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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가를 변기에 하지 않아요

예민한 아이의 배변훈련에 대하여

by 강진경

예민한 아이의 배변훈련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배변훈련을 하는 시기가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경우 18개월이 되면 기저귀를 뗄 수 있고, 보통은 두 돌 무렵이 배변훈련의 시기라고 알려져 있다. 18개월에 아이는 자신의 배설 욕구를 인지하고, 생후 24개월쯤에는 소변이 마렵다는 의사 표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발달 속도와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의 아이는 만3세 이전에 대소변을 변기에 할 수 있게 된다. 36개월 이후에도 기저귀를 떼지 못하면 아이의 발달 상 문제가 있거나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전문가와 상의하라는 글을 종종 보게 된다.


소은이는 태어나고 34개월 무렵 되었을 때 배변훈련을 시작했다. 배변훈련을 하는 시기는 아이마다 다 다르지만 보통은 어린이집에서 변기에 소변을 보기 시작하면서 집에서도 동시에 배변훈련을 시작한다. 워낙 예민한 아이이다 보니 굳이 이런 것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고, 본인도 기저귀를 빨리 떼고 싶어 하지 않아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두 돌부터 기저귀를 떼는 친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언젠가 뗄 때가 되면 떼겠지.'하고 느긋하게 생각했다. 아이가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데 배변 훈련을 시작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말도 들었기 때문에 세 돌 전에만 시도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배변훈련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훈련을 시작한 지 3주 만에 낮기저귀를 떼고 두 달 뒤에는 밤기저귀까지 완전히 떼는 것에 성공했다. 밤에 이불에 쉬를 하는 경우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이렇게 보면 여느 아이들과 비슷하게 배변훈련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대변이었다. 기저귀를 떼는 순서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으나 보통은 소변, 대변, 밤 소변의 순서로 기저귀를 뗀다. 밤 소변을 가린다는 것은 대뇌 하부신경계 발달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며 소은이는 발달 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대변을 가릴 수 있는 아이였다.


그러나 아이는 그 후로 오랫동안 변기에 응가를 하지 못했다. 기저귀는 이미 뗀 상태였기 때문에 팬티를 입은 상태로 응가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대변이 묻은 팬티를 손으로 빨면서 '몇 번 이러다 말겠지. 자기도 축축하게 똥이 묻은 팬티를 입는 것이 싫을 거야.'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때는 대변을 변기에 보는 일이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아이는 응가가 마려울 때마다 자기만의 구석진 자리로 가서 서서 대변을 보았다. 팬티가 젖든 말든, 바지가 젖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응가를 변기에 보게 하기 위해 젖은 상태를 그대로 두고 일부러 불쾌감을 느끼도록 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이상하게도 옷이 젖는 것을 신경쓰지 않았고, 부모의 마음만 타들어갔다. 팬티와 바지 사이로 흘러내린 소변으로 바닥이 엉망진창이 되자 이내 바닥에 수건을 깔고 대변을 보기 시작했다. 변기에 앉히려고 하면 죽을 힘을 다해 울면서 매달렸다. 제발 수건을 깔아달라고 엉엉 울면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면 차마 억지로 변기에 앉힐 수가 없었다.


설상 가상 아이는 변비에 걸린 날이 많았다. 서서는 힘을 주기가 힘든데 변기에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버팅기며, 2시간 동안 쉬한 바지를 입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기 일쑤였다. 응가를 한다고 오지도 못하게 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소리를 지르고 혼자 울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게 힘들었던 나날이 계속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변기에 앉아서 응가를 하게 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해 보았다. 소은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모양의 아기 변기를 여러 개 구입하고, 아기 변기 커버도 재질 별로 구입하여 설치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페티 변기, 자동차 변기, 호비 변기... 집에 변기가 넘쳐 났다. 아이는 변기에 앉아 놀기도 하고, 변기를 예쁘게 꾸미기도 하고, 변기를 좋아했다. 간혹 아이가 변기를 무서워하는 경우, 변기에서 물이 내려가는 것을 무서워 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런 가설도 성립하지 않았다. 그 가설이 성립하려면 쉬도 변기에 하지 말아야 하는데 소변은 아무렇지 않게 변기에 잘했기 때문이다.


