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이가 태어나고 100일이 되자, 우리에겐 100일의 기적이 아니라 100일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바로 아기가 분유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 아이는 젖병만 갖다 대면 울면서 젖병을 밀쳐냈다. 나는 젖양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정말 당황스러웠다. 모유는 생각처럼 잘 나오지 않는 데다 그마저도 오른쪽 가슴만 나오고 있는 상황. 아기에게는 모유나 분유가 생명줄인데 모유는 부족하고 분유는 먹지 않고...... 그야말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배가 고파 더 예민해진 아기는 앙칼지게 울어대고 밤낮으로 잠도 푹 자지 못했다. 나오지 않는 빈 젖을 쭉쭉 빨아대는 아이를 보며 어떻게든 젖양을 늘리려고 애를 썼다. 모유 수유에 좋은 음식을 찾아 먹고, 모유를 촉진하는 차도 종류별로 사다 먹었다. 그러나 모유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모유를 끊으라고 했다. 모유를 아예 끊으면 배고픈 아기는 결국 분유를 먹을 수밖에 없고, 분유에 적응하면 포만감을 느껴 잠도 푹 잘 수 있다고 했다. 이때 나도 모유를 끊고 분유를 먹는 아이로 키웠다면 육아가 좀 더 쉬웠을까.
모두가 모유를 끊으라고 했지만 단 한 사람, 모유수유 예찬론자였던 친정언니는 모유를 계속 먹일 것을 조언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와서 왼쪽 가슴을 빨지 못하는 아이를 훈련시켜가며 모유 수유를 이어나가게 도와주었다. 조카를 오랫동안 모유 수유했던 언니는 모유가 아이와의 애착 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모유를 먹은 아이가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보다 튼튼하다고 믿었다. 물론 그 말은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모유를 먹이며 내가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컸다.
일단 모유의 양이 많지 않았기에 소은이는 늘 충분히 먹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잠을 깊게 자지 못했다. 그 시기 흔히 말하는 수유 텀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모유를 먹여야 했고, 어떤 날은 정말 온종일 모유 수유만 하다 하루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유 텀, 낮잠 텀, 모든 것이 엉망진창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데 일찍부터 모유를 끊고 분유를 먹이는 조리원 동기들을 만나면 그 집의 아이들은 소은이와 너무 달랐다. 분유를 먹는 아이들은 수유 텀도 규칙적이었고, 그 덕분인지 낮잠도 잘 잤다. 배가 부른 아이는 유모차에서도 잘 놀고, 잘 자고, 때론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순둥순둥 한 아이도 있었다.
그와 달리 소은이는 엄마 껌딱지에 고성능 등 센서를 달고 있어서 잠시 유모차에 앉아 있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아기띠가 없으면 외출이 불가능했고, 아이는 늘 나와 붙어 있었다. 내려놓으려고 하면 잠시도 참지 못하고 자지러지게 울었다. 오죽하면 화장실에 가서도 아기띠를 하고 아이를 안은 채로 볼 일을 봐야 했다.
한 번은 백화점에서 조리원 동기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모두 유모차에 아이를 잠깐 두고 식사를 했지만 나는 아이를 안고 밥은커녕 잠시도 앉아있을 수 없었다. 아이는 계속 보채고 울면서 아기띠를 하고 서 있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끊임없이 걸을 것을 요구했다. 백화점을 하염없이 돌면서 '이게 대체 뭐 하는 걸까. 왜 유독 우리 아이만 이렇게 까탈스러운 걸까.' 자괴감에 빠졌다. 결국 몇십 바퀴를 돌고 식당으로 돌아와 다 불어 터진 파스타와 식어버린 피자 한 조각을 입에 구겨 넣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 당시에는 아이가 왜 그렇게 우는 건지도 몰랐고, 아이가 유난히 예민한 기질인지도 몰랐다. 나중에서야 분유를 먹는 아이들보다 모유 먹는 아이들이 엄마 껌딱지가 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아이와 이런 애착을 바란 것이 아닌데 과도하게 형성된 애착은 시종일관 나를 힘들게 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설상가상 누워서 모유수유를 하면서 젖을 물리고 자는 수면 연관이 생겨버렸다. 당장은 몸이 편한 것 같았지만 이것이 밤중 수유를 끊지 못하는 큰 요인이 되었다. 결국 모유수유를 하는 내내 아이는 통잠이란 것을 자 본 적이 없었다.
흔히 모유수유는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모유수유로 인해 육아가 몇 배는 더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단유 후 소은이는 거짓말처럼 잘 자기 시작했고 마침내 아침까지 통잠을 자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밤새 평균 10번씩은 깨던 아이가 깨지 않고 자다니! 우리 부부에게 있어 육아는 단유 전과 단유 후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왜 13개월이 넘는 시간을 모유를 끊지 못했던 걸까? 친정 언니의 영향도 있지만 사실 나도 모유 수유에 대한 환상과 로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유수유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꼭 모유를 먹여야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닌데. 임신 기간 동안 엄마들은 알게 모르게 아이를 위해 모유수유할 것을 권유받고 아이를 낳으면 꼭 모유수유를 해야지 다짐하게 된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출산 직후 갑자기 혈압이 올라 혈압약을 복용하게 되면서 초유를 마음껏 먹이지 못하게 되었다. 초유를 못 먹인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 후 모유수유에 더 집착하게 되었고, 아이가 분유를 거부하면서 반 강제적으로 13개월 완모(분유 없이 모유만 먹이는 것) 엄마가 되었다.
