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환우와 보호자라면 '유방암 이야기'(일명 '유이')라는 네이버 카페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14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전체 게시글이 42만 개가 넘는 유명한 카페로 유방암에 대한 정보 교류의 장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나도 진단을 받고 몇 달을 죽순이처럼 이 카페에서 살았다. 같은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났다. 그러나 유이 카페에 오래 있다 보면 전이와 재발의 글도 흔치 않게 접하게 되었다. 분명 항암 치료도 하고, 본원에서 시키는 대로 치료를 잘 받았는데 왜 전이가 되고 재발이 되는 것일까? 그런 글을 볼 때마다 우울해지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6개월의 기적'이라는 카페를 만나게 되었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나누고, 좋은 생활습관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새롭게 개설된 네이버 카페였다. 암 환자들은 6개월마다 본원에서 검진을 받고 또 다음 6개월을 힘차게 나아가므로 '6개월의 기적'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 싶었다. 카페에는 날마다 긍정 주문이 새롭게 올라오고 맨발 걷기를 하는 사진, 건강한 식단과 좋은 정보가 공유되었다. 무엇보다 파릇파릇한 산행 사진을 볼 때면 저절로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모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나는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를 한다는 핑계로 그동안 열심히 활동을 하진 못했지만 이 카페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극이 되었다. 앞으로 정예 멤버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활동해야겠다!
내가 만난 또 다른 환우 모임은 40대 이상 호르몬 양성 유방암 환우들의 단톡방인 '홀모니 40 핑크 아미 힐링 룸'이다. 2020년 9월에 개설되었고 현재 200여 명의 핑크 아미들이 활동하고 있는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이다. 나는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의 눈팅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 언니들이 정말 대단하다. sns에서 시작된 모임이지만 각자의 얼굴을 캐릭터화하여 프로필 사진으로 공개하는 것이 이색적이다. 진짜 사진이 아니니 부담스럽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묘한 친근감이 든다. 실제로 오프라인으로 번개도 자주 하고, 진료가 겹치는 날 병원에서 모임을 갖기도 한다. 서로의 치료 스케줄을 다 알고 있고, 일상을 공유하며 무엇보다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매일 낮 12시가 기도의 시간인데 각자 기도 제목을 공지사항에 띄워 공유하고 함께 기도한다. 종교 방이 아니므로 특정 종교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하느님, 하나님, 부처님.. 그 외의 자신이 믿고 있는 신께 모두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수술이 있거나 항암 치료가 있는 분을 위해 특별히 기도가 추가되기도 한다. 치료가 끝난 분에게 고생했다는 의미로 기프티콘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앞다투어 선착순 선물이 쏟아지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 방의 채팅 속도는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까워서 소위 말하는 '벽 타기'를 하기도 힘들 지경인데 이 많은 내용들을 파악하고 활동하는 언니들을 보며 난 항상 감탄한다. 특히 방을 개설한 방장 언니는 젊은 유방암 환우들을 위한 정책기관인 사단법인 '쉼표'에 소속되어 있었다. 얼마 전 대통령 후보와의 정책 간담회가 부산에서 열렸는데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걸 보고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다. 방장 언니는 젊은 유방암 환우가 겪는 육아 문제, 취업 단절, 경제적 부담, 심리적 어려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정책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리하여 간담회에 참여했다. 간담회는 단톡방을 통해 생중계되었고 그걸 보는 내 가슴도 두근두근했다.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누군가가 있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암은 한 개인의 질병이지만 그 개인이 여럿 모이면 집단이 되고, 더 이상 개인에 국한된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소통하지 않으면 암도 개개인의 아픔으로 끝나겠지만 소통하고 연대하면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영역으로 그 범주가 확장되는 것이다.
비슷한 성격의 단톡방으로 '수용성 사는 유이님들'이라는 단톡방이 있다. 수원, 용인, 성남에 사는 유이 카페 회원들의 모임으로 지역 특성상 같은 병원의 환우들이 많다. 그래서 병원이나 교수진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하기 좋고, 근처이다 보니 함께 모여 훌라 댄스를 배운다거나 직접 만나 물건을 교류하기도 한다. 핑크 아미 힐링 룸의 방장 언니가 개설한 방으로 상당수 인원이 핑크 아미 힐링 룸과 겹쳐서 활동 중이기도 하다.
두 단톡방 모두 헬스 어플을 이용하여 함께 달리는 챌린지를 종종 하곤 하는데 다른 사람의 걸음수를 볼 수 있어 걷기 운동을 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실시간 걸음수를 반영하여 순위를 매기기 때문에 경쟁도 되고, 혼자 걷지만 같이 걷고 있는 듯 의지가 된다. 나는 모임에서 거의 햇병아리 수준이라 꼴찌를 하기 일쑤지만 그래도 이 모임 덕분에 조금씩 걷기 시작하였다.
암의 종류와 상관없이 암을 함께 이겨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오뚜기 방'이라는 단톡방도 있다. 이곳의 특징은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방에서도 나는 눈팅족에 가까운데 잊어버릴 때쯤 방장님이 나를 소환하여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곤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카톡 할 새가 없어 대답도 잘 못함에도 불구하고 한 번씩 안부를 물어주는 방장님 덕분에 힘이 날 때가 있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모임은 '유방암에 걸린 교사맘들의 모임'단톡방이다. 교사맘 카페에서 파생되어 유방암에 걸린 선생님들이 모여 복무와 유방암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규모 단톡방이다. 같은 직종에 있기에 공감대가 잘 형성되고, 내겐 존재만으로도 힘이 나는 단톡방이다.
이 모임들의 공통점은 모두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일상을 공유하며 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서로의 본명을 모르고, 서로의 얼굴을 모르더라도 누구보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들의 모임. 혹시 암을 진단받고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면,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런 카페나 모임에 가입하길 바란다. 방에 입장하는 순간 더 이상 암 환자라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활기찬 세계가 펼쳐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photo by Angiola Harry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