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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Dec 02. 2022

어디서 흥미가 터질지 모른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처음 역사를 배울 때다. 그때까지만 해도 역사는 내게 지루하고 따분한 분야일 뿐이었다.  여고시절, 잠을 부르는 외모에 모기소리만큼 목소리도 작았던 역사 선생님은 칠판 가득 필기를 하고선 베껴 쓰라고 했다. 필기를 다하면 막대기로 짚어가며 하나하나 설명하던 선생님의 목소리는 자장가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한참 졸음이 쏟아질 시간에 역사 수업이라니. 머리에 들어오는 게 없으니 흥미도 점점 잃어갔다.


 역사에 대한 호감이 제로였던 내가 어느 날, 지인의 권유로 도서관에서 역사 수업을 듣게 되었다.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역사가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숨겨진 이야기와 함께 역사를 풀어주시니 술술 역사가 내게 스며들었다. 그 후 나는 여러 곳에서 역사 수업을 들었고, 역사논술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책 읽는 것과 글쓰기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새로운 흥미’를 발견한 것이다.


 한창 역사에 흥미가 오를 즘에는 정신없이 유튜브 강의를 들었다. 혼자 밥 먹을 때도, 설거지를 하거나, 외출 준비를 할 때도 늘 강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화장실에 앉아서도 강의를 들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유튜브 강의를 찾아보면 10분짜리 강의부터 길게는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것까지 다양한 강의들이 있다. 강의를 계속 듣다 보면 나와 맞는 선생님, 내게 맞는 강의를 찾게 된다. 처음에는 역사를 재밌게 풀어주시는 선생님 강의 위주로  듣다가 차츰 듣는 귀가 열리니 역사학자님들 강의도 듣게 되었다.

 

 한국사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하니까 내친김에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에도 도전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 후 나는  한국사 시험에 도전해 보기로 하고, 강의를 들으며 빼곡하게 필기를 해나갔다. 귀로 듣기만 했을 때보다 필기를 같이 하니까 더 기억에 오래 남았다. 시험 전날은 하루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다. 공부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잠깐 드러누웠다. ‘내가 미쳤구나. 내가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냐’ 고 실소를 짓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내가 지금 뭐라도 됐을  텐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첫 번째는 보기 좋게 꽝, 두 번 만에 한국사 1급 문턱을 넘었다.


한국사 공부하면서 필기했던 노트.

 그렇게 역사에 열렬한 팬이 되어갈 무렵 최태성 선생님 오프라인 강의를 듣기도 했다. 어쩜 그렇게 화면으로 보던 모습과 똑같던지, 선생님의 열성적인 강의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그중 '국권 상실의 날'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광복절은 기억하지만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한 날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선생님은 광복절보다 이 날을 더 잘 기억하고 있어야 된다고 강조하셨다.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한 날로,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에서 경술국치라 한다. 나 또한 기쁨의 환희보다는 아팠던 순간을 더 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아픔을 다시 겪지 않도록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에서다.  역사에 흥미가 돋다 보니까  역사 관련 책을 즐겨 읽기도 했는데, 그중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의 쓸모>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나는 역사에서 답을 찾았다.”라는 부제처럼 읽고 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조금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 대한 내 마음을 더 굳건히 다지게 해 주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도서관 강의를 접하기 전 나는 역사에 대한 상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부족했다기보다는 1도 없었다는 표현이 차라리 더  옳을 것 같다. 그동안 역사는 나와 아주 먼 분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글쓰기 다음으로 내가 ‘흥미를 가진 분야'가 되었다. 흥미가 생기니까 보기만 해도 숨이 턱 차오르던 두꺼운  역사책도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679p까지 있는 <조선왕조실록>도  장식용으로 늘 책꽂이에 꽂혀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읽은 책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여튼 나는 단단히 역사의 매력에 빠져 든 것이다.


 가끔은 내 미래의 꿈으로 또 하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역사를 들려주는 할머니는 어떨까?’ 나이가 들어도 꿈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꿈을 가지면 그중 몇 가지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배움을 많이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루하기만 했던 역사를 좋아하게 된 나처럼 어떤 분야에 새롭게 꽂힐 수도 있으니 말이다. ‘흥미는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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