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은 두렵고 Pause 어때?
우리가 처음부터 이리 가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서로 더 솔직했고 당돌했고 당당했다. 그래서인지 연애 초반에는 무엇이든 쌓아두는 것이 없었고, 조금 있는 것도 서로 바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바탕 싸우고 나면 없어지곤 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에게 상처주기 싫다 ‘, 혹은 ‘솔직한 것이 항상 좋은 건 아니더라’라는 아주 그럴싸한 명분으로 내 안에 쌓이는 응어리들을 외면했고, 굳이 나서서 풀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 대화로 풀 수 있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은 계속 계속 뒤로 미루고 싶은 것처럼, 나에게 그 응어리들은 최대한 나중에 마주하고 싶은 또 마주하기 싫은 난제들이었다.
응어리들은 그에 대한 고민과 내 삶에 대한 고민들이 혼재했다. 그와 몇 번이고 서로 부딪혔던 문제, 고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 어쩐지 그와는 결혼까진 힘들겠다는 생각, 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 앞으로 뭘 하고 살까 와 같은 미래에 대한 고민 등 여러 가지가 한 데 뒤섞여 있었다.
근데 어느날부터 그렇게 외면하고 외면하기만 하던 문제들을 마주할 용기가 점점 생겼는데, 생각해보면 퇴근 후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평소 책과는 거리가 있는 나였지만, 봄바람의 설렘 때문인지 마음의 답답함 때문인지 무언가에 이끌려 매일 퇴근 후 도서관에 출첵을 하게 됐다.
그날그날 구미가 당기는 책 두세 권을 찾아,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커다란 창문 앞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은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
책을 읽다 조금 지루해지면 주변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창 밖을 보며 온갖 생각과 상상을 펼치곤 했는데 특히 할아버지들을 보며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다. (도서관과 공원에 유독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셨다.)
저 할아버지는 어떤 삶을 사셨을까? 지금 행복하실까? 삶이 만족스러우실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거지? 나는 늙으면 어떨까? 내가 한 선택들에 후회가 없으면 좋을 텐데! 등등 자문자답을 하면 어느새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다 뭔가 파바밧! 하고 떠오르면 공책에 적곤 했는데, 그렇게 적어 내려간 것들은 내 삶에 대한 통찰과 나에게 주는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말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도서관에 앉아 ‘어딘가 우울한 나’를 마주했다. 나는 그런 나에게 잠시 잊고 있던 행복과 희망과 내가 꿈꾸던 미래를 다시 들려주었고 그것을 찾아 떠나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내 안이 꽉 채워질수록, 나는 남자친구 앞에서 부리던 가식을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즉,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을 이제는 안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냥 마주하기로 했다.
나의 속내를 숨기지 말고, 가식 떨지 말고, 연기하지 말고 그냥 마주하기로, 가슴에 구멍이 뚫리던 눈물바다가 되던 그냥 무조건 마주하기로 말이다.
조금 돌아오고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Pause를 외칠 수 있었다.
“오빠 우리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Stop을 외치지 못한 이유는 아마 두려움이리라. 그가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 그 와의 추억들이 모두 산산조각이 될 거라는 두려움, 그의 소중함을 깨닫고 후회할것 같은 두려움, 그가 보고 싶고 그리울 것 같은 두려움, Stop을 외치면 그가 나를 붙잡을 것 같은 두려움, 혹시나 다시 붙잡힐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비겁하게 Stop이 아닌 Pause를 외쳤다. 나는 내가 그 없이도 잘 살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고 그와 헤어져도 된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나의 비겁한 제안에 그는 자신도 올해들어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며 시간을 가지는 것에 동의했다.
“그래, 각자 시간을 갖고 생각한 후에 같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자”
“웅 오빠 고마워, 그동안 잘 지내고 있어! “
그에게 잘 지내라고 말하는 순간 묘한 해방감이 나를 감쌌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주였다.
어쩐지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