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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는 여자는 열심히 이어폰을 풀고 있다. 끝이 과연 있을까 싶은 길고 긴 골목길의 양쪽에는 각기 다른 낡은 스피커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오늘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겠으니 구름이 몰려들지 않도록 우산을 준비해주세요. 테헤란로 방향으로 400km가량 정체되고 있으며. 긴급 속보입니다 천 마리도 넘는 거대한 상어 떼가 동해안에 출몰했다고.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너를 죽이러 갈 거야. 잠이 들면, 우리의 그림자는 깨어 있을 때 간절히 생각하던 그 사람의 꿈을 찾아간다고 해요. 오늘 나이트매어가 들려줄 곡은 이루마의 'If I could see you again' 인데요. 이 길의 끝에 네가 있었으면 좋겠어. 창문을 열면 네가 내 눈앞에 서서.
이어폰을 풀고 있었다. 분명 그녀는. 하지만 손을 대면 댈수록 더욱 엉켜만 가는 이어폰을 보면, 어쩌면 그녀는 이어폰을 묶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풀 수 없게 요리조리 구멍을 찾아 단단히 매어 놓은 이어폰 덩어리를 보면서 괜히 만족스런 울상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그녀는 이어폰을 풀고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한 남자가 그녀를 찾아갔을 때도 그녀는 이어폰을 열심히 풀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이어폰을 열심히 풀고 있었던’ 걸로 정리하기로 하자. 그녀가 ‘이어폰을 푸는 행위’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여기저기서 도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스피커들의 장단에 맞춰 수많은 도로들이 골목길을 뚫었다. 이어폰이 구멍을 나오자 회색 도로 하나가 그녀 앞을 가로막는다. 이어폰 줄이 다시 구멍 속으로 들어가니 U자형 도로가 그녀를 끼고 돌았다. 수 십대의 차들이 너도나도 그녀 주위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다시 줄을 구멍에서 빼자 그녀의 위로 우당탕 떨어진 4차선 도로를 탱크들이 바쁘게 지나간다. 여러분 모두 침착하게 구명조끼를 입고 물속으로 대피하세요 상어들이 옵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구멍 속으로 줄이 들어갈 때, 그녀가 서 있는 자리를 거대한 도로 하나가 관통한다. 빨간불을 사랑하는 차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신호등 앞에 줄 서 있다.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고 차들은 또 다른 빨간불을 향해 시동을 건다. 차들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그녀를 향해 빵빵거리며 돌진한다.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위험해. 한 남자가 그녀에게 뛰어들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늑대처럼 달려들던 차들이 그녀와 일정거리를 두고 다들 꺾이는 것이었다. 마치 그녀 주변에 원을 그려놓고 그 원은 침범하지 말기로 약속이나 한 듯이 다들 자연스럽게 자신의 길을 꺾었다. 아니, 그 원은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라는 듯이. 원래 그곳엔 공간 자체가 없다는 듯이. 도로는 아무렇지 않게 꺾이고 휘며 차들을 운반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그 영역 안에서 한 남자가 여자를 꼭 안고 서 있었다.
“뭐야!”
황급히 몸을 뺀 여자가 남자에게 총을 겨눈다. 남자는 깜짝 놀라 두 손을 든다. 여자는 자신이 남자에게 안겼다는 것이 불쾌했다기보다는, 어떻게 저 남자가 나를 안았지 하는 당혹감에 더욱 흥분한 듯이 보였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자신의 공간 속에 불쑥 튀어 들어온 그에게 말이다.
“뭐야! 너 누구야!”
“진정해. 나야, 나. 허 빈. 차들이 달려오는데 거리를 뒤도 안 돌아보고 가면 어떡해. 너 방금 사고 날 뻔했어.”
여자는 더욱 경계를 하며 남자의 이마에 총을 갖다 댄다.
“네가 날 구하려고 했다고?”
“그래.”
“네가 왜?”
이마를 타고 온몸을 돌고 도는 차가움에 남자는 부르르 떤다.
“왜라니. 네가 위험했다니까.”
“그럼 이젠 날 구하려고 안 해도 돼. 보다시피 아무것도 나한테 다가오지 못하니까. 무언가에 치일 리도 없고, 내가 위험에 빠질 일도 없어. 그럼 가.”
여자는 총을 내리고 남자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리고는 마저 이어폰을 푼다. 아니 묶는다. 아니 푼다. 길들이 모두 엉키고 엉켜서 하나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그들을 가둔다. 소용돌이 속에서 더 많은 길들이 나오고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 표지판들이 넘실거린다. 이어폰 줄의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달려있는 낡은 스피커에선 여자 비명소리가 물처럼 쏟아진다. 그러자 하얀 이빨을 날름거리는 파도가 남자를 집어삼키고 여자를 밀어낸다. 남자에게서 멀어져가는 여자는 이어폰을 푸는 일에 싫증이 났는지, 길길이 날뛰는 파도를 한 줄기씩 잡아다가 매듭을 짓기 시작한다. 지지직거리는 스피커를 매듭 속으로 던진다. 이어폰에 묶인 채 파도 속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남자가 보인다. 오늘 나이트매어가 들려줄 곡은 이루마의 'If I could see you again' 인데요.
그에게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한때 그녀가 사랑했던 음악이었다. 파도가 날름거리며 거대한 건반들로 바뀐다. 남자는 하얗게 흔들리는 건반의 물결을 휘저으며 구역질을 한다. 여기저기서 음표들이 상어가 되어 점프를 했고, 파도에 갇힌 남자는 자꾸 허공을 짚으며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다. 누나 죽으면 안 돼. 그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내뱉었던 것 같다.
상어다. 상어를 잡아라. 군인들이 상어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고 여자는 군인들을 향해 총을 쏜다. 공중에서 길을 잃은 총알들이 빗발처럼 후두둑 쏟아졌고 구름이 몰려들었다. 남자는 구름에 갇힌 채 완전히 사라졌다. 여자는 우산을 피고 피아노 뚜껑을 덮는다. 죽음이란 원래 다 그런 것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은 침묵이 공간을 채운다. 여전히 그녀 주변에서 휘고 꺾이는 낡은 거리를 여자는 천천히 걸어간다. 열심히 이어폰을 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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