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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넘치는 아이

세 돌 이후부터 학령 전기까지의 수면 문제

by 강진경
세 돌 이후부터 학령 전기까지의 수면

아이가 잠을 안자려고 할 때는 잠들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 부모가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이다. 부모는 아이가 못자는 건지, 스스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어린 아이일수록 배가 고프거나, 방 안 공기가 맞지 않거나, 침실의 조명과 소음에 반응해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는 그날 아이가 보낸 하루가 아쉽거나 스스로 충분히 놀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크다. 쉽게 말하면 에너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자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두부 자르듯이 어떠한 이유로 아이가 잠못드는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소은이의 경우 어릴 때는 특정 이유로 '못'잤을 가능성이 크고, 지금은 일부러 '안'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가 스스로 안자는 경우는 대개 더 놀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억지로 잠을 재우려고도 했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방법. 집 안 전체의 불을 꺼버리고, 잠 잘 분위기를 만들고, 부모가 먼저 자는 척도 해보고 안해 본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소은이에게는 소용없었다. 아이는 자신의 에너지를 기어이 다 소진해야만 잠이 들었다. 억지로 불을 끄고 문을 닫으면 역효과가 일어났다. "안 잘거야!!!" 하고 소리를 지르고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우리집 안방에서 복도 끝 방까지 어두운 집을 울면서 뛰어 다니거나, 어떤 날은 그렇게 혼자 자기 방(놀이방)에 가서 놀잇감을 찾아 놀고 있기도 했다.

(물론 5세가 된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한참 힘들었던 3~4세 때 특히 심했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육아서적에서 말하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수면 의식을 하고, 리듬을 유지하면, 아이가 마법처럼 잔다는 그것이 애당초 가능한 일이긴 한 것일까. 나도 남들처럼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보았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는데 과연 이 방법을 아이의 개별적인 특성에 상관없이 모두 적용하는 게 맞는 이야기일까?


하루 정도 남들과 공동육아를 하다보면 같은 시간에 같은 활동을 한 다른 아이와 내 아이가 얼마나 다른지 체감할 수 있다. 체력과 에너지, 정신력, 집중력 등이 아이마다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온 종일 같이 놀고 다른 아이들이 쓰러질 듯 잠이 들어도 소은이는 아무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몸은 피곤해도 정신으로 버티며 모든 활동을 마칠 때까지 오롯이 깨어 있는 그녀. 신생아 시절부터 5세인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놀다가 스르르 잠이 든 적이 없는 아이와 피곤하면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다가도 졸고 있다는 아이가 과연 같을 수 있을까?


아이가 33개월쯤 되었을 때, 상담 센터를 다니며 이 문제를 상담 받은 적이 있다. 아이가 자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이 부모도 아이도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 상담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이에게 충분한 수면 시간을 보장하는 것은 부모가 해주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이에요. 아이를 일찍 재워야 올바른 생활 습관이 잡히고, 규칙적인 리듬이 생기죠. 부모가 단호하게 그 역할을 해주어야지, 아이가 안 자고 싶어한다고, 아이의 뜻을 다 받아주면 아이를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죠."


나는 이 말에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늦게까지 안 자고 있는 것이 정말 부모의 탓일까? 그 때 상담 선생님은 심지어 그런 부모는 아이를 '학대'를 하는 것이라 표현했고, 그 말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어쩌면 그토록 자기 싫어서 울부짖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는 것이야말로 학대 아닌가? 갖은 노력에도 타고난 아이의 성향과 기질로 에너지가 넘쳐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부모가 무슨 수로 재울 수 있단 말인가? 마치 부모가 아이에게 휘둘려서, 아이의 생활습관을 잘 들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다는 논리는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심리 상담을 하는 상담 선생님마저도 이렇게 일반론적인 이야기만 하는데 하물며 평범한 아이만 키워본 일반인의 시선은 어떨까.


예민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일을 종종 겪는다. 잠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아이의 성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를 쉽게 만나게 된다.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상처 받는 순간이다. 때로는 이 모든 문제가 자신의 탓인것만 같아 부모들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전엔 나도 그랬다.

