았다. 본래 시어머니가 좀 더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첫 책 기획은 '며느리가 쓰는 시어머니 자서전'이었지만 기획을 변경하여 동거의 기술편이 되었다. 이렇게 뭉클하다 해놓고 집에 가서는 '어머니, 얘들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하나만 주셔야 돼요'라며 내가 폭풍 잔소리를 할지도 모르지만 이 글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참 감사하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거의 기술 <고슴도치 동거법>


하나. 거리두기 : ‘자기 결정권’ 보장을 위한 심리적, 물리적 거리두기 
둘. 그냥 두기 : 잘하려고 하지 마. 그냥 둬. ‘딸 같은 며느리’ 되기 
셋. 표현하기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몰라요!
넷. 잊어버리기 :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은? 망각!
다섯. 추억 쌓기 : 행복은 강도(强度)가 아니라 빈도(頻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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