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요일. 아이들이 유일하게 보는 TV 프로그램 동물 농장 하는 날이다.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이 날만을 기다린다. 동물농장 나오기 15분 전 두 아이는 요즘 관심 있는 동영상 찍기를 해도 되냐고 묻는다. 아직 디지털기기 만질 때는 엄마에게 늘 물어보며 만지는 아이들이다. 나의 대답: 10분이면 괜찮겠지? 10분 찍자.
첫째 대답: 10분 찍으면 1분짜리 영상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10분 내내 찍는 것이 아닌 장소를 이동해 가며 영상을 멈춰가며 찍는 방식이었다.
"엄마, 15분만 찍을게."
"그래, 그럼 40분까지 15분 찍자."
그 사이 나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10분 정도 시간이 흐르니 둘째가 쪼르르 내게 달려왔다.
"엄마~ 오빠가 내 말은 안 들어줘~"
함께 작업하면 투닥투닥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첫째에게 동생 잘 돌보며 서로 이해해 주면서 찍으라고 말하고, 독서를 이어갔다.
두 남매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기 시작한다. 독서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두 아이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봤다. 첫째가 둘째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
"화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그림 전문가를 화가라고 하는 거야.'화가 전문가'라는 말은 없어!"
"아니야~~~ 화가 전문가 있어~~~!! 난 그렇게 말할 거야."
말 잘하는 첫째는 그런 단어 없다며 따따따 둘째를 누른다.
둘째는 오빠에게 이기지 못하고 엄마아~~~ 하면서 또 내게 다가온다.
나는 어느 누구 편을 들어줄 수는 없다. 대충 비슷하게 둘러 대는 말이 있다.
둘이 사이좋게, 찍기로 했잖아. (사실 둘이 사이좋게 찍기로 나와 합의한 것도 아니긴 했다.)
"서로 이해하고 그래야지~ 이제 시간도 다 됐는데 그만 찍어야겠네."
엄마 말을 잘 듣는 첫째는 '알았어' 하며 탭을 닫는다.
식탁 위에 그냥 널브러진 탭을 보며 안전하게 방으로 갖다 놓으라고 말했다. 첫째는 방에 갖다 놓는다.
하루에도 여러 번 두 남매는 잘 놀기도 하고, 이렇게 작은 일에도 투닥투닥 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컸다. 솔직히 나는 언니들과 더 심하게 다투며 크긴 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저녁 먹고 엄마가 설거지하시는 동안 우리 세 자매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깔깔 거리며 웃고, 때론 싸우기도 하며 놀았다. 설거지하시다가 너무 시끄러워 엄마가 한마디 하신다. 우리는 알았다며 고개만 끄덕이고 또 조잘조잘 난리가 난다. 우리 자매가 얼마나 시끄러웠냐면 주인집이 쫓아낸 적도 있었다. 엄마는 여자 혼자 몸으로 세 딸을 데리고 또 이사를 갈 엄두가 나지 않았을 터. 이제는 딸 셋 단속 잘해서 이사 가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으신 거다. 평소 큰소리 내시거나 혼내시는 일이 없는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뒷 산 가서 나무 꺾어 오신다며 엄포도 놓으셨다. 하지만 우리 세 자매는 알고 있다. 엄마가 우리를 때릴 일은 없다는 사실을.
'화가'라는 단어가 중요할까? '화가 전문가'가 중요할까? 에이긍! 뭐 그런 걸로 싸우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에게 그 단어 하나 차이가 클 수도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면 아무 일 아닌 듯 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두 사람은 심각한 경우도 있다.
두 꼬마를 너무 애기 취급했나?
두 아이는 진심으로 좋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단어 하나 차이에도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심각했던 아이들도 5분 후 지금은?
세상 가장 찐한 남매의 모습으로 웃고, 깔깔 거리며 함께 있다. 그렇게 우리집 주말 아침은 지나갔다.
-박노해 걷는 독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