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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이 예민한 아이

청각방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by 강진경

28개월 무렵, 어린이집 사건을 겪은 후 아이에게 온 가장 큰 변화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조금만 큰 소리가 들려도 공포심을 느끼고 두려움에 떨었다.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 엘리베이터 소리, 아파트에서 나오는 관리사무소 방송 소리, TV 광고 음악, 헤어드라이기 소리...

이렇게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에 반응했다. 길을 걷다 아주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만 들려도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바들바들 두려움에 떨며 '무서워, 무서워.'를 반복하며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럴 때마다 괜찮다고 다독이며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이는 그 소리가 한참 사라질 때까지 엄마를 붙들고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주차장에서 다른 차가 시동만 걸어도 깜짝 깜짝 놀라고, 주차장 입구의 경보음이라도 울리면 난리가 났다. 엘리베이터를 무서워해서 집이든, 상가든, 가는 곳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외출이 거의 불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집에만 데리고 있을 수도 없을 뿐더러 집에서도 아이의 청각 과민 반응은 계속되었기 때문에 일상 생활이 힘들었다.


아이는 거실에 있다가 갑자기 아파트 관리사무소 방송이 나오면 자지러지게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TV광고를 보고도 마찬가지였고, 헤어드라이기는 사용조차 하지 못했다. 헤어드라이기 소리야 시끄러운 고주파 소음이니 싫어하는 걸 이해가 간다하더라도 나머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관리사무소 방송은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였고, TV광고도 전혀 무서운 광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는 그것들이 엄청난 자극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증상은 몇 달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 부부의 삶은 피폐해져갔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자극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이니 아무리 부모라도 현실적으로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저 괜찮다고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는 방법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부모가 안아주고 옆에 있어도 달래지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일단 자극이 생기면 아이에게는 그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한참을 멈추어있다가 그 소리가 사라져야 진정이 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소은이가 보인 반응들이 감각조절장애의 한 유형인 청각 방어의 양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청각 방어란 특정 소리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청소기 소리, 엔진, 화재경보 등 환경에서 발생되는 소리들을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감각조절장애란 신체 또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감각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해서 일반적인 감각자극에 대해서도 과소 또는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과소 반응의 경우 입력된 자극을 인식하지 못하고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며, 과민 반응의 경우 위협적이지 않은 자극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과잉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소은이는 어린이집에서 정서적 학대를 당한 이후 일시적으로 과민 반응 유형의 감각조절장애 양상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감각조절장애는 각성이나 주의, 정서, 스트레스, 다양한 행동 등의 행동 특성과 관련이 있고, 이 장애로 인해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당시 소은이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다양한 감각에서 방어 기제가 일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소은이가 하는 모든 거부들의 이유를 알 수 없어 정말 힘이 들었다. 지금처럼 그게 감각조절에 이상이 생긴 것이고, 그 원인이 무엇이고 치료 방법이 무엇이라는 정보가 있었더라면 조금은 덜 힘들지 않았을까. 한참이 지나고 나서 감각통합에 대해 공부하고 나니 당시 아이가 보이던 모든 문제점들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퍼즐이 맞혀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런 것들에 대해 전혀 몰랐고,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동심리발달센터에서 미술치료와 놀이치료를 받으며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 뿐이었다.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소아정신과를 찾았을 때도 아이의 개월수가 너무 어리다보니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시 하고 있던 미술치료나 놀이치료를 받는 것 외에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었다. 의사선생님은 아이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실제로 아이는 6개월 넘게 상담센터를 다니고서야 원래 우리가 알던 아이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 부부의 맘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전혀 없던 증상들이 줄줄이 아이에게서 나타났다. 앞에서 언급한 청각방어 외에도 불빛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시각방어, 머리감기 및 목욕에도 거부감을 보이는 촉각방어의 모습이 함께 있었다. 잘못을 인정한 어린이집에서 놀이치료 비용을 전부 부담하였지만 돈으로는 우리가 입은 피해를 보상할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비록 우리 가족은 너무 힘들었지만 우리가 겪은 경험이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청각에 예민한 아이들은 위와 같은 양상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치료의 대상으로 생각할 것인지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가에 대한 여부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스로 견딜 수 있는 힘이 없다. 따라서 이런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청각이 예민해서 힘든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각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간혹 비슷한 자극에 계속 노출하면 아이가 무뎌지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자극을 주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가 싫어하는 특정 소음으로부터 최대한 아이를 차단하고 시끄러울만한 상황에 가기 전에는 항상 먼저 아이에게 상황을 알려주어야 한다.


