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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스팟 Oct 12. 2021

<시어머니편>좋은 것, 싫은 것
묵혀두지 말고 표현하기

잘 말하고 잘 표현하는 표현의 기술

시어머니와 잘 사는 노하우(know-how) 세 번째 기술. 표현하기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아니, 몰라.


3~40대 동년배 분들은 아마 모 제과사의 CM송을 기억하고 계시리라. 조그만 초코빵을 주고받으며 눈빛만으로도 정을 전해주던 그 CM송은 1989년에 제작된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어쩌면 CM송을 제작했던 그때 그 시절은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였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만남의 횟수도 줄어들고, 비대면으로 접촉하고 눈빛도 카메라 렌즈를 통해야 하는 시대다. 비언어로 전달할 수 있던 따뜻함을 이제는 보다 명확하게 언어화하지 않으면 소통에 더 많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할머니가 나를 안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한글날 아침 온 식구가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데, 아침부터 할머니가 큰 손주에게 계란만 먹으면 어떡하냐 골고루 먹어야지, 아침밥을 그것만 먹으면 어떡하냐 많이 먹어서 힘내야지, 왜 찬기 나는 바닥에서 자느냐, 아무리 덥다 해도 바닥에서 자지 말아라며 폭풍 잔소리를 하시니 묵묵히 듣던 일곱 살의 손주가 할머니가 아무래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며 조용히 한 마디 한다.  


"어머니, 웅이가 할머니가 나를 안 사랑하시는 것 같데요."

"아니다, 웅아. 할머니는 웅이를 가장 사랑한단다. 할머니가 웅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손주가 건강하게 커야 하니까 골고루 먹으라 한 거야."


어머니는 손주의 말에 깜짝 놀라 손사래 치시며 아침 식사 자리에서 급 사랑 고백을 하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계란만 먹지 말라고 소리치며 표현하면 제 아무리 손주라 해도 사랑이라 받지 못하는 것이다. 게리 채프먼의 저서로 유명해진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사랑을 표현하는 다섯 가지 방식으로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봉사', '선물', '스킨십'을 꼽는다. '잔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라 하더라도 그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가 되는 법이다.


동거의 기술 세 번째 표현하기.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묵혀 두지 말고 표현하기


동거 초기에는 시어머니의 폭풍 잔소리에 자주 주눅이 들었다. 어머니께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 며느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나 인정의 욕구가 중요한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잔소리 답변을 받다 보니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내가 무기력하게 입을 꼭 다물고 슬픈 표정으로 대처하는 함구만 고집하고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19 발발로 주말까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머니의 잔소리 폭격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판단해 처음으로 내 마음을 표현했던 방식은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은 여기 클릭) 말은 글보다 빠르지만, 한 번 표현하면 주워 담기가 어렵다는 한계점으로 인해 글로 정리한 생각을 전달하였다. 그 A4 2장에 달하는 글을 쓰기 위해 몇 번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물론 내가 편지로 표현한 후, 어머니께서는 며느리에게 단단히 실망하시고 몇 날 며칠을 속상해하셨지만 그 시간을 버티고 나서 조금 더 성장한 관계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내가 어머니 잔소리 때문에 힘들다는 사실을 편지로 표현하기 전까지는 며느리가 잔소리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셨다. 조금 어렵기는 해도 내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또 무엇을 감사해하는지 분명하게 알려드렸을 때, 우리는 서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비단 싫어하는 것만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각자가 서로에게 무엇을 고마워하는지, 감사한지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거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시어머니께서 나를 참 못마땅해한다고 생각했다. 나름 한다고 열심히 노력해도 잘한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저 나를 싫어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함께한 동거의 시간 5년을 포함해서 결혼 후 10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지금은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머니는 날 사랑하시는 것이 분명해.


시어머니께서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지금은 어머니께서 나를 아끼시고 몹시 생각하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이유인즉슨 오랜 시간을 살아보니 어머니의 사랑의 언어가 '봉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께 살가운 말투로 '참 예쁘다.', '애썼다.', '수고했다.' 하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어머니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계셨다.


"얘, 너 이제 아욱 사 오지 말아라. 네 시아버지한테 심어 놓으라고 했다."


며칠 전 어머니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데, 어머니께서 아욱을 이제 그만 사 오라 하신다. 가끔 반찬거리로 아욱을 사다 놓으면 어머니께서 된장국을 끓여주시곤 하는데 남편은 된장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나만 먹는다. 시어머니께서도 아욱국을 드시지 않는다. 내가 아욱국을 잘 먹는다고 해서 어머니께서 시댁 농사짓는 한편에 심어두셨다는 것이다. 이제 아욱 심어 놓았으니 아욱은 사 오지 말라 하시는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같이 식사하던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날 사랑하시는 것이 분명해." 마트에서 한 봉지에 천 원이면 사다가 먹을 수 있는 아욱이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얼마나 며느리를 생각하고 계신 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계셨다.


(이미지 출처 : 쿠팡) 현재 아욱 가격은 300g 삼천 원, 마트에서 세일하면 한 단에 천 원할 때도 있다.


사실 이런 에피소드는 10년 동안 정말 많이 있어서 일일이 나열하기 부족하다. 블루베리를 아들, 손주가 몇 차례 잘 먹기라도 하는 것을 관찰하시면 그다음 명절 때 시댁 앞에는 블루베리 나무 다섯 그루가 심겨 있다. 며느리가 오이를 두 개라도 집어 먹는 것을 보면 그 다음날 부터 냉장고에 오이가 떨어지지 않게 시장에서 사다 두시는 분이다. 우리 시어머니께서도 종종 오버페이스를 하실 때가 있는데, 5인 식구 사는 집에 김치를 총각김치, 열무김치, 파김치, 갓김치, 배추김치, 생채 등 각양각색의 김치를 냉장고에 가득 채워두셨다가 다 먹지 못한 김치들을 그다음 김장 날짜에 맞춰 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오버 페이스로 달리는 시어머니와 나를 두고 남편은 참 많이 닮았다 말한다.


우리집 김치클래스



기왕이면,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나만의 표현 방식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다. 시어머니께 내가 표현한 방식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시면 편지를 쓰시라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고, 시어머니께서도 자신을 생각하는 만큼 고추밭을 매라고 요청하실 수도 없는 것이다. 인생을 살며  '서로 다름'을 선물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을 배워간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거의 기술 <고슴도치 동거법>

하나. 거리두기 : ‘자기 결정권’ 보장을 위한 심리적, 물리적 거리두기 
둘. 그냥 두기 : 잘하려고 하지 마. 그냥 둬. ‘딸 같은 며느리’ 되기 
셋. 표현하기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몰라요!
넷. 잊어버리기 :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은? 망각!
다섯. 추억 쌓기 : 행복은 강도(强度)가 아니라 빈도(頻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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