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연속 만보 걷기를 50 여일째 성공하고 들어온 날이었다. 남편은 술을 한잔하고 들어와 있었다. “나는 아버지 미워했지만 존경했다. 그리고 당신도 존경한다." 남편은 올해 1월에 돌아가신 시아버지 얘기를 꺼내면서 내게 존경한다는 말을 했다.‘헐 그럼 나도 미워한단 소린가?’ 나는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은 헛소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안방에 자러 들어갔다. ‘이 인간이 미쳤나’ 속으로 든 생각이다.
남편과는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다. 시어머니는 결혼 전 우리 둘 궁합을 봤는데, 상극이라고 결혼시키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일절 내게 표 내지 않았고, 결혼 후 남편에게 들은 얘기다. 불교신자인 어머니는 궁합이 안 좋다는 말이 신경 쓰였겠지만 무시하고 결혼을 시킨 것이다. 살다 보니 역시나 우린 제대로 맞는 게 잘 없었다.
남편은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십여 년 전 위암이 발병된 뒤로는 자극적인 음식을 줄였지만 매운 라면에도 고춧가루를 한 숟가락씩 넣고 청양고추까지 썰어 넣고 먹던 사람이었다. 신혼 초에는 어쩔 수 없이 남편 입맛에 따라간 적이 있었으나 대체로 나는 맵지 않고 간이 심심한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
드라마나 영화 취향도 다르다. 남편은 ‘카지노’, ‘분노의 질주’ ,‘범죄 도시’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 본다. 그에 비해 나는 ‘나의 아저씨’ 같이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한다. 또 걷기가 나한테 딱 맞다며 걷기에 푹 빠진 나와 다르게 남편은 자전거 타기와 간간히 골프에 취미를 붙였다.
라면이나 국수, 짬뽕 등을 자주 찾는 남편에 비해 면 요리를 싫어하는 편이다. 라면도 아주 드물게 먹고 집 근처 냉면 맛집이라고 소문난 집에서 먹는 메밀 냉면만 맛있다고 먹는 정도이다.
가장 큰 차이라면 푸른 병을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에 비해 나는 술이라면 딱 질색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고래가 살지 않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술을 좋아하는 남편을 등장시킨 동시를 다 썼을까. 내가 술을 싫어하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술에 만취한 아버지 모습을 질리도록 봤기 때문인데, 내 남편까지 술을 이렇게나 사랑하는 사람일 줄이야. 내가 가끔 좌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변 산책길에서도 매일 보는 것들이지만 다르게 보이는 날들이 있다. 백로도, 꽃들도, 흘러가는 물살도 사진을 찍을 때가 있는데, 남편은 빨리 걸어야지 운동이 된다면서 사진 찍는 나를 두고 먼저 저만치 앞서간다. 이렇듯 우린 평상시 결이 다른 사람들이다.
남편은 안동 김 씨로 고집도 세고,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면모가 많은 남자다. 시아버지에게 순종적으로 헌신하면서 한평생을 살아오신 시어머니를 보며 자라서 그런지 자기 말한디면 만사 ok 해 주는 순종적인 아내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권위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 억눌림이 많았던 터라 남편에게까지 그런 억눌림을 당한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말이 적고 조용한 편이지만 나도 고집이 세고 은근 주장이 강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둘이 만나 부부로 연을 맺었으니 사는 동안 얼마나 달그락 거림이 많았겠는가.
소위 말해 부부란 이 꼴 저 꼴 별꼴을 다 본 사이 아니든가. 남편이 소파에서 TV 를 볼 때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빨래 좀 개 달라고 빨래 바구니를 슬쩍 내밀어도 열 번 중, 한번 겨우 말을 들을까 말까 옆으로 그냥 밀쳐 놓는 사람이다.
그런데 글쎄, 이런 사람이 나를 존경한단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술김에 한 말이니 맨 정신에도 이런 말이 나오면 이 말을 받겠노라고 마음먹는다. 근데 슬며시 웃음은 왜 날까?
2023.5.20. 토
덧 2023년 7월 17일 화 어제 기준으로 연속 115일째 만보 걷기에 성공했다. 만보 걷기를 하면서 남편에게 들은 3종 세트의 말이 있다. 왜 매일 만보를 걷고 있는지에 대해선 나중에 한번 써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