혹시 시끄러운 장소에 가게 된다면 아이가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장소나 소리를 차단할 헤드폰을 통해 편안한 음악을 들려주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아이에게는 이어폰보다는 헤어폰이 좋다.) 또한 이렇게 청각에 예민한 아이들은 마트나 카페처럼 실내이면서 사람이 붐비고, 소음이 많은 곳을 가는 것을 힘들어하므로 최대한 사람이 붐비지 않을 때 가는 것이 좋다. 만약 꼭 가야할 상황이라면 아이에게 미리 설명을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아이를 안정시키기 위한 활동으로 대근육 활동을 추천한다. 이 때 대근육 활동은 거창한 운동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약간의 운동들이다. 우리가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은 피곤해도 정신이 개운해지는 것과 비슷한데 힘을 쓰게 되면 뇌에서 사람을 안정시키는 전달물질이 분비된다. 그래서 대근육 활동을 통해 아이 스스로 견디는 힘을 키우는 것이 이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구체적으로 추천되는 활동들은 걷기 혹은 뛰기, 공놀이, 뛰는 놀이, 씨름, 동물 흉내내며 걷기, 무거운 물건 옮기기 등이 있다. 이러한 활동들을 일상 생활에서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하면 감각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감각통합에서는 이러한 활동을 Heavy work 혹은 Proprioception(고유수용성감각) 활동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활동은 우리 몸의 각 부분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준다. 이러한 활동을 집에서 해주면 감각에 문제가 없는 아이에게도 발달 상 도움이 된다고 하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참고하면 좋겠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상 생활이 힘들 만큼 감각에 문제가 있다면 감각통합발달센터를 방문하여 상담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시 이러한 것을 몰라서 아동심리상담으로 접근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감각통합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센터를 찾는 것이 조금 더 아이의 상황에 맞았던 것 같다. 물론 놀이치료와 미술치료를 병행한 덕분에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지만 아이가 보였던 여러 문제 양상들을 살펴보면 감각통합에서 말하는 감각조절장애에 해당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한 꿀팁>

1) 아이가 지나치게 청각에 예민하면 혹시 청각방어는 아닌지 살펴보세요.

아이가 특정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감각조절장애 중 하나인 청각방어일 수 있어요. 소은이처럼 일시적으로 감각통합에 문제가 생긴 것일수도 있고, 타고난 예민함일 수도 있고, 자폐 스펙트럼일 수도 있고 그 원인은 다양해요. 하지만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힘들다면 감각통합발달센터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어요.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다른 감각정보의 조절 문제도 갖고 있을 수 있어서 감각통합치료를 통해 전반적인 조절능력이 길러지면 청각의 과민성도 경감될 수 있다고 합니다.


2) 청각이 예민한 아이를 위해 소음 차단, 대체 활동, 대근육 활동을 추천합니다.

해결 방법으로 싫어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최대한 소음을 차단해주고, 불가피하게 소음이 발생하는 장소에 가야한다면 조용한 장소나 헤드폰을 준비해서 아이가 대체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평소에는 대근육 활동을 통해 아이가 자신의 감각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엄마를 위한 꿀팁>

1) 아이를 위해 상담 기관에 방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며 다양한 문제에 직면할 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고 상담 기관을 찾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이, 아이의 마음이 아프거나 발달 상에 문제가 발견이 된다면 그에 맞는 치료 기관에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엄마를 위해서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상담 기관의 문을 두드려보세요.


2) 필요하다면 엄마도 심리 상담을 받으시는 것이 좋아요.

아이가 이렇게 청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면 엄마도 많이 지쳐있을 거예요. 그러나 주변에서는 감각이 예민하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다보니 그냥 까탈스러운 아이, 예민한 아이로 치부되고 그것이 부모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어요. 아이를 돌보며 정신적으로 힘이 들 경우 엄마도 전문가에게 심리 상담을 받고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길 바랍니다.

Photo by Katie Gerrard on Unsplash



(Warm Insight by 캐나다 OT 젤라쌤 (tistory.com) 사이트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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