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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게 May 19. 2021

나의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

 저는 원주시민이 되었어요

2017. 05. 31      

<1>

“세탁소 아저씨가 엄마 어디 가셨냐고 묻더라.”      


낮에 딸과 카톡을 하던 중 딸이 전하는 말이었다. 딸이 아빠 바지 세탁 맡긴 거 찾으러 갔을 때 세탁물배달을 부탁하지 않고 직접 찾으러 온 게 이상해서 아저씨가 물었나보다.  

평소엔 맡길 세탁물이 생기면 내가 전화로 아저씨께 세탁물 수거를 부탁했고 맡길 옷들을 옷걸이에 가지런히 챙겨 현관문 앞에서 아저씨를 기다렸었다. 찾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아저씨는 항상 약속 날짜에 맞춰 저녁 7시경 세탁된 옷들을 집까지 배달해 주셨다.

언제부턴가는 전화를 하면 아저씨가 내 목소리를 기억하는 건지 몇 동 몇 호냐고 묻지도 않고 “네, 사모님 금방 갈게요~” 하고선 이내 세탁물을 수거하러 오셨다. 우리 집은 벌써 그 세탁소에 10년째 단골이었다.  


남편의 양복바지와 코트, 딸의 교복 등을 맡겼는데 한 달에 적어도 2번 이상 아저씨가 세탁물을 수거하고 배달하러 우리 집에 오셨다. 아저씨가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운영하는 아파트 상가내 세탁소는 고객과의 약속을 절대 어기지 않는다는 점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매주 일요일이 휴무였고 8월 초 여름휴가 기간엔 딱 3일을 쉬었다. 아저씨에게도 내 딸 또래의 아들이 있다는 얘길 들은 것 같다.       


사건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엄청 화를 내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더랬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어느 늦저녁이었는데 아저씨는 그 날도 오토바이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돌며 세탁물을 배달하는 중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동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던 중이었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아저씨가 어떤 승용차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계셨다. 평소 친절하고 조용한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화를 내는 아저씨의 모습은 딴 사람처럼 보였다. 아마 승용차가 뒤에서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실수로 건드려 놓고 사과도 없이 그냥 지나치려 한 게 문제가 된 것 같았다. 멀찍이 서서 실랑이를 지켜봤는데 화내는 아저씨 입장이 이해가 됐다. 잘못을 해 놓고도 사과 할 줄 모르다니 그 검정색 큰 차를 몰던 남자의 뻔뻔에 부아가 치밀었다. 평생 고된 세탁소 일을 한다 해도 아저씨가 그렇게 좋은 승용차를 끌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큰 차 주인이  얄밉게 보였다.


세탁소 아저씨에 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이게 전부지만 분명한 건 현재 내가 집에 없다는 것에 대해 궁금해 하는 유일한 동네 사람이 바로 그 세탁소 아저씨라는 사실이다.             


<2>

벌써 7년째 우리 집 정수기를 관리해 주시는 아주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오늘은 집에 안 계시네요. 못 만나서 서운합니다. 필터 교체는 잘 끝내고 갑니다.”        

정수기 필터 교체는 4개월마다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데 이번 점검은 평일이 아닌 남편이 집에 있는 토요일 오전에 해 달라고 아주머니께 미리 부탁을 해놓았었다. 관리 시간에 맞춰 집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던 내가 안 보이니 아주머니께서 엄마는 어디 갔는지 궁금해 하셨다고 딸이 전한다.  

정수기 관리해 주시는 그 분과는 7년간 만나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친해졌는데 손주까지 둔 연세에도 불구하고 정수기 관리 일을 20년 가까이 오신 활 넘치는 분이셨다. 내가 한창 사춘기 딸아이 때문에 속 썩던 시절 그 분께 내 속사정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내 얘길 들어주고 특유의 소탈한 표정으로 위로를 건네셨다.  


아주머니로부터 들은 말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아들은 경찰서만 들락거리지 않으면 되고 딸은 가출만 안하면 다행이지.”라는 촌철살인의 한마디. 그건 본인이 자식 둘을 키우면서 겪으신 녹록치 않은 경험에서 비롯된 말씀이었다. 자식 문제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대범하게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하신 그 말이 힘이 되었다.


자식 걱정도 다 한 때라고, 곧 지나갈 거라던 아주머니 말씀처럼 딸의 사춘기는 잘 지나갔다. 그리고 자식 때문에 눈물짓는 누군가에게 전해 줄 위로의 말이 나에게도 생겼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반항하고 속을 썩이는게 정상이다. 시간이 흐르면 다 제자리로 돌아오니 믿고 기다리라.'


다음 번 점검 때도 집에 내가 없으면 정말 이상하게 여기실텐데 뭐라고 말해야하나 고민된다.      


<3>

채영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요즘 많이 바쁜가 봐요. 무슨 일인지 몰라도 빨리 마무리 되어 얼굴 봤으면 좋겠.”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친목 모임에 내가 몇 달째 빠지자 궁금했는지 먼저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채영 엄마는 딸아이 고등학교 시절 3년간 자모모임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말이 잘 통해서 금방 친해졌었다. 나와는 달리 그녀는 매사에 활동적이고 씩씩했다. 말주변도 좋아서 모임에서 항상 분위기를 주도했고 이런저런 교육 정보들을 퍼다 나르기도 했다. 딸과 채영이가 고교 3년간 한 반 단짝으로 지내다보니 우리도 자연스레 자식에 대한 고민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는 게 갱년기 극복에 최고라며 운동으로 꾸준히 체력을 관리해 온 그녀는 수영부터 배구까지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그녀는 집에 있길 좋아하는 나를 밖으로 불러냈고 우리는 함께 꽃 구경을 가고 가을엔 둘레길을 걸었다.

또 간장게장 맛있는 집이 있다며 주문할 때 우리 것까지 함께 주문해주고 게장 손질법도 알려줬다. 내가 게장을 못먹다 보니 딸에게도 게장을 사먹인 적이 없었는데 채영 엄마가 권해준 게장을 먹어보고 그 맛에 홀딱 반한 딸은 일주일 내내 게장에다 밥을 한그릇씩 먹었다.  


딸들 대학 가면 같이 해외 여행가자고 친한 엄마 넷이서 한 달에 5만원씩 2년을 꼬박 적금을 붓기도 했는데 돈은 목표만큼 모였지만 네 명이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서 여행의 꿈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녀는 아직 그 돈을 쓰지 않고 잘 가지고 있다고 했다.      

채영 엄마에게만은 솔직해야 할 것 같아 따로 나와서 살고 있는 내 속사정을 털어 놓았더니 그녀가 말한다. “우리 나이가 다 외롭지. 나도 집에서 늘 혼자야. 나도 어디 가서 혼자 조용히 살고 싶다 생각한 적 있어." 

지금 그녀의 큰 딸 채영이는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고 둘째 딸은 고3이다. 내가 뼛속 깊이 느껴왔던 고독감과 상실감을 그녀도 견디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녀 원주에 한 번 초대하려 한다. 딸자식들 다 대학에 보냈으니 이젠 딸걱정 대신 우리 자신의 얘기를 서로에게 들려줄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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