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여태후와 척부인
여태후의 잔혹함
by
산내
May 12. 2021
여 태후는 중국 역사의 큰 획을 그은
한 고조 유방의 정식 황후로
유방이 죽고 나서 그의 아들 유영이 어린 나이에 황제(한 혜제)의 자리에 오르니
실질적인 권력은 여태후에게 있었다.
유방이 한왕이 되었을 때
척희라는 여자를 만나 총애해서 아들 여의를 낳았다.
유방은 혜제는 사람됨이 어질고 나약했으므로 자기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척부인의 아들인 여의를 태자로 세우려 했지만
여 태후와 가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방이 세상을 뜨자
여 태후는 척 부인과 그의 아들 여의(조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기에
즉시 척부인을 가두고 조왕을 불러들였다
혜제는 사람이 인자한 데다 여 태후의 분노를 알았기에 조왕을 맞이해
함께 기거하면서
음식도 같이 먹고 여 태후가
조왕을 해칠 수 없도록 곁을 지켰다.
하지만, 혜제가 새벽에 활을 쏘려 간
틈을 노려
여 태후는 독을 탄 술을 조왕에게 먹여
여의를 독살했다.
거기에 더해
여 태후는 척부인의 손과 발을 절단하고
눈알을 뽑고
귀를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살게 하며 '사람 돼지' 라 불렀다.
며칠이 지나
여태후는
그의 아들인
혜제를 불러서
'사람 돼지'를 구경하게 했다.
혜제는 주위에 물어 보고서야
그녀가 척부인 임을 알고 큰 소리로 울었고,
이 일 때문에 병이나
일 년이 지나도록 일어날 수 없었다.
혜제는 사람을 보내 여 태후에게 간청해 말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아들로서
결국 천하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혜제는 이 날부터 술을 마시고 음란한 즐거움에 빠져 정사를 듣지 않았으며
모든 결정은 여 태후에 의해 정해졌다.
keyword
유방
태후
역사
8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산내
직업
프리랜서
나이가 들어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커피와 외인이 재미있어 배웠습니다. 세계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구독자
103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카이저 장군
불멸의 친구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