그러나 아이가 늦게까지 안 자는 것은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아이의 에너지가 남들보다 많고, 잠이 다른 아이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을 뿐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 모든 아이를 재우는 방법이 같지 않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이가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서,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했다. 그 날 이후 아이를 일찍 재우겠다는 마음을 비웠다. 어떻게 해도 자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려고 애쓰는 동안 부모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었다.


대신 아이가 실컷 놀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놀아주었다. 소은이는 저녁 9시에 재우기 시작하나, 11시에 재우기 시작하나 똑같이 기본 12시가 넘어야 잠을 잤다. 몇 시에 들어가도 취침 시간은 12시를 넘겼다. 저녁 9시에 재우러 들어가면 3시간을 아이와 실랑이해야 했다. 그러나 아이와 2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저녁 11시에 재우기 시작하면 1시간만에(소은이를 재우는 데는 기본이 1시간 소요된다.) 잠이 들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아이가 자는 시간은 똑같지만 그렇게 하니 그나마 나았다. 그렇게 아이가 만족할 때까지 놀고 나면 비로소 아이는 누워서 책을 읽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그 당시 나도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는 그것이 불만이었을지 모른다. 아이에게는 부모와 진하게 소통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절대 잠을 자려 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부모와 함께 충분히 교감하고 놀만큼 놀아야 그 날의 하루가 끝났다.


문제는 부모였다. 아이의 체력과 에너지를 부모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맞벌이 부모가 집에 와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나면 아이가 잠을 자야 부모에게도 휴식 시간이 생기는 것인데 우리 집의 육아 퇴근 시간은 늘 자정을 넘기다 보니, 우리 부부는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다보니 상대적으로 부모의 삶의 질은 한없이 떨어졌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아이를 밤 9시에 재우고, 남편과 야식을 시켜먹고 영화를 보는 시간들, 엄마들 사이에서 말하는 소위 '육퇴(육아퇴근)'라는 단어가 그렇게 부러웠다. 나에게 사실상 육퇴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잠과의 전쟁은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부부의 희망은 아이가 5세가 되어 유치원에 입학하는 길 뿐이었다. 일단 유치원에 가면 어린이집과 달리 낮잠 시간이 없어지고, 활동량은 어린이집보다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지하게 아이를 유아스포츠단에 입단시키려 고민했다. 그런데 어디에서 유아스포츠단에 가면 체력이 더 좋아져서, 더 잠을 자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일찍 재우려고 스포츠단에 보냈는데 아이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 때 우리 부모의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 같았다. 결국 입학금을 포기하고 우리 부부의 기준에서 더 많은 것을 충족하는 다른 유치원에 아이를 입학시켰다.


아이가 유치원에 간 지 3주가 지나고, 우리 부부에게도 봄날이 찾아왔다. 드디어 아이의 잠 시간이 당겨진 것이다. 기대했던 것처럼 유치원은 활동량이 아주 많았고, 그동안 어떤 일에도 좀처럼 피곤함을 못 느끼던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 에너지 발산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그렇다고 소은이가 집에 오는 길에 쓰러져 잔다거나, 눕자마자 5분 만에 자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재우는데 1시간은 걸리지만 최종 취침 시간이 2시간 정도 당겨졌다. 이제는 9시에 들어가 10시에 자는 정도. 물론 11시까지 버티는 날도 있지만 확연히 빈도가 줄었다. 나는 정말로 기뻤다. 드디어 우리 부부에게도 육퇴 후 휴식시간이 생기는 것인가!


