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이야기(1)

유대인 VS 아랍인

by 산내


아랍인과 유대 민족은 함께 유일신을 믿고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하는 척박한 땅에서

유목과 목축업을 주업으로 살아온 오랜 역사와 전통의 가진 민족이다.

두 민족은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받들고 있다.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어 몸종인 하갈과 혼인하여 이스마일을 낳고

다시 본 부인 사라에게도 태기가 있어 자식을 낳으니 이삭이다.

그 후 이삭은 유대 민족의 조상으로 후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낳고,

이스마일은 아랍족의 조상으로 그 가문에서 무함마드(마호메트)가 탄생하였다.


기원전 천 년경에 유대 민족은 왕국을 이루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살고 있다가

기원전 7세기 앗시리아에 빼앗겼다.

그러다 또다시 나라를 세우지만 기원후 1세기 로마에 멸망하였다.


이후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할 때까지 유대인은 2천 년간 국가 없는 유랑 생활을 해왔다.

처절한 유랑생활의 무대는 바로 유럽이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이 아닌 유럽에서 박해와 고문과 민족적 차별을 당하면서 살아왔다.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

유대 민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저주받은 민족이었다.


20세기 초까지 유럽인들은 유대인을 악마와 동일시했다.

14세기 유럽에 페스트가 번져 2천만 명 이상이 죽었을 때

교황청에서 페스트는 악마의 저주라면서 악마를 제거해 하느님의 노여움을 풀어야 한다고

유대인이 대거 학살당했다.

유럽인의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로 이어졌다.



1897년에 스위스에서 전 세계 유대인들이 모여

제1회 세계 유대인대회를 창설하고 비밀 강령을 채택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창설하는 데 유대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합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유럽의 정서에서 유대인 국가를 세우기란 상상할 수 없는 모험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이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이 지역에서 반 터키 운동을 촉발시켜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승리할 경우 유대인과 아랍인들에게 독립국가 건설을 지원하겠다는 이중의 비밀 약속을 맺었다.

그러나 전쟁 후 약속을 이행할 수 없었던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 통치령으로 편입하였다.

이후 대규모 유대인이 이주하면서 두 진영 간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때까지도 미국은 이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 안을 의결하였으며

아랍인들은 이러한 과정이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분할이 유대인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어 이 지역 올리브 농장과 곡창지대의 80%,

아랍인 공장의 40%가 유대인에게 배정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은 난민 지위로 떨어지게 되었고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한 다음날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승리를 하였고

그 후 발생한 4차 전쟁 때까지 아랍진영은 여지없이 그들의 자존심을 구기고 말았다.

아랍인은 이러한 결과가 미국의 대 이스라엘 원조 때문이라고 여기며 그 반감을 키워 갔다.

이는 아랍인이 중요시 여기는 자부심에 대한 상처이기 때문이다.


아랍 세력은 15세기까지는 유럽을 능가하는 세력으로 군림하다

그 후 유럽에 역전되기 시작하여 18,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최악의 상태인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 후 지금의 나라들로 독립하고 자신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로

여러 개혁 사상들이 나왔으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서구의 정치 경제에 예속되는 것에 대한 분노와 한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대표성을 띤

미국의 지원에 의해 계속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당한

아랍 세력은 미국을 대표한 제국주의 세력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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