그럼 변기가 문제가 아니라 대변을 앉아서 보는 것을 어려워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변기에 앉아서 대변을 봤을 때 특히 아팠다거나, 부정적인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막연히 앉는 자세를 두려워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따라서 변기에 앉는 것을 즐겁고 편안하게 여기도록 많은 방법을 시도했다. 변기에 앉아서 응가하는 책도 보여주고, 쉬를 변기에 했을 때 폭풍 칭찬도 하고, 선물도 주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변기에 앉아서 응가를 하면 보상을 주는 방법을 써보려해도 변기에 앉는 것 자체를 심하게 거부하니 방법이 없었다. 소은이는 응가가 마려우면 필사적으로 서서 응가를 하려 했다. 마침내 우리 부부는 변기에서 대변을 보게 하는 것을 포기하고 어느 순간 응가가 마렵다고 하면 다시 기저귀를 입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1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아이는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고 유치원 입학을 앞두게 되었다.


신기한 건 그 사이 특별한 상황에서 변기에 몇 번 응가를 한 적이 있었지만, 그런 성공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대변 습관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출을 했는데 배가 아파 식당에서 급히 대변을 보았거나, 변비가 심해 도저히 서서 응가가 나오지 않았을 때 관장약을 넣고 변기에서 응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응가를 할 때마다 기저귀를 찾았고 기저귀를 주지 않으면 대변을 참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결국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심리적인 어떤 이유로 아이는 서서 응가를 해야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대로 평생 서서 응가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배수의 진을 치기로 했다.


유치원 입학을 5일 남겨둔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이웃집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마침 그 집에 어린 동생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집에 있는 장난감이나 책을 정리하면서 이제 소은이는 언니가 되었으니 동생에게 선물로 주자고 권유했다. 소은이는 신나서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했고 나는 그 틈에 집에 있는 기저귀를 모두 챙겼다. 그리고 소은이 손으로 기저귀를 아기에게 전달하는 전달식을 치렀다. 그렇게 집에 있는 기저귀를 모두 없애고 돌아온 날, 소은이는 여느 때와 같이 응가가 마렵자 기저귀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안타깝지만 동생에게 기저귀를 모두 주어서 더 이상 우리 집에 기저귀가 없음을 설명했다. 아이는 울며 불며 그럼 팬티에다 응가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이에게 변기에서 해보자며 온갖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변비로 또 다시 응가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어서, 마사지도 하고 변비약도 먹고, 정말 갖은 노력 끝에 변기에 앉아서 대변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진심으로 기뻤다.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소은이를 끌어 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소은이는 응가를 변기에 성공한 기념으로 갖고 싶은 선물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이틀 뒤, 응가가 마렵자 그녀는 다시 기저귀를 찾았고, 나는 이 후로도 몇 번을 더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야말로 인내심과의 싸움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절대 화를 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소은이는 변기에 대변을 보는 것에 적응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변기에 앉는 것을 불안해하고, 변기에 앉으면 대변이 잘 나올까 걱정한다. 변기에 대변을 보기 시작한 지 이제 3주가 되었건만 아직도 적응기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일단 더 이상 응가할 때 기저귀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에 큰 의의를 둔다. 언젠가는 편안하게 변기에 응가할 날이 오겠지.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변비에 걸리지 않도록, 배변하는 일이 힘들고 괴로운 일이 되지 않도록 엄마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민한 아이에게 유독 대변 훈련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응가를 변기에 하기까지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원인이 대체 뭐였을까? 아이의 대변 훈련에 관한 내용을 찾다 2020년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대변을 참는 아이'편이 방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기 나온 금쪽이의 모습이 흡사 소은이와 닮아 있었다. 울고불고 비명을 지르고 땀에 젖은 금쪽이의 모습에서 소은이를 보는 것 같았다.


오은영 박사님의 진단에 따르면 이런 아이는 단계 변화에 저항이 있는 아이라고 한다. 유아가 기저귀를 차던 단계에서 벗은 단계로 갈 때의 낯설어진 환경에 저항하는 것인데 기저귀가 없어짐으로 생긴 기저귀의 헐렁함이 불편했던 것이다. 즉 촉각이 예민한 아이라는 것! 이런 성향의 아이는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신뢰를 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방송에서 예를 든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 킥보드를 타는 것 등이 모두 소은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비로소 잘하는 아이. 이런 아이에게는 주변에서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자신이 느끼기에 안전해야 한다고 한다.


