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2미터 강아지 7-인생 최고의 위기

코로나도 막지 못한 아이들의 풋사랑

by 작은별송이

7. 인생 최고의 위기



놀이터 입구 옆 전봇대 아래로 건빵이를 데려갔어. 건빵이를 전봇대 뒤에 숨기고 현유가 올까 둘레를 두리번거렸어. 건빵이가 볼일을 다 치른 다음에 오면 좋겠어. 순이한테도 좋을 게 없을 거야. 첫 만남에 똥 누는 모습을 본다면? 어휴!


“고개 돌려라멍. 어른이 볼일 보는 거 쳐다보지 말고.”

“보라고 해도 안 본다.”


난 지금 현유가 오는지 살피기도 바쁘니까.


“윽, 냄새!”


냄새는 눈에 안 보이면 원래 더 강하게 느껴지나? 정말 코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야.


“끝났다멍. 치워라멍.”

“빨라서 좋다.”


현유가 오나 한 번 더 살핀 다음 똥을 치우려고 쪼그려 앉았어. 새까만 똥, 냄새가 정말 최악이야. 어제 안 누고 건너뛰더니, 변비인가 봐.


“건빵이가 똥 쌌나 보구나?”


등 뒤에서 들려온 현유 목소리. 아, 민망해! 냄새 때문에 빨리 치울 수가 없었어.


“안녕, 현유야!”


남은 똥을 빛의 속도로 담고 똥봉투를 묶었어. 곧바로 똥봉투는 가방에 쏙. 맨날 연습한 것처럼 갑자기 모든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어.


“예전에도 강아지 키워 봤니? 너 되게 잘한다.”

“처음 키우는 건데, 잘되네.”

“처음 치곤 대단한데!”

“그냥 평소 깔끔한 걸 좋아해서…….”


거짓말이 또 술술 나오네. 나 거짓말에 진짜 소질 있나 봐.


“순이야, 건빵이한테 인사해.”


현유가 안고 있던 순이를 내려놓았어. 순이는 땅에 발을 딛자마자 건빵이에게 쪼르르 달려갔어. 아직도 똥냄새가 솔솔 풍기는데 설마 기절하는 거 아니겠지?

기절은 내가 할 뻔했어. 건빵이가 순이한테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거 있지? 우건빵, 이 배신자! 제발 친절하게 대해! 순이가 꼬리를 내린 채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어. 으, 계속 일이 꼬인다!


“건빵아, 순이가 친구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싫어?”


현유가 부드럽게 달랬지만, 건빵이는 멍멍 짖기까지 했어. 그만해라, 우건빵! 정말 내가 건빵이를 앙 물고 싶었어.


“순이가 건빵이 스타일이 아닌가 보다, 호호.”


현유가 너그럽게 말해 주니까 더 무안했어. 처음으로 단둘이 보내는 시간인데, 건빵이 탓에 엉망진창이 됐어. 현유는 발발 떠는 순이를 살포시 안아 들었어. 목줄을 가볍게 정리하고 머리를 살살 어루만졌어. 순이는 곧 안정을 찾고 현유의 가슴에 볼을 비볐어. 부러웠어. 반려동물과 주인 사이는 원래 이래야 되잖아?


“성준아, 우선 벤치에 좀 앉을까?”

“어? 그래.”


나도 건빵이를 안아 들었어. 순순히 안기니까 괜히 약이 올랐어. 꿀밤이라도 한 대 꽁 먹일까 보다.

현유가 앞장서고, 나는 두 발짝쯤 떨어져서 걸었어. 나란히 걷기엔 쑥스럽기도, 미안하기도 해서. 놀이터 안 벤치까지 20미터가 될까 말까 한데, 정말 200미터는 되는 것 같더라.

현유와 나는 ‘말없이’ 벤치까지 걸어가서 ‘말없이’ 앉았어. 그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형과 누나가 놀이터 안으로 들어왔어. 그러고는 우리를 힐끔 보더니 시소 쪽으로 걸어갔어. 나는 현유한테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 눈으로 형과 누나를 좇았어. 두 사람이 시소 앞에 멈췄을 때 현유가 말을 걸었어.


“건빵이가 순이를 싫어하는 것 같은데, 어쩌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어. ‘성준이 너랑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말로 들렸거든.


“그, 글쎄.”


이렇게 대꾸하는 내 자신이 한심했어. 왜 학교에서는 ‘좋아하는 여자애와 대화하는 법’은 안 가르쳐 주는 건지…….

현유가 순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어.


“순이야, 우리 건빵이한테 친구 하자고 해볼까?”


순이는 현유 품으로 더 깊이 파고 들기만 했어. 건빵이를 마주할 엄두도 못 내는 듯했어. 현유가 한숨을 폭 내쉬었어. 내 입에서도 한숨이 푹 터져나왔지.

한숨 소리가 너무 컸는지 현유가 피식 웃었어. 그러고는 부끄러움이 조금 섞인 말투로 물었어.


“그네라도 잠깐 탈래? 얘네들 안고.”

“그러자!”

“호호, 작게 대답해도 다 들려.”


바보, 우성준. 또 흥분했구나.

엉거주춤 벤치에서 일어서다가 무심코 시소 쪽으로 눈이 갔어. 아까 그 형과 누나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어. 가끔 보는 광경이라 놀라진 않았지만, 현유랑 같이 보기에는 좀 그랬어. 담배를 피우느라 마스크를 벗는 것도, 나란히 붙어 서 있는 것도 꺼림칙했고.

현유도 마음이 좀 불편했는지 일부러 딴 데를 보는 것 같았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


“현유야, 나 그네 되게 잘 탄다.”


겨우 이런 말이 나오네.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하지만 현유에게는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어.


“강아지 안고서 멀리뛰기 할 수 있어?”


뜻밖에도 현유가 즐겁게 내 말을 받아 주었어. 역시 현유는 마음씨도 참 고와.

하지만 현유 물음에 대답할 수가 없었어. 소리를 질러야 했거든.


“건빵아!”


내 품을 쏙 빠져나온 건빵이가 시소 쪽으로 쌩 달려갔어. 토끼를 사냥하는 호랑이처럼.


“악!”


누나가 비명을 질렀어. 건빵이가 누나 종아리를 꽉 깨문 거야. 누나는 너무 아픈지 그대로 주저앉았어. 교복 치마를 입고 있어 맨살을 물렸으니 얼마나 아플까. 옆에 있던 형이 화가 나서 건빵이를 걷어차려고 했어. 건빵이는 잽싸게 피해 내게 달려왔어. 눈이 마주쳤어. 안아 달라는 말이 눈빛에 어려 있었어.


“이 나쁜 놈아!”


나는 건빵이를 발로 뻥 차버렸어. 아니, 내 발이 제멋대로 건빵이를 찬 거야. 건빵이가 깽 울면서 나동그라졌어.


“우성준!”


현유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 이름을 불렀어. 마법에 걸린 것 같았어. 순간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어. 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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