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빠와 발레수업에 간 날. 나는 집에서 2시간의 자유를 보장받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카카오톡이 심상치 않다. 잔뜩 화가 난 남편. 사건은 발레가 끝나고, 이마트를 돌다가 시크릿 쥬쥬 기타를 발견했고 소은이는 그게 너무 갖고 싶었던 것이다. 전날에도 갖고 싶던 인형을 사주었기에 안된다고 하는 남편과 기타가 너무 갖고 싶은 소은이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재자 엄마도 그 자리에 없었으니 어찌할꼬. 결국 이 둘의 대치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소은이는 마트 한복판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아빠는 아빠대로 화가 나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부녀는 한바탕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시크릿 쥬쥬 기타를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왔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소은이는 울다 잠이 들었다는 슬픈 이야기.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모차에서 잠든 소은이를 보니 머리칼은 젖어서 축축하고,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하게 맺혀있다. 엄마의 마음은 안쓰럽다. 힘들었을 남편도 이해가 가고, 욕구가 해결되지 못한 채 울었을 아이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아이가 깨어나면 '어떻게든 내가 잘 설명해줘야지'하고 아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소은이는 평소 낮잠도 잘 자지 않는 '에너자이저'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울었는지 에너지를 제법 소진한 모양이다. 잠이 든 지 한 시간 정도 되어도 일어나지 않아 소은이를 깨웠다. 낮잠을 조금만 길게 자도 새벽이 되도록 잠을 자지 않는 후폭풍이 몰려오기에.
"소은아, 일어나 봐. 집에 왔어. 엄마야."
유모차에서 잠들어있던 아이는 눈을 비비고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방금까지도 평온하게 잠들어있던 아이가 갑자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절전 모드에 들어갔던 노트북이 덮개를 열면 이전에 열려 있던 창이 그대로 펼쳐지듯
잠깐 잠들었던 아이는 깨자마자 다시 예전 감정에 매몰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서러웠어도 그렇지, 자고 일어났는데도 그 감정이 해결되지 못하고 응축되어 다시 터질 수 있다니!
그 후 오랜 시간 아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었다. 그냥 훌쩍거리는 게 아니고, 정신을 못 차리고 우는 예민한 아이 특유의 울음이 있다. 이렇게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낀 것처럼 아무것도 안 들린다. 옆에서 아무리 말을 하고, 달래도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안다. 아이의 정신세계는 저 멀리 우리 은하계를 벗어나 존재하는 것처럼 아득히 먼 곳에 가 있다. 감정의 과몰입. 예민한 아이의 특징이다.
또 시작되었구나. 3년 9개월을 이렇게 울었지만 아무리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엄마를 미치게 하는 아이의 울음. 그동안 아이를 키우며 내가 더 힘들었던 이유는 나는 타인의 감정에 너무나 몰입을 잘하는 감정이입형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MBTI 성격 검사에서 F(감정)가 100인 사람. 앞에서 누가 울면 따라 울고, 드라마에서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와도 어김없이 울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심지어 그 타인이 내 자식이 되면, 감정을 이입하는 정도가 아니라 감정의 일체화가 이루어진다. 말 그대로 혼연일체. 그때부터 나도 아이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눈이 뒤집혀서 우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같이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고, 아이가 느끼는 슬픈 감정을 고스란히 내가 받아내는 상황이 되풀이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몰랐지만 나는 타인의 감정에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제는 이렇게까지 우는 일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 아쉽게도 오늘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데 실패하였구나. 나는 아이의 정신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면서도 그게 큰 효과가 없음을 알고 있다. 그래도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소은아, 일단 진정해."라는 말을 반복하며 빨대컵에 물을 담아 아이에게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흑흑. 엄마 나.. 진정이 안 돼. 엄마, 나 진정이 안돼."
아이는 울면서 진정이 안된다는 말을 연거푸 반복했다. 이럴 수가! 아이가 드디어 울고 있는 와중에 내 말을 들은 것이다. 아이가 내 말을 듣고, 저렇게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반은 진정이 되고 있다는 얘기! 45개월 만에 겪는 놀라운 변화였다. 나는 그 변화가 너무 반갑고 고마워 아이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알고 있다. 아이가 진정을 하고 싶어도 진정이 안된다는 것을. 하지만 자신이 진정이 안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말로 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무궁한 발전이다.