여기까지 읽으면 감이 올 것이다. 잠자는 것을 거부하는 아이, 일부러 잠을 안자는 아이에게 가장 좋은 해결법은 바로 낮 시간에 충분히 에너지를 발산하도록 하는 것이다. 에너지가 많은 아이들은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고, 바깥에서 뛰어놀고,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시켜야 한다. 조심할 것은 예민한 아이일수록 지나치게 흥분하고, 몸을 많이 쓸 경우 오히려 더 각성이 되어서 잠을 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양육자는 아이를 잘 관찰하다가 적정한 시기에 분위기를 정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신나게 놀다가 제 풀에 지쳐 자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소은이와 같은 성향의 아이들은 적정한 타이밍에 잠을 자도록 꼭 유도를 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그럼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갈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해야 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다섯살 이전의 연령대여도 낮 시간에 최대한 활동을 많이 하고, 가능하면 낮잠을 재우지 않는다던가, 아침 일찍 깨우는 방법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신체를 많이 움직여서 육체를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여건이 안될 경우 두뇌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 아이가 집중할 수 있는 블록 놀이나 퍼즐 맞추기, 가베나 은물을 활용한 놀이를 한다던지 클레이로 뭔가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두뇌 활동이 활발하거나 신체 활동이 높게 타고난 아이들은 그에 맞는 자극이 필요하고, 그 자극을 처리하는 데 에너지를 다 써야만 결국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까다롭고 예민한 내 아이, 어떻게 키울까?>의 저자 '일레인 N.아론'은 민감성이 타고난 기질임을 처음 발견하고, 민감성을 주제로 한 다수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전체 인구의 15~20%가 타인보다 민감하게 태어나며 민감한 오감과 풍부한 감수성, 활발한 우뇌 활동이 민감성의 특징임을 밝혀냈다. 아론 박사는 이런 사람을 HSP(Highly Sensitive Person,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라고 칭했다. HSP중에는 유독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HSP는 잠의 양 자체가 많지 않고, 쉽게 잠들지 못하고, 한 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고, 꿈을 굉징히 많이 꾼다.


아론 박사가 제작한 미취학 아동용 HSP테스트를 해본 결과 소은이는 23개의 문항 중 22개의 문항이 '그렇다.'에 해당되었다. '그렇다'가 14개 이상이면 HSP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초민감한 아이인데다, 자극추구가 높은 아이, 게다가 무한동력 에너지까지 겸비했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물론 상황에 따라 아이가 잠을 거부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아이가 유독 잠자기를 힘들어한다면 유난히 에너지가 많고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거나, 예민한 아이일 확률이 높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 그러하다면 흔히 육아서에서 말하는 수면교육은 통하지 않을 뿐더러 잠과의 전쟁으로 엄마도, 아이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만일 아이가 소은이와 같은 성향이라면 억지로 재우려고 힘빼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이걸 몰라서 아이가 어릴 때는 남들처럼 수면교육을 한답시고 아이를 잡았고, 아이가 좀 더 컸을 때는 수면 장애를 의심하고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짓기도 했다. 아이의 기질과 성향에 대해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힘든 시간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아이의 수면 문제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육아는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나의 아이에게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에 내가 쓴 글이 적절한 처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부모들에게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를 위한 꿀팁>

1) 낮 시간 동안 에너지를 모두 발산하게 해주세요.

아이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야 잠을 잘 수 있어요. 낮 시간 동안 신체 활동을 많이 하고, 활발한 두뇌 자극을 통해 아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2) 아이가 안 자려고 하면 억지로 재우려고 하지 마세요.

영재교육으로 유명한 푸름이아빠는 아이가 원하면 밤새도록 책을 읽어주었다고 해요. 아이를 제시간에 재워야한다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하지 못하셨겠죠? 아이가 안 자려고 하면 억지로 재우지 마시고, 아이가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도록 아이와 충분한 놀이 시간을 가져주세요.


<엄마를 위한 꿀팁>

1) 아이가 예민하면 수면교육은 추천하지 않아요.

아이가 예민하면 수면 교육은 실패할 확률이 아주 높아요. 수면 교육을 하다가 엄마가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엄마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른 나이에 아이를 따로 재우는 '수면 독립'도 아이가 더 클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세요.


2) 수면 문제를 부모의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예민한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든 점은 단연 수면 문제입니다. 부모가 일관된 환경을 제공하고, 노력해도 아이가 안 잔다면 그건 결코 부모의 잘못이 아니에요.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photo by Artem Nedzelskiy on unsplash


처음부터 보기 https://brunch.co.kr/@ella10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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