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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스팟 Oct 08. 2021

<시어머니편>잘 하지마
그냥 둬. 딸 같은 며느리 되기

인생은 장거리 달리기. 페이스 조절하며 달려

시리즈로 이어가는 시어머니와 잘 사는 동거 노하우 두 번째 이야기!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거의 기술 <고슴도치 동거법>


하나. 거리두기 : ‘자기 결정권’ 보장을 위한 심리적, 물리적 거리두기
둘. 그냥 두기 : 잘하려고 하지 마. 그냥 둬. ‘딸 같은 며느리’ 되기
셋. 표현하기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몰라요!
넷. 잊어버리기 :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은? 망각!
다섯. 추억 쌓기 : 행복은 강도(强度)가 아니라 빈도(頻度)


노하우(know-how)_둘. 그냥 두기


"네에, 아버님, 제가 잘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둬라. 잘 하려고 하는게 문제다. 그냥 둬라."


지난 추석 명절 끝자락에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올라올 참이었는데, 남편이 왠 일로 시아버지와 한 판 하였다. 요지는 오래간 만에 본 아들을 앞에 두고 사촌들 땅 산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배가 아팠는지, 아버지께 서운하다는 것이다. 홍성군 효자로 둘 째 가라면 서러울 남편이 아버지께 섭섭하다 한 소리 해 놓고 사흘 잠도 못자며 뒤척인다. 마흔이 다 된 사람이 자기는 어색해서 전화를 못하겠으니 아버지 잘 계신지 나한테 전화 해보라 한다. 


"아버님, 남편이 지금 제 옆에 있는데요. 아버지께 서운하다고 해놓고 올라와서 아버지 걱정되니까 저한테 전화해보라고 하네요. 식사 하셨어요?"


있는 그대로 수화기 넘어로 주절 거리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버님과 오래간 만에 40분이 넘는 통화를 했다. 아버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시라며, 아무래도 남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 아니냐며 아들 걱정이시다. 그리고 이어지는 훈화의 말씀은 네 시어머니는 한 번 틀어지면 안 보는 성격이니 부디 며느리랑 시어머니랑 사이가 나빠지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 하신다. 혹시라도 사이가 나빠질 것 같으면 시아버지 본인에게 이야기 하라며 자신이 발 벗고 나서 도와주시겠다 하셨다. 


"아버님, 제가 잘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둬라. 잘 하려고 하는게 문제다. 가족끼리 뭘 자꾸 잘 하려고 하다가 되려 문제가 된다. 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둬라. 가족 아니냐."


남편과 두 아이를 낳고 10년을 살며, 그 '그냥 두기' 기술을 쓸 줄 몰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인생은 장기전인데, 나는 100미터만 달리고 그만 달릴 사람 처럼, 출발을 알리는 총성과 함께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두기'편에서 말한 시부모님께 잘 보여 인정 받는 며느리, 멋진 며느리가 되기 위해 오버(over)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오버의 첫 시작은 결혼 직 후 찾아온 시어머니의 첫 생신날이었다.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2012년 결혼 두 달만에 차려드린 시어머니의 첫 생신상. 저 사진이 중간 버전에서 찍은 거고 메인 요리 몇 개랑 미역국에 밥까지 14인분의 밥상을 차렸다.


저 상 차리는데 꼬박 12시간 걸렸다. 결혼 전에 제대로 혼자서 먹는 소고기 무국 정도 끓여 먹는 실력으로 이것 저 것 차려보겠다고 긴장을 해서 전날 저녁에 상 펴놓고 숟가락을 미리 가져다 놓고 잤다. 음식을 따뜻하게 해먹어야 하기 때문에 다 당일에 차릴 음식이니 미리 할 수 있는 거라곤 숟가락 가져다 놓기 밖에 없었다. 지금도 손으로 하는 건 다 못하는데 곰손 가지고 칼질한다고 손도 많이 베어 먹었다. 지금이야 밀키트라도 나오지 그 때는 저 음식을 홀로 정말 한 땀 한 땀 다 만들었다. 밀키트는 맛이라도 있지 14명의 식구들이 미역국에 밥 말아 드시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더 많았던 기억이 아른 거린다. 


"좋은 며느리네." 그 소리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내가 궁금하다. 왜 그토록 '인정'에 목 말라 있는 것인지 말이다. 아무튼 그 때는 저렇게 하면 시부모님께 인정 받을 것 같아 참 애썼다. 서울 깍쟁이로 살아온 내가 결혼한 첫 해는 고추 심으러 가겠다고 어머니 장화 신고 나갔다가 모종 몇 개 심어놓고 저혈당이 와서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밥 차려 먹던 기억도 있다. 고추 따는 것도 도와드려보고 싶어서 장비빨 세워 완전 무장해서 고추밭으로 나가 놓고 모기 떼 공격에 놀라 또 도망쳐 나온 기억도 있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그 땐 뭘 그렇게 열심히 해 보겠다고 나댔다. 


