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막지 못한 아이들의 풋사랑
집에 오니 아빠가 와 있었어. 평소 출장 가면 집에 일찍 오곤 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왔네. 예전 같으면 아빠가 반가웠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어제 통화했을 때 아빠가 내 편이 아닌 느낌이었거든.
신발을 팍팍 벗어던지며 들어서는 엄마에게 아빠가 눈치 없이 물었어.
“둘이 어디 좋은 데 다녀왔어? 아, 강아지까지 셋이구나, 하하.”
“좋은 병원에 다녀왔지. 강아지까지 다섯이서.”
엄마 말을 이해 못한 아빠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어. 그런 표정으로 힐끗 나를 보았어. 나는 설명하기 싫어 슬며시 아빠 눈을 피했어. 아빠가 눈길을 다시 엄마에게 돌리는 순간 엄마가 말했어.
“당신 마침 잘 왔네. 다 같이 얘기 좀 해. 지금 당장.”
난생처음 우리 집에서 가족회의가 열리네. 그것도 긴급회의가.
가족회의 의장은 엄마였어. 의견을 제일 많이 낸 사람도 엄마였어. 아빠는 가끔 엄마가 이야기하는 도중 “나도 동의해.”라는 말만 했어. 아니면 “아빠 생각도 그래.”라고 하던가.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어. 솔직히 나한테는 이 가족회의가 회의라기보다는 재판에 가까웠어. 나는 재판받는 범죄자, 그걸 ‘피고인’이라고 부르지? 언젠가 엄마랑 드라마를 보다가 알게 됐어.
공범은 우건빵이야. 사실 이 녀석이 주범인데…….
회의 끝에, 아니 재판 끝에 이런 판결이 내려졌어.
-건빵이를 아빠 친구에게 보내고, 처음 계획대로 이모에게서 썰매를 받아온다.
판결 이유는 다음과 같아.
1. 건빵이가 피부병이 생긴 걸 보니 건강이 나쁜 것 같다.
2. 나이도 너무 많으니 좋은 환경에서 지내는 게 건빵이에게도 좋다.
※아빠 친구는 강화도에 사는데, 집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음. 집에 마당도 있음.
3. 건빵이가 우리 식구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엄마를.
※건빵이는 오늘 처음 본 아빠한테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음.
4. 사람을 무는 강아지는 위험하다. 언제든지 사고 칠 위험이 있다.
엄마가 판결을 내리자마자 아빠가 꼬리를 달았어.
“아들, 엄마 아빠 뜻에 따르도록 하자.”
순간 나도 모르게 불끈했어. 내가 아들이면, 그래도 아들 의견을 한번 들어봐야 하는 거 아냐? 아들이라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따르도록 하자’가 아니라 ‘따를 수 있겠니?’라고 물어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
불끈했지만 성질을 부릴 순 없었어. 그러면 나한테 더 불리해지니까. 나는 침을 꾹 삼키고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어.
“싫, 어, 요.”
아빠 눈이 동그래지고 엄마 눈이 가느다래졌어.
“엄마 말 못 알아들었니?”
엄마가 작지만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했어. 창피하게도 나는 곧바로 움츠러들고 말았어.
“저기…… 건빵이랑 얘기 좀 해볼게요.”
나는 힘들게 말했는데, 엄마가 실실 웃었어. 아빠는 어이없다는 듯 하, 한숨을 터뜨렸고.
“강아지랑 얘기를 나눠? 강아지가 사람 말을 하는 거니, 네가 강아지 말을 하는 거니?”
“하하, 제 유머가 썰렁하죠? 그냥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는 뜻이에요.”
나는 일부러 크게 웃으며 대충 얼버무렸어. 문득 건빵이의 비밀을 터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하지만 남자가 비겁하게 약속을 어길 수는 없지.
“성준이 엄마, 하루만 생각을 시간을 주자. 짧은 시간 동안 나름 정이 들었나 보네.”
아빠가 애매하게 내 편을 드네. 어차피 판결은 달라지지 않으니 하루라는 시간을 선물로 주자는 뜻 같아.
엄마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어.
“좋아. 아빠 말대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