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y State, 금주의 도시에서 술을 찾다.
코로나 격리를 마치고 출근을 시작했다. 한국 주재원은 법인장님과 나뿐이어 마케팅, 생산뿐 아니라 인사, 구매, 재무 등 모든 부분을 관리해야 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했다. 한국에서 일할 땐 지시를 받는 입장이었는데, 관리자로서 지시하는 역할을 하려니 책임감과 부담이 나를 짓눌렀다. 영어로 표현되는 처음 보는 용어들과 업무를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럴 때 한국이라면 퇴근 후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스트레스를 날릴 텐데 이곳은 법적으로 술이 금지된 구자라트였다. 술 없다고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정말 없었다. 다른 인도 대도시에는 각종 수입 맥주, 위스키를 분위기 좋은 바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일부 위스키는 한국보다 저렴한 것들도 있다. 소주의 경우에도 델리나 푸네, 첸나이, 뱅갈로르 같이 한국 소사이어티가 발달한 지역 한국 식당에서 쉽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호사는 내가 살고 있는 구자라트 아메다바드에서는 불가능하다. 정확히 얘기하면 어디든 간에 공공장소에서는 술을 판매하는 것도, 마시는 것도 엄격히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구자라트는 비하르, 미조람, 나갈랜드주와 함께 법으로 술의 판매와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강력하게 금지하는 청청지역이다.
구자라트가 금주를 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인도 국부 마하트마 간디가 태어나 지역 (구자라트 Porbandar)으로 그는 평생 음주를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 구자라트는 이런 그의 사상을 반영하여 1960년 5월 1일 봄베이주에서 독립하여 구자라트주로 시작할 때부터 금주를 법으로 지정했다.
또한 간디의 생일인 10월 2일에는 인도 전국이 술을 팔지 않는 Dry Day이다. Dry Day 전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술을 사놓기 위해 술집에 몰려드는 진풍경이 일어난다.
구자라트에서는 호텔, 식당 혹은 공공장소에서 술을 먹는 것은 정말 범죄이다. 그래서 한국인들도 술을 몰래 먹을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한국 게스트하우스를 찾거나, 각자 집에서 먹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귀찮아서(?) 안 먹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정말 술을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외국인이나 타주에서 여행 온 사람들과 의학적으로 술을 먹는 게 좋다고 진단을 받는 경우에 한해서 구입할 수 있다. 돈을 주고 신청 해야하는 일종에 alcohol permit라고 하는데 외국인의 경우에는 최대 1년의 유효기간으로 한 달에 4 unit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1 Unit이면 맥주 500ml 13캔 정도로 한 달에 52캔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주로 이렇게 술을 구매하여 집에서 먹는다.
어느 날 친해진 이웃이 인도 축제날 행사에 초대했다. 음악도 크게 틀고 다들 춤도 추는 즐거운 행사였는데 맨 정신에 도저히 참여할 자신이 없다며 물었다.
“너네들은 어떻게 술도 없이 그렇게 맨 정신으로 잘 놀 수 있어? 정말 대단하다! 난 진짜 못해! “
“무슨 말이야? 누가 술을 안 먹는다고 그래? “
의외의 대답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초대된 집에 들어가니, 온갖 위스키와 맥주가 종류별로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생각을 하는 찰나 인도 친구가 대답한다.
“웬만한 술은 다 있어. 밖에서만 못 먹을 뿐이지. 걱정 마. 오늘 끝까지 가자! “
그랬다. 금주는 금주고 술을 먹을 사람은 먹고 있었다.
나중에 정말 재밌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자라트 성인 중 5%는 이미 알콜 중독자이고, 인근 지역인 라자스탄주에서 몰래 가져 들어오는 술의 양이 엄청나며, 그것을 주 경계에서 적발한 경찰은 슬그머니 빼돌려 다시 구자라트에서 비공식적으로 판다는 사실. 결국 비공식적으로 술을 판매하는 사람 중 몇몇은 경찰과 관련 있다는 것.
친구가 말한다.
“앞으로 귀찮게 Permit 받고 할 필요 없어. 술 필요하면 얘기해. 집 앞까지 배달도 가능하니깐”
이 정도 되니 금주의 도시 아메다바드가 내숭 떨지만 뒤에서 할 거 다 하는 사람 같이 느껴졌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술이 고픈 게 아니었다. 술을 먹는 분위기와 좋은 사람이 고픈 게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