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고기 찾아 삼만리, 성공?
인도에 주재원으로 나오기 전 꼭 챙겨가야 할 것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꽁꽁 얼린 소고기, 돼지고기이다. 인도는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는 게 수월하지 않아, 주재원들은 업소에서나 볼법한 냉동고를 한 두 개씩은 가지고 있고 고기를 포함한 각종 한국 음식들을 보관한다. 그러면 왠지 모를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는 분들도 계신다.
사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델리나 첸나이는 고기 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한국 슈퍼도 잘 되어있고, 한국에서 고기도 수입되고 있는 형편이라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만만의 준비(?)를 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구자라트로 오면 다른 상황이다. 구자라트는 금주뿐 아니라 채식이 기본인 지역이다. 인도가 채식지역이 많은 편이지만, 구자라트의 채식 비중은 인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심지어 마늘이나 양파 같은 뿌리채소도 먹지 않는 자이나교 (Jain) 신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소고기를 파는 것은 불법이고 닭고기를 파는 곳은 더러 있지만 옵션이 많지 않다.
이곳에서는 고급 식당일수록 채식을 표방한다. 닭고기와 같은 허용된 육식도 많이 팔지 않는다. 채식도 등급별로 나누어져 있어서 양파 같은 뿌리채소까지 들어가 있지 않은 자이나교 신자를 위한 극단적 채식부터, 계란 정도는 넣어주는 채식까지 다양한 옵션을 제공한다. 어떤 빌딩은 닭고기 조차도 파는 식당은 허가하지 않아 그 건물에 있는 모든 식당은 채식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이 아파트를 구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육식을 하는 외국인을 커뮤니티에서 거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육식의 기운을 단지에서 느끼고 싶지 않다는 이유이다.
한국인들은 그래도 돼지고기, 소고기를 필수적으로 생각하고, 아이가 있는 집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냉동고 속 꽁꽁 얼려진 고기들이 있지만 이것이 언제 떨어질지 몰라 아내도 가끔 걱정했다.
이렇게 불안하게는 살 수 없겠다 싶어 아메다바드에서 고기를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아무리 채식만 하는 곳이라지만 고기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아메다바드가 무슬림도 많은 지역이라 분명히 소고기도 어딘가 있을 거야? 이렇게 큰 도시에 아무리 그래도 고기 파는 곳이 없겠어? 모든지 현지 조달이 원칙이다! 찾아보자!"
여기저기 인터넷도 뒤져보고 회사 직원들에게도 물어봤다. 술이 필요하면 언제나 얘기하라던 마당발 직원이었던 아비나브가 소고기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당장 2킬로를 주문했다. 어디서 어떻게 유통되는 건지, 어떤 부위인지도 모르고 일단 소고기라는 것에 돈을 먼저 쥐어줬다.
다음 달 소고기라면서 시커먼 비닐봉지에 얼려진 돌덩이 같은 것을 받았다. 직원에게는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지만, 시커먼 봉투 속에 시뻘건 핏덩이를 도저히 소화 시킬 순 없어 바로 쓰레기통으로 보내졌다.
포기하려던 찰나, 지인이 전화번호 하나를 건네주면서 여기랑 연락하면 고기뿐 아니고 생선, 해산물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전화번호로 연락해 이번에는 사진도 받았다. 미국산 소고기라고 했고 사진으로는 제대로 포장되어 보였고, 심지어 잘 손질되어 포장된 고등어도 보였다.
"그래 바로 이거야! 없을 리가 없지? 당장 주말에 가봐야지! “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된 기분이었다.
근데 연락처를 준 지인은 그곳을 찾아갈 때 조심하라고 했다. 아메다바드에 무슬림이 모여 사는 지역에 있는데, 그곳은 사실 좀 위험하고 어두워서 잘 가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아, 무슬림이라서 육류를 취급하는 건가?"
주말이 되어, 윗집에 사는 다른 회사의 주재원의 배우자였던 모험심 충만한 누님과 함께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좋은 품질의 고기를 현지 조달 하겠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기사는 이리저리 1시간 정도 달리다 골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여기가 맞나 싶었다. 창밖으로는 사진으로만 보던 인도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이 지내는 모습들이 보였다. 더 이상 안으로 차가 들어갈 수 없어 근처에 차를 세우자 고기를 파는 곳에서 직원이 나왔다. 직원을 따라가는 동안 동물원 원숭이가 된거처럼 많은 사람이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한국사람을 본 적이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아마 이렇게 직접 고기 찾으러 온 한국인도 없을 거예요. ㅎㅎ" 두려움을 떨치려 같이 온 누님에게 농담을 건넸다.
사장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집체 만한 냉장고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가니 각종 돼지고기, 소고기, 해산물, 새우 등등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반팔로 냉동고 안에 들어가 있는데도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라 추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찾았다를 연신 외치며 산삼을 캐는 심정으로 몇 시간을 보냈다.
사실 한국에서 먹던 거와 비교해서 그런지 딱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크기도 너무 커서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이곳은 구자라트 내에 있는 호텔이나 행사가 있을 때 식당에 납품하는 일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무게도 소매용이 아닌 것이었다.
집에 가서 당장 해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쭈구미, 새우, 삼겹살, 등심 등 몇 개를 구매했다. 계산을 다하고 그곳을 나서는 순간 쭈구미를 세척해서 소분하는 작업현장을 보게 됐다. 그 위에 시커먼 한 게 있어서 자세히 보았더니 파리떼였다. 손에 들린 쭈구미도 이렇게 만들어졌나 생각이 드니 입맛이 없어졌다.
힘들게 다녀오니 되려 고기에 대한 생각이 없어졌다. 이렇게까지 해서 꼭 먹어야 하나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온 누님께 위로 섞인 말을 건넸다.
"누님, 역시 소고기는 한국에서 먹어야 맛있잖아요?"
이후 인도 채식 식당을 많이 다니면서 채식도 이렇게 맛있고 든든할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 일식집도 오픈하여 반가운 마음에 찾아가니 채식으로만 만든 초밥, 라면, 딤섬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회가 없이도 일식이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몇 명이나 알까?
아마 한국에 베지테리언이 있다면 이곳에 오길 추천한다. 스타벅스에 와도 베지테리언 메뉴가 더 많은 곳이고, 버거킹, 맥도날드에도 채식 메뉴가 즐비하다. 수많은 채식 메뉴에 신선하고 값싼 채소는 구자라트를 베지테리언 천국으로 만들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