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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te May 31. 2024

독일 공공극장의 작품 배치와 문화적 의미

독일의 제작극장 연간 프로그램 구성 과정

독일 공공극장에서는 보통 2년 전에 시즌 프로그램에 들어갈 각 장르의 상연작과 재상연작을 선정한다. 이변이 없는 한, 거의 그대로 진행된다. 한 시즌은 9월부터 다음 해 7월까지를 포함하며, 각 주의 학교 방학 시작과 끝나는 시점에 따라 극장마다 다를 수 있다.


다음 시즌 장르별 작품 리스트와 1년이 한 장에 보이는 달력을 펼쳐놓고 어느 달, 며칠에 첫 공연을 할지 배치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80% 이상 주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극장 예산이 이미 책정되어 가능한 작업이며, 새 시즌 극장의 살림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구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


이 과정을 배우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독일인들의 학창 시절, 종교, 문화에서 비롯된 작품 구성과 배치가 매우 중요해 보였다는 것이다. 과거 조상들이 기후 변화에 따라 절기를 나누고 그에 맞는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이 지금도 한국에서 이어지는 것처럼, 이들에게는 공연예술도 생활문화로 이어진 것 같았다.



다음은 40개의 작품을 달력에 배치하는 Disposition(연간 프로그램 구성배치) 수업의 대화 일부이다.

"시즌의 시작은 극장 앞 광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야외 시즌 개막식 공연으로 시작하자!" 

"그리고 헤센주 독일어와 영어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살펴봐야 해. 안티고네, 폭풍, 파우스트 연극은 2주 단위로 9월부터! 학기 시작하고 나서 바로 무대에 올려야 학교 연계 단체 관람을 할 수 있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뮤지컬과 오페라 루살카, 무용 공연은 연극 작품들 사이에 넣어서 관객층을 넓혀야지." 

"극장의 독일 크리스마스 시즌은 이미 11월에 시작되는 거나 다름없어. 그때부터 12월 말까지는 극장의 캐시카우거든. 어린이를 위한 헨젤과 그레텔은 12월 6일 니콜라우스의 날(독일의 산타클로스)에 가족 특선 오페라로 10회 올릴 거고, 오페레타 박쥐는 11월 1일,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은 11월 초부터 적어도 20회 올린다!" 

"대림절(크리스마스 4주 전) 전날인 11월 말 토요일에 마술피리를 넣는 게 좋겠어. 해 바뀌기 전에 마술피리는 들어줘야지!" 

"크리스마스가 한 달이나 남았는데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작품을 보러 오나?"(나의 질문) 

"어! 당연하지! 이게 딱 독일... 독일이 그래." 

"3월 말 부활주일이 있는 3일 전 성금요일 전날엔 바흐의 요한 수난곡이지. 

리골레토는 언제나 무대에 올려도 인기 있으니 1월 말부터 5월까지 16회 정도로 예상해 보자."




우리는 어떤 절기나 명절에 꼭 듣는 우리만의 음악이나 감상하는 작품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독일처럼 문화와 전통이 어우러진 공연 예술이 우리 일상에도 스며들어, 우리도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작품을 즐기며 그 안에서 추억을 쌓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를 통해 우리의 문화도 더욱 풍부해지고 다음 세대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상상은 어떨까? 

2025년 어느 날, 2027년 극장 시즌 프로그램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 

"1월 신년 음악회는 시민 합창단, 시민 오케스트라 합동 공연으로 가죠." 

"이번 시즌엔 교과서에 실린 우리 고전 토끼전, 구운몽, 허생전을 창극으로, 메밀꽃 필 무렵, 오발탄은 연극으로." 

"햄릿은 이번에 연극 버전과 오페라 버전을 동시에 올려보는 거 어때요?" 

"제주 4.3 추모일 영상팀과 한국 무용 콜라보 기획과 4.16일 다큐멘터리 연극 신인 작가 초연작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5월에는 가족 오페라 엘리스, 어린이 인형극 마당을 나온 암탉, 연극 아버지는요?" 

"여름에는 오픈에어 콘서트를 개막으로 5일간 극장 오페라 페스티벌 아이디어를 더 모아봅시다."


[제 글의 인용이 필요하면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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