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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Apr 24. 2024

어머니께서 이기셨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다'는 표현이 있다.

필자는 위 표현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사고를 당하신 후, 위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를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사고가 난 후,

어머니가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까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중환자실에 계시던 어머니께서는 전신마취를 하고 몇 번의 수술을 진행하셨다.

어머니의 생존의지도 컸고 수술해 주신 교수님들께서도 훌륭하셨다.

중환자실에 계시던 어머니께서는 얼마 후 침대차에 커다란 산소통을 매달고,

온몸에 10여 개의 줄을 메단 상태로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


어머니께서 일반 병실로 옮기셨으니 이제 간병인을 구해야 했다.

간병인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렵게 간병인을 구해도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간병인이 그만두었다.

산소통을 끼고, 온몸에 10여 개의 줄을 매달고 계신 어머니께서 주무시지 못하니,

간병인도 잠을 자지 못해 간병하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결국 간병인이 구해지기 전까지,

주중에는 동생과 아버지께서, 일요일에는 필자가 병원으로 가서 어머니를 간병했다.


어머니께서 사고를 당하셨다고 해서 필자의 업무가 달라진 건 없었다.

필자는 항시 약 100여 건의 사건을 맡고 있었고, 대부분이 무죄를 다투는 사건이었기에 주 5일 재판 하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께서 사고를 당하셨어도 주중에는 일을 해야 했기에

주중에는 재판을 하고, 일요일에 병원을 가는 생활을 계속했다.


필자가 일요일에 병원에 가보면,

어머니께서는 혼이 빠진 듯한 얼굴에 온몸에 줄을 매달고 계셔서 똑바로 누울 수 조차 없으셨다.

누우면 줄이 몸에 배기니 똑바로 누울 수도 없고, 잠도 잘 수 없으니 살아 있는 것 자체도 고통이셨을 것이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편하게 누워서 잠을 자는 게 소원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 몸에 달려 있던 줄들이 하나둘 줄어들었다.


그렇게 한달 이상이 지났던 것 같다.

그날도 병원에 갔는데, 어머니의 얼굴에서 돌아가시기 전 친할머니의 느낌을 느꼈다.

외형은 어머니의 모습인데, 그 느낌이 돌아가시기 전의 친할머니처럼 혼이 거의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뭔가 불안한 느낌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도 필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완벽한 연기로 어머니를 간병했다.


어머니의 모습에서 돌아가시기 전 친할머니의 느낌을 느낀 필자는,

그날 저녁에 어머니 간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그러자, 어머니의 모습이 다시 어머니로 돌아와 있었다.

지난주의 혼이 빠진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필자는 기뻐서 "엄마, 이제 많이 좋아진 것 같아."라고 하자,

어머니께서도 "그래,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다."라고 하시면서 얼마 전 꾼 꿈 이야기를 해주셨다.


꿈에서 사고가 난 그 장소가 보였는데,

그 사고장소 있는 귀신들이 "오늘 00에서 잔치가 있데. 가자"라고 하면서 우르르 몰려갔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도 그 귀신들을 따라가보니 그 장소는 어머니 집이었다고 했다.

마당까지 귀신들이 꽉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어머니께서는,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왔냐! 썩 나가라!"

면서 집에 있던 귀신들을 모두 쫓아냈다고 했다.


어머니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는,

'아~ 그래서 다시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왔구나. 

어머니께서 이기셨구나, 이제 살아나시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생겼다.

필자가 "귀신이 어떻게 생겼어?"라고 물어보자, 귀신이 사람과 똑같이 생겼다고 하셨다.

이에 필자가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어떻게 귀신인 줄 알아?"라고 하자,

어머니께서는 "생긴 건 사람이랑 똑같은데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야. 귀신은 사람과 달라."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사람에게 정말 영혼이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모습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 것도,

그때는 어머니의 영혼이 빠져나갈 뻔한 순간은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완벽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빠져나갈 뻔한 어머니의 영혼이 다시 어머니께 들어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상관없다.

어쨌든 어머니께서 귀신과 싸워서 이기셨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비록 그 당시 어머니께서 걷지 못하시고, 휠체어에 앉지도 못하시고

누워서만 생활하셔야 했지만

그래도 그때부터 어머니께서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이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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