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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May 15. 2023

"아가씨 좀 비키세요."


   

아침 7시 20분쯤, 아침을 먹고 출근한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전기차 주차장 맞은편에 차를 세워놨는데, 차가 없다고 했다. 잘 찾아보라고, 거기에 주차해 둔 게 분명하냐고 물어보면서도 내심 신경이 쓰였다.


 밥을 먹다 말고 나갔다. 설핏 잠이 덜 깬 아들한테도 나가서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아파트 우리 동 근처 앞마당을 한 바퀴 다 돌았는데도 차가 보이지 않았다. 남편에게 차를 찾았냐고 전화를 하면서 다시 우리 집 라인 쪽으로 걸어왔다.


 쓰레기 수거차에 올라탄 아저씨가  나를 보며 외쳤다. “아가씨, 좀 비키세요.” 이 아침에 아가씨 소리를 듣다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내가 입은 복장이 멀리서 보면 아가씨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편해서 요즘 즐겨 입는 통청바지에 데님롱셔츠, 거기다 하얀색 캡 모자에 하얀 마스크,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상태였다. 이러나저러나 내가 아줌마니까 당연한 소리인 줄 알지만 “아줌마, 좀 비키세요.”라고 했으면 좋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 거다.

    

 6시에 일어나 잡곡밥 안치고, 김치찌개 끓이고, 브로콜리 데치고, 머위나물도 볶고, 키위도 깎아서 한 접시 내놓고, 남편한테 홍삼과 영양제도 챙겨주고, 아침부터 나름 종종걸음을 쳤던 터였다.


 입맛은 없었지만 남편 아침상 반찬들이 남아서 잔반처리 할 겸 한 술 뜨고 있던 차에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남편은 결국 차를 찾고 출근을 했다. 잠깐이나마 이런 해프닝이 우습긴 했지만 몸과 마음이 묵직한 월요일 아침을 조금은 덜 뻐근하게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말에 하루를 미소 지으며 시작할 수도 있구나 싶어 나도 던지는 말에 좀 더 무게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내 말 한마디로 빙그레 웃으며 일주일을, 하루를 시작한 사람이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3층까지 걸어 올라가다가 2층에서 멈춰 쓰레기 수거 중인 쓰레기차를 내려다봤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부디 이번 한 주도 건행하시기를요."




*건행 : 가수 임영웅의 시그니처 인사

 '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의 줄임말


*말 한마디

*말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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