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 & 예루살렘
페트라는 요르단 남부 아카바만 인근의 아라바 계곡에 위치한다.
페트라란 글자 그대로 암벽 도시로 바위를 깎아 만든 놀라운 고대 도시 유적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기원전 4세기경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페트라는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100년에 걸쳐 가장 번성했던 대상도시로 이후 2000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이들 유적은 1812년 8월,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발견해 서구에 알려지게 되었다.
아랍인 순례객으로 가장하고 시리아에서 사막도로를 남하하던 그는
아라바 계곡에서 같은 숙소에 묵었던 베두인으로부터 ‘잃어버린 도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혼자서 페트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그는 아론산에 번제를 드리고 싶다고 간청해
부족의 안내를 받아 이곳으로 들어가 페트라를 세상에 알렸다.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인 엘카즈네 신전은
앞쪽의 바위는 붉은색과 주황색, 노란색, 갈색, 녹색이 섞여 있고 바퀴 모양이 새겨져 있다.
신전풍의 거대한 건물은 2층 구조로 아래층은 아케이드 같은 커다란 입구의 큰방이 있고
위층에는 4개의 기둥에 둘러 싸인 원형 조각이 한가운데 있고
좌우에도 역시 4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인 조각이 대칭을 이루며 폭은 30미터 높이는 43미터이다.
엘카즈네 신전 앞 광장부터는 길이 넓어지고
오른쪽 암벽에는 오벨리스크가 있는 신전, 파사드가 달린 무덤과 건물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바위를 긁어내 만든 원형극장도 있다.
길은 집회장, 시장, 목욕탕, 궁전 등이 밀집해 있는 넓은 광장으로 이어진다.
아드다이르는 엘카즈네보다 크고 아름다운 신전 건축물로
그곳에서 아라바 계곡과 아인무사 마을을 한눈에 내려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은 3대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곳이다.
유대교에서는 예루살렘이 기원전 993년 이스라엘을 통일한 다윗 왕국의 수도이자,
그의 아들 솔로몬이 영광의 신전을 세운 곳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무대이며 성분묘 교회가 있는 곳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언자 마호메트가 천마 부라크를 타고 승천한 곳으로 메키와 메디나에 이은 제3의 성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당시 영국의 취임통치령이었던 팔레스타인의 처리 여부가
전 세계의 큰 문제로 떠올랐다.
유엔은 결국 1947년 이곳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로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주변 아랍 국가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고,
이스라엘의 독립선언과 함께 치열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유엔이 제시한 분할 안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유엔의 영구 신탁통치 대상이었지만
양측은 이 지역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예루살렘의 신시가지인 서 예루살렘에서 특히 충돌이 잦았다.
이스라엘은 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지원하기 위한 보급로 확보에 전력을 다했으며,
아랍 측은 이를 저지하려 했다.
결국 정전 협상으로 예루살렘은 동서로 분할됐고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서쪽을 차지했다.
유대교도는 요르단령이 된 예루살렘의 구시가지 성지를 방문할 수 없게 되었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으로 6일 만에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세 나라가 패배했고
이스라엘은 아랍 측에 남아 있던 요르단 강 서안 지역과 가자지구도 점령했으며,
동 예루살렘과 구시가지까지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자
아랍국가와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주장은
국제법을 무시한 처사라 주장하며 맞서고 있어 여전히 중요한 국제 문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