물론 모유수유가 엄마와 아이가 교감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고, 엄마로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가 내 품에 안겨 모유를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순간만큼은 육아로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다 치유되는 듯했으니까. 아이가 젖을 먹다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실제로 막상 단유를 했을 때, 상실감과 애틋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었다. 힘들게 단유에 성공하고 3일 후 저녁. 나와 남편은 마주 보고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남편도 나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다시는 젖 먹는 예쁜 천사의 얼굴을 볼 수 없다니... 이제 살면서 다시 못 올 그 순간이 얼마나 그리울까. 단유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게 되는 소중한 것과의 이별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에게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을 주었다. 아이가 한 단계 성장해나가는 것은 그만큼 부모에게서 한 발 더 떨어진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아 대견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러나 이렇게 모유 수유가 주는 감동과는 별개로 누군가 내게 모유수유에 대해 물어본다면 나는 선뜻 추천하기가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모유수유에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유수유의 좋은 점이야 셀 수 없이 많고, 내가 굳이 적지 않아도 모유가 아이에게 좋은 것은 다 알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모유의 양이 얼마 없는 경우, 모유 수유가 육아를 힘들게 한다는 판단이 든다면 마냥 모유 수유가 좋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모유를 먹이면서도 소은이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은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모유를 먹는다고 해서 전부 '엄마 껌딱지'가 되고 통잠을 못 자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처럼 직수(젖을 유축하지 않고 직접 아이에게 물려 수유하는 것)의 양이 적을 경우, 그런데도 아이가 젖병을 거부하여 직수밖에 하지 못하는 경우 아이가 통잠을 자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유 수유로 얻은 장점이 더 크다고 생각이 들면 모유 수유를 해도 괜찮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도 단유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분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모유수유 말고도 엄마가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많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이를 위한 꿀팁>
1) 모유를 먹는 아이가 통잠을 자지 못한다면 모유의 양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세요.
유축해서 먹이지 않고 직접 아이에게 젖을 물려 먹이면 사실 아이가 젖을 얼마나 먹는지 그 양을 가늠하기가 어려워요. 보통은 수유 시간을 15~30분으로 양쪽 젖을 교대로 수유하라고 하지만 모유의 양이 부족할 경우 아이가 배불리 먹지 못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배가 고파서 자다가도 계속 잠을 깨게 되고 통잠을 자기 어렵게 됩니다.
2) 모유를 먹이더라도 유축해서 젖병으로 먹이는 것을 추천합니다.
유두 혼동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엄마 젖을 빨던 아기가 젖병을 사용하면 엄마 젖 빨기를 거부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엄마 젖을 빠는 것보다 우유병을 빠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엄마 젖에 익숙해져서 나중에 우유병 젖꼭지를 빨지 않으려는 경우에도 유두 혼동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요. 소은이는 양쪽을 모두 경험하다가 결국 엄마 젖을 선택한 경우인데 유축해서 젖병으로 먹이면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처음부터 '나는 모유만 먹일 거야!'라는 분은 상관없겠지만 모유와 분유를 혼합해서 먹이실 거라면 모유도 젖병으로 먹이는 것을 추천합니다.
<엄마를 위한 꿀팁>
1) 모유 수유가 힘들다면 포기해도 괜찮아요.
모유 수유를 한다고 해서 더 좋은 엄마도 아니고, 분유를 먹인다고 해서 덜 좋은 엄마도 아니에요. 모두 자신의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최고의 엄마인데 모유 수유가 그것을 가늠하는 척도는 결코 아니니까요. 그러니 엄마들이 좀 더 모유 수유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모유 수유를 하는 것이 아이나 엄마에게나 힘든 상황이라면 굳이 모유 수유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2) 단유 할 때는 과감하게, '곰돌이 단유법'을 추천합니다.
아이가 돌 전후라면 '젖 집착'이 생길 수 있어 단유가 더 힘들어요. 이럴 땐 '곰돌이 단유법'을 추천합니다. 곰돌이 단유법은 배고픈 곰돌이에게 엄마 쭈쭈를 주어서 이제 더 이상 쭈쭈가 안 나온다고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고 모유를 끊어나가는 스토리텔링 단유법이에요. 저는 집에 있는 곰돌이 인형을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정하고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었어요. A4용지에 귀여운 곰돌이 얼굴을 그리고 곰돌이 밑에는 일곱 개의 네모 칸을 그립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이제 배고픈 곰돌이에게 엄마 쭈쭈를 줄 거야. 소은이는 이제 우유를 먹을 수 있으니 배고픈 곰돌이에게 엄마 쭈쭈 주자!’라고 말하며 네모 칸에 엑스표를 해나 가요. 그리고 드디어 일주일이 지나면 놀랍게도 아이는 더 이상 젖을 찾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