문득 어릴 때 소은이를 미용실에 한번 데리고 갔다가 아이가 기절 수준으로 울어 제낀 경험이 떠올랐다. 가위를 들이대자 어찌나 경악을 하며 우는지 미용실이 있는 쇼핑몰이 떠나갈 지경이었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나와 쇼핑몰을 한 시간 넘게 돌면서 아이를 안고 달랬다. 그래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냥 우는 수준이 아니라 죽기 살기로 울었던 그 때의 일이 뇌리에 박혀 그 후로 다시 미용실의 근처도 가지 않았다.


문제는 머리를 자르는 것이야 안 자르면 그만인 선택의 문제이지만 대변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소은이가 변기에 앉지 못한 것은 결국 변기에 앉는 행위가 안전하다는 확신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뭔가 퍼즐이 맞쳐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팬티나 기저귀 없이 응가를 할 때의 헐렁함과 허전함이 아이에게 불안을 유발했다니,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하필 변기에 앉았을 때 응가를 한 경험들이 모두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아이는 변기에 앉는 걸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변비에 걸렸을 때 변기에서 응가를 성공한 경험이 아이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 셈이었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서서는 안나오던 응가가 앉아서는 나왔네! 이것 봐. 앉으니까 잘 나오지?"하는 마음이었는데 아이의 입장에서는 "서서 하면 안 아픈데 앉아서 하니까 똥꼬가 아프잖아. 이것 봐. 역시 앉아서 하면 안되겠어"라고 다음에는 절대 변기에 앉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랄까.


변기에 앉는 것이 뭐가 그리 무서울까? 어른의 시선으로는 결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비로소 아이의 마음이 보인다. 촉각이 예민한 아이는 무언가 닿았을 때 예민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늘 있던 것이 사라져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이러한 아이의 특징을 미리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아이를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했을텐데.


한참 소은이의 배변 문제로 힘들 때 소아과에서 이 문제를 상담한 적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은 아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아이가 발달적으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어려움으로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라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른이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시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경우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이른 시기에 배변훈련을 시도했는데 문제가 생긴 경우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금쪽이와 소은이의 경우는 그런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그 두려움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양육자가 옆에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처방을 소개하고 이 장을 마무리한다.


<대변 참는 아이를 위한 처방>
첫째. 재래식 화장실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게 하기
둘째. 하루에 두 번 따뜻한 물에 좌욕하기
셋째. 치료 성분이 있는 연고를 항문에 꾸준히 발라주기.

이 내용을 보면 결국 아이가 대변을 참는 이유는 변비로 인해 대변 보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변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는 아이라면 일단 대변 보는 일이 힘들지 않게 변비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임을 알 수 있다. 이 외에 아이마다 변기가 무섭다거나, 기저귀를 더 편안하게 여기는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를 기다려준다는 명목으로 내버려두기 보다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함을 부모가 알아차리는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을 하는 분이 계시다면 아이와 대화를 통해 데드라인을 정해볼 것을 추천한다. 유치원에 입학하는 것은 아이의 인생에도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므로 이런 기회를 활용해보는 것도 좋다. 아이에게도 유치원의 입학은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서 기저귀는 차지 않는다고 알아듣게 설득하고, 약속한 날짜가 되면 기저귀를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버리자. 물론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혹시 실패하더라도 엄마가 너무 스트레스 받거나 다른 아이와 자신의 아이를 비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배변훈련이 특정 시기에 거쳐야 하는 과업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아이와의 관계를 해치는 원인이 되면 아이의 정서 발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한 꿀팁>

1) 아이가 변비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써주세요.

식습관 개선, 물을 많이 먹는 습관 등으로 소아변비를 예방해주세요. 변비에 걸려 대변 보는 것이 고통스러우면 아이의 배변 훈련이 더 힘들어집니다.


2) 일정 시기가 지나면 기저귀를 단호하게 없애주세요.

아이와 약속을 하고 약속된 날짜가 되면 기저귀를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주세요. 단유를 할 때 독하게 모유를 끊는 것처럼 배변훈련에도 그런 단호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엄마를 위한 꿀팁>

1) 배변훈련이 안된다고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배련훈련이 엄마의 마음과 달리 안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마세요. 그 마음이 아이에게도 전달되어 아이에게 불안감과 수치심을 줄 수 있어요. 스트레스가 엄마에게도 안 좋은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고요.


2) 다른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지 마세요.

주변을 둘러보면 너무 쉽게 기저귀를 떼는 아이도 있어요. 엄마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대소변을 가리고 심지어 어른 변기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용변을 보는 아이들이 있지요. 그러나 그런 아이들과 내 아이를 비교하면 엄마만 불행해집니다.



Photo by charlesdeluvi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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