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2미터 강아지 8-파란 하늘, 검은 마음

코로나도 막지 못한 아이들의 풋사랑

by 작은별송이

8. 파란 하늘, 검은 마음



병원 앞에 서 있으니까 기분이 묘해. 아픈 데도 없는데 괜히 아픈 것 같아. ‘사랑의 외과’라는 간판을 보니 문득 울적해. 오늘만큼은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어. 많이많이. 저기 어떤 애가 엄마 손 잡고 걸어간다. 오늘따라 진짜 부러워.


“우건빵, 왜 계속 눈 감고 있냐? 자냐?”


품 안의 건빵이는 눈 감은 채 꼼짝도 안 하고 있어. 나한테 발길질을 당해서 삐졌을까? 삐졌겠지. 많이 아팠을 테니. 하지만 넌 맞을 만했어. 나도 잘한 건 아니지만, 무심코 저지른 행동이지만, 다 너 때문이야.

현유는 날 어떤 애로 생각할까? 내가 건빵이를 축구공처럼 찼을 때 실망하던 얼굴이 동영상처럼 스쳐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던 내게 현유는 딱딱하게 말했어. “너 이런 애였어?”라고. 그리고 갔어. 인사도 없이.

하늘이 무척 파랗다. 구름은 하얗고. 하지만 내 마음은 회색에, 까망에……. 아, 엄마가 병원에서 나왔어. 건빵이에게 물린 누나와 누나네 엄마도.


“많이 놀랐지? 미안하다.”


엄마가 누나에게 사과하며 어깨를 토닥였어. 누나는 입도 벙긋 안 한 채 엄마와 내게 눈을 흘겼어. 건빵이를 짝 째려보기도 했고.


“죄송합니다. 치료 다 끝나고 연락 주세요.”


엄마가 누나네 엄마한테 고개를 숙였어. 아니, 허리를 숙였어.


“당연히 연락해야죠. 후유증 생기면 그때도 연락할 거예요.”


아줌마 태도가 겨울처럼 쌀쌀맞아. 그러니까 엄마에게 더 미안해진다.


“네, 그러셔야죠. 그럼 살펴 가세요.”


엄마가 다시 한 번 정중히 인사했어. 그런데 아줌마는 시큰둥해하며 내게 눈을 흘겼어.


“강아지 잘 간수하지 못할 거면 밖에 데리고 나오지 마라.”


아줌마의 기습 공격에 얼떨떨했어. 내가 건빵이를 잘 간수하지 못한 건 아닌데…….

아줌마와 누나는 길바닥에 구르는 개똥을 피하듯 나를 한 걸음 떨어져 지나쳐갔어. 동시에 엄마가 내 목덜미를 꾹 눌렀어. 나는 인형처럼 목이 푹 꺾였지.


“‘안녕히 가세요’, 해야지.”


엄마 손을 뿌리칠 수도 있었지만, 진짜 인형처럼 그대로 있었어. 하지만 입은 꾹 다물고 있었어. 억지로 인사말까지 하기는 정말 싫었어.

엄마는 아줌마와 누나가 한참 멀어진 뒤에야 내 목을 풀어 줬어. 그러고는 차갑게 한마디 뱉었어.


“가자.”


엄마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먼저 발걸음을 뗐어.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병원 유리문에 비친 나를, 아니 건빵이를 얼핏 보았어. 건빵이가 사람처럼 씩 미소 지었어. 나를 조롱하는 미소 같기도, 가여워하는 미소 같기도 했어. 물어볼까 하다가 관뒀어. 아무려면 어때? 어차피 다 망했는걸, 뭐.


엄마가 점점 멀어져 가. 가면서 뒤도 한 번 안 돌아봐. 이번만큼은 엄마 마음 이해해. 자존심이 엄청 센 엄마니까 화낼 만해. 누나네 엄마, 나도 아는 아줌마야. 우리 동네 도예공방 아줌마거든. 누나가 아줌마 딸인지는 오늘 알았고.

보름 전쯤에 엄마가 아줌마한테 피해를 입혔어. 도예공방 옆에 세탁소가 있는데, 엄마가 블라우스를 맡기려고 세탁소 앞에 주차를 했어. 그리고 세탁소에 들어간 사이 공방에서 6학년 형이 나왔어. 형은 공방 수강생인데, 급히 길을 건너다가 달려오는 자전거에 치이고 말았어. 엄마 차가 시야를 가려서 자전거를 못 본 거야.

그때 엄마 차 안에 있던 나는 사고 장면을 똑똑히 보았어. 다행히 형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정말 큰일 날 뻔했지. 만약 자동차였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라.


아무튼 그 교통사고는 엄마한테는 ‘큰일’이었어. 주차하면 안 되는 곳에 주차한 엄마 때문에 일어난 사고이니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했지. 또 도예공방 아줌마한테 미움도 받아야 했어. 그 일로 형이 공방을 그만두고 말았거든. 형네 엄마가 아줌마에게 수강생을 잘 돌보지 않았다며 막 화를 내고는 안 다닌다고 했대. 가뜩이나 코로나로 수강생이 줄었는데 엄마 때문에 또 한 명 줄었으니, 아줌마도 열받을 만했지.


갑자기 엄마가 우뚝 멈춰 섰어. 그러고는 휙 뒤돌아섰어. 오십 미터쯤 떨어져 있지만 따가운 눈총이 확 느껴져. 당장 뛰어오라는 신호야.

줄곧 잠자코 있던 건빵이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어.


“엄마한테 다 ‘건빵이 잘못’이라고 해라멍.”

“뭐냐? 계속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더니.”

“사람들 온다멍. 얼른 가라멍.”

“참견하지 마!”


소리를 빽 지르고는 엄마를 향해 달려갔어. 운동회 날 달리기 시합을 했을 때처럼 이를 악물고. 달리는 중에 건빵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가 언뜻 귓가에 닿았어.


“미안하다멍. 어쩔 수 없었다멍.”


건빵아, 그냥 못 들은 체할게. 지금은 너랑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 아니다. 오히려 내가 너랑 2미터 떨어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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