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긴 줄 알았는데 (2)

색칠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by 요마

물병자리에 대한 글을 보면 항상 "창의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내 별자리는 물병자리이다.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면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거침없었던 나는 창의적인 물병자리 어린이였다.

내가 초등학교 때 (그 당시엔 국민학교였지만) 반대항 운동경기가 주기적으로 있었다.

그 당시 반 대항 경기에서 부를 우리 반 응원가의 작사를 내가 만들어서 만화주제가에 붙여서 응원도 했었다. 지금은 나이가 너무 들어서 어떤 가사였는지 어떤 만화 주제가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게 안타깝지만, 입에 착착 붙게 만들었다고 칭찬도 들었었더랬다.

무슨 일이 있으면 교내 신문에 글을 보내거나, 중학교 때 간단한 희곡을 쓰는 숙제도 재미있게 쓰고 칭찬도 받고 대학땐 겁 없이 신춘문예에 시를 써서 응모도 해보고 (결과는ㅠ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도 사생대회에 학교 대표로 항상 참가했었다. 사부작거리며 무언가를 그리고, 만드는 것을 좋아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난 물병자리답게 새로운 것을 뚝딱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헌데, 어쩌다 길을 잃고 헤매듯이 이런저런 공부를 오랫동안 하게 되었다.

덕분에 지식 습득과 학습에 관한 건조한 책들과 과학적인 글들이 한동안 소비된 시간의 대부분을 이루었고, 그런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문득문득 글을 쓰고 싶어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었다.

특히, 박사과정은 내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던 시기였는데, 마침, 물에 빠진 듯 허우적대던 내가 찾아낸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그림 그리기였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나는 현실이 너무 힘들면 회피전략을 먼저 쓴다. 그냥 내 눈과 머릿속에서 스트레스 원인을 지워버리고 마치 원래 그런 것은 없었던 듯 지내는 것이다. 물론, 이 전략은 나중에 스트레스로 뭉친 거대한 쓰레기 덩어리를 한꺼번에 치우기 위해 밤을 새워야 하는 부작용이 생기지만....


그렇게 회피와 쓰레기 치우기를 반복하던 박사과정 기간 동안 스멀스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물병자리의 창조적 성향이라는 것이 터진 어느 날, 나는 동네 크래프트 가게 가서 그림 그릴 도구를 왕창 사 왔다. 작은 도화지는 답답하다며, 과감하게 집어 온 제 법 큰 하얀 도화지 옆에 여러 가지 색깔의 아크릴 물감을 가지런히 짜 놓고, 물통에 물도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 정작 아무것도 시작 못하도 막막하게 바라보기만 했었다.

... 한참 후에 내가 조심스레 스케치한 것은 새 두 마리였는데, 이상하게도 새는 내가 별로 좋아하는 동물도 아니었거니와 색칠을 다 해 놓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붉은 계통 색은 그다지 들어가지 않은 시푸르둥둥한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다 (아래 첫 번째 그림;;). 시작도 힘들었고, 성인이 되어 처음 그린 만큼 생각과 노력이 많이 들어갔었지만 결과는 불만족스러운 첫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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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옛날 사진 뒤져서 찾은 그 당시 그림 몇 개. 일부는 벽에 걸어 놓기도..^^;;


그 후, 차차 내 마음 가는 대로 그리는 그림들이 늘어났다.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그리는 게 즐겁기도 했고 신기하게도 그림 그리는 시간 동안은 내가 인식하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던 것 같다. 3~4시간을 연속해서 붓칠을 하고 나면,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내 머릿속에 가득 찼던 쓰레기 산을 비운 듯 너무 개운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가 몸과 마음을 오염시키는 박사과정을 잘 버티며 끝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고 생각한다.

박사 졸업 후, 나의 생활은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이 없기도 했고, 먹고사는 게 바쁘다 보니 그림 그리기는 소홀해졌지만, 누군가 내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그림 그리기"라고 말할 수 있다.


창조적인 물병자리 인간인 나는 최근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다시 그림 (디지털 그림이지만)도 끄적이고 있고, 큰 마음먹고 글도 써보려고 한다. 작정하고 그렸던 시푸르둥둥했던 나의 첫 그림처럼 내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연재하는 글들도 그렇게 이상하고 만족과 거리가 멀겠지만 쓰다 보면 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을 다시 맛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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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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