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에 나가기 전 지피지기
코로나 2주 격리 기간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게 웬 휴가냐?‘라고 좋아했지만, 이틀째 부터는 이내 지루하고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삼시세끼 밥은 모두 챙겨 먹지만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그야말로 사육에 가까웠다. 운동도 할 수 없고, 의지할 곳은 노트북과 핸드폰 밖에 없으니 독방에 갇힌 죄수 같은 느낌이었다.
이러면 안되겠다 생각이 들어 격리 기간 동안 인도와 구자라트에 대해 벼락치기 공부라도 해보자고 다짐했다. 운동을 할 때나 회사에서 신규 고객사를 개발할 때도 상대방에 대한 분석은 기본이 아니었던가? 같은 맥락으로 앞으로 지내야 할 이곳에 대해 2주 기간 동안 학습 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이나 책에서 인도에 대한 정보를 과거보다는 많이 제공하고 있지만, 자극적인 성범죄나 여행기, 혹은 인도 신문을 그대로 가져온 부자연스러운 번역 기사 위주로 딱히 가치 있는 정보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지내고 있는 구자라트에 대한 정보가 없다시피 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검색 포털도 그동안 익숙지 않던 구글로 바꿔야 했다. 현지 정보를 있는 그대로 실시간으로 받아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유료로 가입하면 질 좋은 글을 볼 수 있다는 인도 뉴스 채널도 등록하고 경제 잡지도 구독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폭넓게 사용 중인 링크드인도 가입했다. 링크드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채용에 대한 정보 뿐만 아니라 기업 소개, 뉴스, 경제, 역사 등 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편안하게 얻을 수 있어 인도에서 매우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니 피곤함이나 지루함도 모르게 2주가 지나갔다. 여러 소스를 통해 알게 된 비록 이론상의 정보지만 몰라도 너무 몰랐던 부분이 정말 많았다. 단순히 간디의 고장, 90년대 대지진, 모디 총리의 고향 그리고 그곳에는 술과 고기가 없다는 카더라성 지식만 갖고 있던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이 지역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구자라트는 지리적으로는 인도 서북부에 위치해 있는 인도를 대표하는 주(State)이다. 한반도의 2배 정도의 면적으로 인도에서 8번째로 많은 72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큰 지역이다. 인도 내에서 가장 긴 1,600km 해안가를 보유하고 있어, 41개의 크고 작은 항구들이 운영되고 있다. 영국이나 포루투칼도 구자라트 항구를 통해 맨 처음 인도로 들어왔다. 특히 인도 최대의 민간 항구인 아다니의 Mundra Port는 가장 성공적인 항구로 평가받는다. 북쪽으로는 라자스탄주, 동쪽으로는 마드야프라데시주, 남쪽으로는 마하라슈트라주와 인접해 있으며 독립 전에는 봄베이주에 포함되어 있었어서 뭄바이와는 지리적, 감성적으로도 가깝다. 실제로 많은 구자라트 출신 사람들이 인도 최대 경제도시인 뭄바이에 거주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구자라트는인도 독립과 통일의 아버지인 간디와 사르다르 파텔 부총리가 살며 독립 운동을 했던 곳이다. 인도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통하며 현 집권 정당인 인도국민당(BJP)의 지지율이 90% 이상 나오는 친정부 지역이다. 실제 현 모디 총리가 태어난 곳이자 12년간 주총리를 엮임 한 곳으로 구자라트는 그의 강력한 정치적 고향이다. 그런 배경인지는 몰라도 해외 국가 원수가 인도를 방문하면 꼭 함께 아메다바드를 들른다. 인도 정부의 주요 내각은 구자라트 출신이 당연하게도 많다.
경제적인 부분은 어떨까? 인도 최고의 상인인 구자라티 상인과 타타그룹으로 유명한 파르시 (Parsi) 커뮤니티가 활동을 시작한 곳으로 1인당 GDP는 마하라슈트라, 타밀나두, 카르나타가, 케랄라에 이어 5번째로 높은 도시이다.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 중 하나인 아다니(Adani Group)의 본사가 있고,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도 구자라트에서 시작하였다.
또한 자동차 생산 허브로 마루티스즈키, 타타, MG모터 등 완성차와 Honda, Hero의 오토바이 생산 거점이 위치해 있고, 세계 최대 유가공 업체 중 하나인 Amul 또한 구자라트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아시아 최대의 선박 해체 폐기장이 가동되고 있어 온갖 대형 폐선들이 구자라트로 몰린다. 전력사정 또한 매우 좋아 타 주에 전력을 판매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최근에는 전기차, 반도체 투자가 확대되고 있고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주 지역 곳곳에 SEZ과 금융특화지역인 GIFT CITY 및 스마트 시티를 구축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준비도 차곡차곡 실시하고 있는 인도 내 핵심지역이다.
구자라트 내 가장 큰 도시인 아메다바드는 흥미롭게도 서울을 가장 많이 벤치마킹한 곳이다. 치안 또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여, 인도에서 밤 중에 여성이 돌아다녀도 큰 사고가 나지 않는 인도 내 몇 안 되는 도시라고 한다.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일까? 매해 살기 좋은 도시 설문 조사에서 아메다바드는 항상 Top 5 손꼽히고 있다.
술도 없고, 고기도 구할 수도 없다는 곳. 한국 식료품점은 커녕 한국 음식 먹기도 힘들다는 곳. 국제학교가 없어 아이들 키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곳. 이렇게 건너들었던 경험하지 못한 단점들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문제가 되지 않음을 느꼈다. 구자라트에는 단지 한국 기업의 투자가 다른 지역 대비 낮은 배경으로 이렇게 중요한 지역임에도 우리가 무관심 넘어 무지한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구자라트에 대한 일본의 투자와 관심은 매우 대단하다.
책과 인터넷 등에서 모아 본 정보를 이제 실제로 하나하나 현장에서 확인해 나갈 수 있다니, 왠지 모를 탐험가가 된 느낌에 기분 좋은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2주가 훌쩍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