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恐白)_1화

by HANA






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를 찾아간다.

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의 곁을 맴돌다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두 그림자의 공간이 포개지고, 그 교차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


오늘도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았다. 강의실 맨 뒤 구석진 창가 자리. 어디를 가든, 어느 강의를 듣든, 그녀의 자리는 항상 거기였고, 아무도 그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 곳에서 그녀는 하품을 하고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고 멍한 눈으로 교수를 쳐다봤고 가끔씩 창밖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에 잠겨 있곤 했다. 그러다 강의가 끝나면 어느 누구보다도 느리게 가방을 싸고 가장 늦게 강의실을 나왔다. 그녀는 항상 혼자였다. 그녀의 주위엔 언제나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는 듯이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았고, 그녀 역시 아무도 가까이 두려 하지 않았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북적북적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그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바로 채플시간이었다. 다른 강의 시간이야 얼마든지 인구밀도를 점검하여 아무도 없는 빈틈을 탈 수 있었지만, 전교생이 비좁은 건물 안에 밀어 넣어지는 그 시간엔 그녀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항상 채플을 듣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우선 묶고 있던 머리를, 아니 그녀는 머리를 묶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그녀가 깜빡하고 머리를 묶었다면 머리를 푼다. 최대한 풍성한 머리칼로 얼굴을 가리고, 잠바로 긴 몸을 감추려 노력하며,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는 운동화를 신는다. 가방을 맸어도 그녀는 꼭 뭔가를 들었다. 그게 책이든 커피든 곧 버려질 종이뭉치든 항상 아기를 품에 안 듯 소중히 품에 안았다. 가방이 꽉 찬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그린 다음 눈을 뜬다. 그리고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사람들 속으로 입수한다. 그 순간 힘겹게 멈춰 있는 그녀의 숨을 순식간에 깨뜨려버린 사건이 있었다. 한 남학생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그 날이 고백데이였다나 뭐래나. 꽃을 그녀에게 내밀며 오랫동안 지켜봐왔다는 말과 함께 기나긴 장문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채플을 듣기 위해 건물 앞에서 북적거리던 사람들은 일제히 이쪽을 돌아보고,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쳐댔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 중에서 한 명이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고, 그러자 너도나도 유명 아이돌의 스캔들이라도 목격한 마냥 핸드폰 플래쉬를 들이댔다. 그 가운데 우뚝 선 그녀. 남학생의 달콤한 장식으로 포장된 연설도 꽃도 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방팔방에서 날아오는 시선에 그녀는 얼굴이 하얘졌다. 그녀는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은 남자의 얼굴에 들고 있던 종이뭉치와 커피를 냅다 던지고 우글거리는 사람들의 빈틈을 향해 달렸다.


강의가 끝나고 그녀는 늘 그랬듯이 느릿느릿 가방을 쌌다. 나는 그녀에 맞춰 최대한 느린 동작으로 책과 필통을 가방에 넣었지만, 그녀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했다. 그녀는 내가 빨리 나가기를 기다리는 듯이 갑자기 더딘 손놀림을 멈추더니 창밖으로 시선을 떨궜다. 나는 오늘도 그만 먼저 나와 버렸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남들과는 다른 그녀의 분위기에 관심이 갔던 것은 사실이었다. 학업, 진로, 돈, 여자 친구와의 다툼, 인간관계 등 수많은 걱정과 관계에 얽매여 자신의 공간을 힘겹게 지고 캠퍼스를 활보하는 저 대학생들의 무리와는 뭔가 동떨어진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뭔가를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과는 멀리 떨어진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그녀의 눈. 물과 섞이지 않으려 자꾸만 위로 뜨는 기름과 같다고나 할까. 언제부턴가 나는 그녀와 우연히 마주치기를 바랐다. 그녀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느리게 가방을 싸고 느리게 걸었다. 하지만 내가 느려질수록 그녀는 더더욱 느려졌고, 우리 사이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언제 섞여질지 몰라 아슬아슬하게 찰랑이는 기름을 휘젓자, 재빨리 물 입자들의 빈틈을 향해 사라진다. 분명 나보다 느리게 나왔지만 지금은 내 앞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사라질 준비를 하며 발걸음을 바쁘게 놀렸다. 빈틈을 향해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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