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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Dec 10. 2021

내가 조금 화내도 엄마는 꾹 참고 좋게 말했으면 좋겠어

 하루 중 아이의 속마음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일까? 아이와 가장 친밀한 교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 시간과 잠들기 직전의 밤 시간이라고 한다. 수면 시간 전후가 잠재의식과 가장 가까운 무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때 아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려고 특히 노력한다. 사랑한다는 표현도 이 시간에 아낌없이 퍼붓는다. 워킹맘인 시절에는 이 금쪽같은 시간을 못 누렸기 때문에 휴직 중인 지금 마치 그 시간을 만회라도 하듯이 더욱 열심히.


 오늘도 아이가 눈을 뜨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랑의 언어를 마구 마구 쏟아냈다. 자고 있다가도 아이가 일어나면 반사적으로 화들짝 깬다. 그리고 마치 안 자고 있었던 사람 마냥 소란스럽게 아이를 반긴다.


M: 우리 예쁜 소은이 굿모닝. 소은이 잘 잤어?

S: 굿모닝, 엄마!

M: 엄마, 아빠는 소은이를 정말 정말 사랑해. 우리 소은이는 어쩜 이렇게 예쁠까? 너무너무 사랑스러워.

S: 그렇지? 난 피부도 보드랍고, 점도 없어.


 내 칭찬에 아이는 으쓱으쓱 하며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다.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만연하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킥킥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칭찬을 계속 이어나간다.


M: 우리 소은이는 귀엽고 예쁘고 착해.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엄마, 아빠의 보물이야.

S: 그런데 엄마, 아빠는 왜 맨날 맨날 나한테 화내?


나는 아이의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물었다.


M: 엄마, 아빠가 소은이한테 맨날 화내?

S: 응, 맨날 화내잖아.

M: 그랬어? 하지만 엄마, 아빠가 화를 낼 때도 소은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

S: 그래도 안 화냈으면 좋겠어.

M: 그렇구나. 알겠어. 엄마도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할게. 근데 소은이도 엄마 아빠한테 맨날 화내잖아. 안 그랬으면 좋겠어.

S: 응, 내가 조금 화내도 엄마는 꾹 참고 좋게 말했으면 좋겠어.


 결국 자기는 화를 내도 엄마는 참고 좋게 말하라는 것인가. 나는 은근슬쩍 아이가 얄미웠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아이가 한편으론 기특해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M: 그런데 엄마가 화내면 소은이 기분이 어때?

S: 엄마가 화내면 무서워.

M: 정말? 그렇구나. 그럼 아빠가 화내면?

S: 아빠는 화내도 안 무서워.


 아이는 마지막 말을 하며 배시시 웃었다. 아이의 이런 속마음은 처음 알았다. 어릴 때는 우리가 화를 내든 말든 아랑곳도 하지 않아서 그 모습에 더 화가 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화내는 게 아이에게 무섭게 느껴지긴 하는구 싶었다. 아빠가 화내는 건 안 무섭다고 하는 걸 보니, 내가 더 아이에게 화를 크게 내나 보다.


 부모가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오은영 박사님은 아이를 훈육할 때도 화를 내지 않되 단호하게 훈육하라고 하셨지만 현실은 어디 그게 쉽나. 결국 화가 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차가운 말투를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예전에는 내가 화를 내면 소은이는 더 크게 화를 냈다. 내가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는 날엔 소은이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한참 훈육이 힘든 시절이었다. 암 진단을 받을 때가 줄곧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소은이가 더 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아픈 뒤로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인지 내가 화를 내면 자기가 바로 잘못했다고 말하고 내 눈치를 살핀다. 은연중에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나를 배려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이유라면 마음이 좀 애틋하지만 무엇이 소은이를 변하게 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쩌면 그 모든 상황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겠지. 이유가 어쨌든 이제 타협이 되고, 엄마를 무서워한다는 게 의미 있는 변화로 느껴진다. 물론 엄마가 맨날 맨날 화낸다는 아이의 말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정말 내가 매일 아이에게 화를 냈다면 그것 또한 반성할 일이고. 그런 게 아닌데도 아이가 그렇게 여긴다면 그것 또한 나의 불찰이다.


 입으로만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이렇게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앞으로 소은이가 조금 화를 내도, 엄마인 나는 꾹 참고 좋게 말해보기로 다짐해본다.


photo by mathildelangev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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