오버 페이스는 그 이후로도 쭉 이어진다.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병원 등의 일정으로 서울로 올라오실 때면 냉장고 청소하고, 밑반찬 거리 사다가 반찬 만들고, 청소하고 야단 법석을 피웠다. 나만하면 그나마 무탈할 것을 가만히 있는 남편한테도 얼른 청소해라, 나가서 이 것도 사오고 저것도 사와라 하니 남편은 삼십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인데 오버 하는 아내 때문에 더 피곤해 지고 있었다. 


오버하는 행동의 근원이 '인정'에 있었으니 인정의 말이 필요했을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부모님께서는 '인정하는 말'에 인색한 편이었다. 아마 '잘한다, 잘한다' 하셨으면 10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저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시댁 문화는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문화이다. 잘한다, 예쁘다 칭찬하는 것보다 무엇이 필요한지 면밀히 살펴보다 그 것이 일이든 음식이든 세밀하게 챙겨주는 '봉사'의 문화였다. 백 개의 행동보다 '한 개의 칭찬'을 원했던 나와는 차이가 있었다. 


봉사의 문화 vs 칭찬의 문화


처음에는 그런 시댁 문화가 몹시 어색했다. 오래간 만에 식구들끼리 얼굴을 봤으면서도 남편은 누나에게 "누나 살쪘네."가 첫 마디였고, 인테리어 새로 해서 들어간 시누이의 집들이에서 어머니의 첫 마디는 "얘, 너 이전에 쓰던 냄비는 어디다 뒀니? 버렸니? 그거 한 참 더 쓸 수 있는데 시골 집에 가져다 놓지 그걸 왜 버리니." 였다. 최근에는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SBS 스페셜 촬영을 지원한 일이 있어서 강의하는 영상을 어머니께 보여드리자 어머니의 첫 마디는 "얘, 너 마스크 안 쓰고 일하니?" 였다. 내가 기대한 말은 "어머, 얘 방송도 나오니?" 혹은 "강의 잘하네." 정도 였는데 마스크 안 쓰고 일하냐는 것이 첫 마디라니, 저 말을 들었던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덕분에 내 오버하는 페이스는 점차 적정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다. 어차피 시댁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원하는 칭찬이나 인정을 받기는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잔소리가 애정 표현인 곳이다 보니 내가 무엇을 하든 욕을 먹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차피 받을 잔소리라면 그럴 만한 행동을 하고 받는 편이 낫겠다 판단했다. 연차가 쌓여가면서 이제는 시댁에 내려가도 새벽 같이 일어나지 않는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시는 시어머니께서는 밤에 일찍 주무시니까 가능한 것이고, 나는 아이들과 밤 12시가 넘어 잤으니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날 수 도 있지 하고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오히려 편하게 행동하기 시작하니 시부모님의 잔소리도 줄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잔소리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철회하신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나는 정말 딸 같은 며느리가 되었다. 


딸처럼 어머니가 차려주신 식사를 맛있게 먹는다. 딸처럼 어머니가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이셔도 그냥 둔다. 이제는 주말에 시어머니와 함께 있어도 그닥 불편하지 않다. 이유인 즉슨 어머니가 분주하게 움직이셔도 나는 일단 내가 쉬고 싶으면 쉰다. 어머니께서는 주말 아침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분리수거 쓰레기를 버리시고 빨래를 돌리신 다음 청소기를 돌리신다. 동거 초기에는 어머니 페이스에 따라 같이 새벽에 일어나고 맞춰서 같이 요리하고 상차리고, 청소하고, 빨래 널고 개고 하느냐 바빴고 그 동안 쉬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참 얄미웠다. 그렇게 시어머니를 졸랑 졸랑 따라다니면서 주말을 보내고 나면 이 것은 쉰 것도 아니고 되려 더 피곤한 상황이 되면서 어머니랑 같이 있는 것이 힘들다고 하소연만 늘어갈 뿐이었다. 지금은 어머니께서 내가 쉬고 싶을 때 빨래를 하시면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린다. 그런대도 어머니께서 빨래를 하겠다고 하면 그냥 하시도록 둔다. 그냥 두기. 이는 자기 스스로 자기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굳이 어머니께 무엇을 해달라, 하지 말아 달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활 방식을 인정해 주는 것. 그 것이 거리두기 기술 보다 더 강력한 기술이라는 것을 동거의 실전에서 터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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