소은이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진정이 안되었고 결국 나는 밤 10시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나갔다.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공기를 바꾸고 환경을 전환시키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 소은이가 어릴 때 많이 쓰던 수법.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다 안되면 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다 팽개치고 아이를 안고 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아이가 컸다는 사실이다.
초저녁에 잤으니 어차피 오늘도 12시 안에 잠들긴 틀렸다 싶어 놀이터에서 열심히 두 시간을 놀아주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바람을 느끼고, 뛰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아이는 진정이 된다. 에너지를 쓰면 기분도 나아진다. 예민한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도 민감해서 환경을 바꿔주는 것이 기분을 전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야외에서 활동을 하게 해야 한다. 나쁜 기운을 바깥으로 방출할 수 있게 양육자가 도와주어야 한다.
혹시 예민한 아이의 울음이 감당이 안되면, 일단 집 밖으로 나가보라. 집이 아닌 곳이라면 울고 있는 장소에서 벗어나 환경을 바꿔볼 것을 시도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옆에서 부모가 계속 도와주자. '훈육을 위해서는 지쳐서 그만 울 때까지 내버려 둬야 한다?'아이의 울음을 받아주면 응석이 늘어날까 겁이 난다?' 그런 걱정일랑 접어두시길. 흔히 아이가 울면 혼자 울음을 멈출 수 있을 때까지 엄마가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만 예민한 아이에게 그 방법을 적용했다가는 끝장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물론 예민한 아이도 떼를 쓰는 울음과 진짜 울음은 구분해야 한다. 떼를 쓰며 우는 것과 자신의 감정을 해결하지 못하거나 불안해서 우는 울음은 다르다. 떼를 쓰는 울음은 물론 받아주어서는 안 되며 부모는 가짜 울음과 진짜 울음을 구분할 수 있다. 진짜 울음을 판별하는 법 중 하나를 소개하면 아이의 가슴에 손을 대서 심장이 펄떡펄떡 뛴다면 진짜 울음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아이의 감정이 신체적인 반응으로 이어진 것인데 이 때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 교감신경이 활성화된 모습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예민한 아이가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울고 있을 때, 그걸 그칠 때까지 혼자 내버려 두라는 조언은 적절치 않다. 어느 정도 울다가 울음을 그치고 엄마에게 다시 올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좋다. 만일 아이가 그럴 수 있다면 이미 예민한 아이가 아닌 것이다.
아이가 예민할수록 감정 몰입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날 소은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엄마의 말에 한 마디라도 반응한다면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인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아이마다 다를 것이다. 예민한 아이도 언젠가는 스스로 분노를 조절하고 울음을 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그 시기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그러기에 나는 다음의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아이를 위한 꿀팁>
1)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환경을 바꿔줄 것)
훈육도 진정이 된 다음에 하는 것입니다. 우는 아이에게 아무리 공감을 해주고,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주어도 아이에게는 아무 말도 안 들리거든요.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고 그 후에 공감, 가장 마지막이 훈육입니다.
2) 아이의 가짜 울음과 진짜 울음을 구분하라.
진짜 울음은 엄마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해요.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것이 아이의 버릇을 나쁘게 할 거라는 걱정은 버리세요. 훈육은 아이의 정서가 안정적일 때 하는 것이에요.
<엄마를 위한 꿀팁>
1) 다른 양육자가 있다면 일단 그 자리를 피하라.
아이가 너무 심하게 울 때, 엄마도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다면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기 전에 다른 양육자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단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2) 아이는 나와는 다른 사람! 아이의 마음에는 공감해주되 아이의 감정에 함께 매몰되지 말기를.
만일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상황이라면 아이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게 엄마도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감정에는 공감해주되 아이와 같이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길 바라요. 아이는 나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과 아이의 감정에 내가 매몰되는 것은 달라요.
photo by zacharykadolp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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